한국 만화는 1990년대 들어 다양한 계층의 독자층을 흡수하며 '만화 시대'를 활짝 열었다. 이원복(덕성여대 예술학부) 교수도 '만화 시대'를 꽃 피우는 데 큰 몫을 한 만화가이다. 1980년대 후반 첫선을 보인 국민 교양만화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12권)는 지금까지 1500만 부 이상 팔렸고, '교양 만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시리즈는 유럽 만화의 특징인 철학과 역사 지식이 가득 담겨 있어 '교양 도서'로 인기다. 유럽만화의 고전으로 꼽히는 '아스테릭스'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는 이원복 만화가를 7일 서울 역삼동 작업실에서 만났다.

― 언제부터 만화를 그렸습니까?

"고교 1학년 때부터입니다. 당시 신문반에서 만화를 그렸어요. 그런데 1962년 우연히 후배 아버지가 다니는 어린이 신문사에 놀러 갔다가 아르바이트로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외국 만화 번안작을 주로 그렸지요."

― 꿈이 만화가는 아니었나 봐요.

"1960년대엔 만화가라는 직업은 없었어요. 그런데 고교 3년간 만화 연재를 하다 보니 만화가 좋아지더라고요. 그림 실력도 확 늘었지요.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만화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됐죠."

본격적인 '만화 창작'은 언제부터인가요?

“대학교 때입니다. 첫 대학 입시에 실패하고 재수를 하던 1년간 영화만 300편 넘게 봤을 거예요. 소설책도 많이 읽었고요. 그때 세계의 다양한 풍물을 간접적으로 접했던 게 대학시절 창작활동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는 이후 서울대학 건축공학과 졸업하고, 1975년 독일로 유학을 떠난다. 1984년까지 10여 년간 뮌스터 대학에서 디자인학과 서양미술사학을 공부했다.

― 왜 독일로 유학을 갔습니까?

“일본 만화의 그림체를 벗어나기가 힘들었어요. 만화가로서 그림에 대한 한계를 느끼면서 ‘만화를 제대로 배워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요. 그래서 디자인과로 전공을 바꿔 독일로 떠났어요.”

그때 유럽 각국을 두루 여행하며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국내 신문에 ‘먼나라 이웃나라’ 연재를 시작한다.

― 왜 제목을 ‘먼나라 이웃나라’로 정했는지요.

“유학시절 도서관에서 공부를 한 기억은 거의 없어요. 전공 특성상 돌아다니면서 많이 보는 게 중요했기 때문에 발로 뛰는 공부를 했지요. 이때 ‘세계화’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고, 먼나라 유럽에 대한 정보를 한국에 제대로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독일 현지에서 국내 신문에 연재하는 일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이메일이 없던 시절이라 연재물이 준비되면 모두 국제 우편으로 부쳐야 했어요. 마감을 지키기 위해서 여러 편을 한꺼번에 그려 보냈지요. 그래도 마감 시간을 한 번도 놓친 적은 없어요.”

신문에 연재됐던 원고는 1987년 프랑스·영국·네덜란드·스위스·독일·이탈리아를 소재로 한 ‘먼나라 이웃나라’ 초판으로 출간됐다. 1998년 ‘새 먼나라 이웃나라’로 이름을 바꿔 나왔고, 후속편으로 일본·대한민국·미국 편이 독자들을 만나게 된다.

― 이 시리즈가 왜 인기를 끌었을까요?

“1980년대 후반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른 나라에 대해 궁금증을 갖기 시작한 시기였어요.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라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었는데, 이 시리즈가 국민들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주었던 것 같아요. 내용은 교양도서인데 형식은 만화이어서 정보를 보다 재미있게 습득할 수 있었다는 점도 또 다른 인기 비결이었던 같아요.”

― 후속편을 준비하고 있나요?

“먼나라 이웃나라 중국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7월부터 신문에 연재를 시작할 예정인데, 중국 현대사를 굵직굵직한 사건별로 다룰 계획입니다.”

이원복 작가는…

△1946년 10월 4일 대전 출생

△서울대학교 건축공학과 졸업

△독일 뮌스터대 디자인학과·서양미술사학과 수료

△현 덕성여대 예술대 시각디자인과 교수

△대표작: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

/ 김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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