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년말이라 교실 안이 떠들썩합니다. 김 선생님은 좋은 마무리를 위해 아이들을 이런 저런 학습 프로그램으로 관심을 끌어보려고 노력합니다. 오늘의 공부 주제는 ‘합리적인 소비생활’입니다. 준비된 동영상도 보여주고 설명도 했는데, 무관심하게 떠드는 아이들이 참 많습니다. 먼 미래의 이야기로 들렸을지도 모릅니다.

현수가 학교 공부를 끝낸 후 정해진 코스대로 학원을 돌고 집으로 돌아갈 때쯤 되면, 이미 저녁때가 훨씬 지나 배도 고프고 머리도 멍해집니다. 막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집안의 분위기는 싸늘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보글보글 찌개 끓는 소리나 톡톡 도마에 칼질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이런 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러니까 당신이 집안 살림을 잘 꾸려 나가야 하지 않겠어요? 내 월급에 아이 둘 학원비가 한 달에 100만 원이 넘게 나가는 건 무리가 아니에요?”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다른 집 아이들의 경우는 해외 유학이다 연수다 하고, 국내에서는 우리 보다 훨씬 많이 쓰는 집도 많아요. 당신은 뭘 모르시네요.”

"수입에 맞춰 합리적으로 소비를 해야지, 우리 형편에 그런 과외비가 말이 됩니까?"
"소비라뇨? 우리 아이들을 위한 합리적인 투자지요."

이런 말씀이 오고 갔다. 정말 뭐가 뭔지 모르겠다. 아빠 말대로 합리적인 소비를 해야 할지 엄마 말대로 합리적인 투자인지 말이다.

‘그런데 도대체 합리적이라는 말 뜻이 뭐야? 이치에 맞는다는 뜻인가?’

‘합리’ 이치에 맞게 잘 판단하는 것

보통 ‘합리적(合理的)’이란 말을 ‘이치에 맞는’이란 뜻으로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철학적인 의미는 ‘이성(理性)이 있는’ 또는 ‘이성에 부합하는’이란 뜻입니다. 지난번에 이성이란 인간이 판단을 잘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했으니까, 이것을 종합해 보면 합리성(合理性)이란 ‘이치에 맞게 잘 판단된 성질’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과외비를 많이 지출하는 것이 합리적인 투자인지는 치밀하게 따져 보아야 하겠네요.

/ 이종란 철학박사(서울 등현초등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