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펜 터치와 박진감 넘치는 묘사, 세밀하면서도 웅장한 연출력…. 만화 ‘영웅 초한지’(5권)에 드러난 문정후 만화의 특징이다. 코믹무협극화 ‘용비불패’(23권) 신화를 세운 문정후 작가. 무협만화는 대개 흑백이어서 선이 굵다. 그래서 컬러를 입히면 촌스러운 만화가 된다. 하지만 문 작가의 컬러만화 ‘영웅 초한지’는 다르다. 얼굴 표정이 세밀하고, 장중한 액션이 그대로 살아남아 세련미가 넘친다. 그는 2003년 역사만화 초한지를 낸 이후, 동굴·산·지진·남극 등 모험을 주제로 한 ‘~살아남기’ 시리즈로 학습만화시장을 사부자기 주도해 온 선두주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학습만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공로자로 자리 매김받고 있는 문 작가를 경기도 일산의 화실에서 만났다.

-요즘 어떤 만화를 그리고 있습니까?

“준비 중인 시리즈는 캄보디아의 유적 앙코르와트입니다. 지난해 직접 가서 사진을 찍고 자료를 수집해왔어요. 얼마 전에 작업을 마무리했는데, 이달 말쯤 독자들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요.”

-작품을 그릴 때마다 현지답사를 가세요?

“살아남기 시리즈는 모두 직접 발로 뛰며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그렸어요. 제 상상력을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는 창작만화와 달리 지식을 전달하는 학습만화는 유적이나 유물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그림에도 더 많이 신경을 써야 하죠. 한 편을 끝낼 때마다 ‘해방되는 느낌’이에요.(웃음)”

그는 강경효 작가와 함께 ‘서바이벌 만화붐’을 일으킨 작가로 꼽힌다. 학습만화는 철저한 고증과 정확한 지식 전달이 인기 비결이라고 문 작가는 강조했다.

-무협만화(창작만화)와 학습만화, 전혀 다를 것 같은 두 장르에 도전한 계기는….

“용비불패를 끝낸 후, 다음 연재작을 준비하면서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돼서 ‘영웅 초한지’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막상 시작해보니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재미와 학습효과를 모두 살린다는 게 쉽지 않더군요. ‘초한지’나 ‘살아남기’ 모두 용비불패보다 오히려 더 공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만화계에서 극화체(장편)와 만화체(단편 아동물)를 동시에 그릴 수 있는 작가는 드물다. 하지만 그는 만화가 박봉성 화실에서 오랜 기간 수련과정을 거친 후, 탄탄한 데생력과 화려한 연출력을 인정받은 다음 만화계에 진출하면서 두 장르를 완벽하게 넘나드는 작가로 우뚝 섰다.

-대표작인 ‘용비불패’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습니까?

“문하생 시절에 습작 형태로 만든 작품이었어요. 처음에는 여러 출판사에서 퇴짜(거절)를 맞았죠. 7년이나 연재를 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몇 달 있다가 잘리는 것 아닌가?’ 불안해했었죠.”

국내 판매부수 80만부를 기록한 용비불패는 해외 시장에서도 좋은 반응을 보였다. 국내 연재를 시작한 지 6개월 뒤, 대만 만화잡지 '소년보도'에 연재돼 인기를 끌었고, 현재는 프랑스에서 번역본이 10권까지 출간됐다.

-무술이나 모험을 좋아하시나요?

“사실 무술은 하나도 할 줄 몰라요. 격투기를 하는 친구에게 지적을 받아가며 기본적인 동작을 배웠죠. 무공 이름은 몇 날 며칠 한자 사전을 뒤져서 지었는데, 중국어를 전공하신 지인께 ‘중국에서는 이런 말 안 쓴다’며 혼난 적도 있어요.”

-해외 진출을 계속 준비하고 계시다면서요?

"내년에 일본 진출을 목표로 현재 새 작품을 그리고 있어요. 야구 선수들이 메이저리그 진출을 꿈꾸는 것처럼, 만화가들에게 일본은 또 다른 메이저리그거든요. 우리나라 작가 중에 일본에서 성공한 작가는 손에 꼽을 정도지만, 나 자신을 채찍질할 수 있는 새로운 도전이라고 생각해요."

-만화가를 꿈꾸는 어린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잘 그린 작품을 보고 그리기보다는 어색하더라도 자신의 그림을 그리는 것이 중요해요. 제 경우도 다른 사람의 만화를 보고 베끼면서 연습을 했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제 작품을 할 때가 되니까 어떻게 그려도 제 그림이 아니라 남의 그림을 그리게 되더라고요.”

문정후 작가

▲1967년 부산 출생

▲본명 문호주

▲데뷔작: 용비불패

▲대표작: 용비불패, 영웅 초한지, '~살아남기' 시리즈


/고양=조찬호 기자 chjoh@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