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선거자금이 다 어디로 간 거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공화)의 선거 캠프가 작년 초부터 모은 대선 자금 11억 달러 중 8억 달러(약 9440억원) 이상을 소진해, 11월3일 대선일까지 48일을 앞두고 ‘긴축 경영’에 들어갔다.

지난 9일 트럼프 캠프는 8월 한 달간 2억1000만 달러를 모금했다고 발표했다. 사상 최대였다. 그러나 경쟁자인 민주당의 조 바이든 캠프는 같은 기간에 무려 3억7000만 달러를 모았다. 설상가상으로 13일엔 뉴욕의 부호 마이클 블룸버그가 경합주인 플로리다주에서 바이든을 위해 최소 1억 달러를 쓰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3월 바이든이 당내 경선에서 대선 후보를 굳혔을 때 빈털터리였던 것을 고려하면, 트럼프로선 격세지감(隔世之感)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급기야 그는 “돈이 더 필요하다면, 개인 돈을 넣겠다”고 말했다.

◇4개 경합주(州) TV 광고보다, 수퍼볼 광고 2건에 돈 더 써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캠프(11억1800만 달러)는 트럼프 캠프보다 배(倍) 가까운 돈을 썼다. 트럼프는 선거자금의 중요성을 절실했고, 그래서 2017년 대통령 취임하는 날 바로 재선(再選)위원회를 출범했다. 일찍 모금을 시작해, 2020년 대선을 넉넉하게 치르겠다는 생각이었다.

7월말까지 트럼프 캠프의 남은 현금 '실탄'은 바이든을 1억 달러 가량 앞섰지만, 이후 8월 한 달간 바이든이 트럼프보다 1억5000만 달러를 더 모았다. 바이든은 월간 모금액도 8월에 처음으로 역전시켰다./NPR(미 퍼블릭 라디오) 그래픽

그런데 7월까지 8억 달러 이상을 썼고, 이제 대선일을 50일도 안 남기고 허리띠를 동여매야 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지난 8월 한달 간 바이든은 TV 광고로 3590만 달러를 썼지만, 트럼프는 480만 달러밖에 쓰지 못했다.

효과도 없이 8억 달러의 선거자금을 탕진했다는 비난을 받는 트럼프의 전 선거본부장 브래드 파스캘(왼쪽)과, 7월 그를 대체한 빌 스테피언 본부장.

뉴욕타임스(NYT)는 공화당 전국위원회와 트럼프 캠프의 고위직 들을 인터뷰한 결과, “8억 달러의 상당 부분이 효과도 알 수 없는 곳에 흥청망청 쓰였다”고 분석했다. 결국 트럼프는 지난 7월 선거본부장을 브래드 파스캘(Parscale)에서 빌 스테피언(Stepien)으로 교체했고, 그를 소개하며 “스테피언이 월급 인하를 받아들였다”고 말할 정도였다.

트럼프 대선 자금의 상당 부분은 트럼프의 ‘허영심’을 채우는데 쓰였다. 지난 2월의 수퍼볼(미 프로풋볼리그 챔피언전) 광고 2건에 1100만 달러를 집행했다. 당시 뒤늦게 민주당 경선에 뛰어든 마이클 블룸버그의 수퍼볼 광고비에 지기 싫어서였다. 그러나 정작 최대 경합지역인 위스컨신·미시간·아이오와·미네소타 주에 7월말까지 쓴 TV 광고비는 900만 달러에 그쳤다. 캠프 직원들에겐 버지니아주 교외에 고급 사무실과 주거시설이 제공됐고, 트럼프의 지시에 따라 기부자들에게 선물할 각종 기념품 제작비용만 60만 달러가 들었다. 또 의회의 트럼프 탄핵 절차에 대응하는 법률 비용으로만 2100만 달러를 썼다. 트럼프의 변덕으로 공화당 전당대회 장소가 2번이나 바뀌면서 호텔 계약 위약금도 32만5000만 달러를 물었다.

스마트폰의 녹음을 막기 위한 마그네틱 지갑. 트럼프 대선 캠프는 이 지갑 비용으로만 11만 달러를 썼다.

비공식 모금 파티에서 트럼프의 발언이 녹취되는 것을 막는다고, 참석자들의 핸드폰을 담을 자석 지갑 구입에도 11만 달러를 썼다. 결국 필요한 경비 못지 않게, 효과와 필요성이 의문시되는 자잘한 경비가 쌓이고 쌓여 8억 달러가 눈 녹듯이 사라진 것이다. 공화당의 선거전략가인 에드 롤링스는 NYT에 “8억 달러를 쓰고도 10% 포인트 뒤진다면, 그 돈이 다 어디 갔는지, 계획은 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4년 내내 모금하려면 지출도 그만큼 따라

공화당 일부에선 “취임하자마자 바로 모금에 나선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주는 것”이라며 “4년 내내 모금하려면 그만큼 돈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트럼프와 미 공화당 전국위원회는 작년부터 직접홍보물 발송(DM)에만 1억4500만 달러를 썼고, 새로운 기부자 발굴을 위한 온라인 광고에 수천만 달러를 썼다.

트럼프 선거본부장이 스테피언으로 바뀐 다음, 당장 외곽 지지 단체에 대한 지원금 5000만 달러, 미 자동차경주(NASCAR) 광고비 300만 달러가 삭감됐다. 또 캠프 직원들이 우르르 미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 원’에 동승해 유세현장에 가는 기회도 사라졌다. 에어포스 원에 동승한 캠프 직원의 비용은 선거본부에서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이든, 돈 안 드는 ‘지하실 화상회의’로 모금

바이든은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오프라인 집회를 중단하고 델라웨어주 웰밍턴 자택의 지하에서 ‘줌(xoom)’으로 화상 모금 회의를 하면서 부자들로부터 수십만 달러씩을 모금했다. 당시 트럼프는 “바이든은 어디 있느냐” “코로나가 무서워 지하실에 처박혀 있다”고 조롱했지만, 바이든은 거의 공짜인 1시간반짜리 화상 모금으로 수백만 달러를 거뒀다고, NYT는 전했다.

◇기부자 호화 파티 비용 400만 달러는 트럼프 손으로

그런 가운데서도, 트럼프 캠프가 기부자들에게 아낌없이 베푼 호화로운 파티·행사는 많은 경우 트럼프 집안 소유 호텔이나 플로리다 주의 개인 휴양지인 마라라고에서 열렸다. 결국 선거 비용의 400만 달러는 도로 트럼프의 수중에 들어갔다.

물론 트럼프 캠프의 자금이 현재 동난 것은 아니다. 또 지금의 긴축 재정은 막판에 가장 필요한 곳에 화력을 집중적으로 쏟아 붓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국 대선에서 가장 돈이 다급한 시점에 인력 충원과 여행 경비, 광고 예산을 세밀하게 따져 집행해야 하는 현(現)상황은 트럼프가 애초 가장 피하려고 했던 대목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