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2일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2차 평화 협상을 벌였지만, 포로 교환을 제외하고는 전면 휴전과 종전 조건을 둘러싼 입장차만 확인한 채 약 1시간 만에 회담을 끝냈다. 러시아는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자포리자 등 러시아 점령지 인근에서 우크라이나군 철수와 외국 군사 지원 중단 등을 전면 휴전의 전제 조건으로 내세웠고, 우크라이나는 강력한 안전 보장과 함께 정상 간 직접 회담을 통해 영구 평화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맞섰다.
이날 회담은 이스탄불 츠라안궁에서 당초 예정 시각보다 1시간 30분가량 지연된 오후 2시 40분쯤 시작돼 오후 3시 50분쯤 종료됐다. 본 협상에 앞서 블라디미르 메딘스키 러시아 대통령 보좌관과 루스템 우메로우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이 별도로 2시간 30분가량 사전 회동을 가졌다. 협상에는 러시아 대표단 12명, 우크라이나 대표단 14명이 참석했다. 우크라이나는 1차 협상에 불참했던 군사·법률·인권 전문가 2명을 새로 포함시켰다.
메딘스키 보좌관은 이날 회담 후 “러시아는 지속 가능한 평화 실현을 위한 ‘단계적 휴전 방안’(평화 각서 초안)을 우크라이나 측에 제시했다”며 “일부 전선에서는 전사자 수습을 명분으로 한 2~3일간의 일시 정전도 포함됐다”고 밝혔다. 러시아 측이 전달한 이 문서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동남부 점령지(노보 러시아)에서 우크라이군 철수, 외국의 군사 지원 중단, 계엄령 해제 후 100일 내 대선 실시, 정치범 사면, 군사력 감축 및 비핵화 등이 휴전 조건으로 명시됐다. 또 종전 조건으로는 크림반도와 도네츠크·루한스크·자포리자·헤르손 등 점령지의 러시아 영토 인정, 우크라이나의 나토 불가입, 외국군 주둔 금지, 러시아어 사용자 권리 보장 등이 포함됐다고 러시아 관영 매체들은 보도했다.
우크라이나도 자국의 조건을 담은 문서를 러시아에 전했다. 이 문서에는 러시아의 점령지 주권 주장 불인정, 유럽연합(EU)·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자유, 전후 보상 및 재건, 전쟁범죄 책임자 처벌 등을 명시한 포괄적 평화안이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참석하는 정상회담에서 영구 휴전과 평화 협정을 최종 타결하자고 제안했다. 우크라 측은 러시아가 억류 중인 아동 339명의 명단도 전달하며 송환을 요구했고, 미국과 합의한 바 있는 ‘30일간 무조건 전면 휴전안’도 함께 제시했다.
양측이 유일하게 합의한 분야는 포로 교환이다. 양국은 25세 미만 병사, 중상자 및 중증 질환 전쟁 포로 전원의 교환, 전사자 시신을 교환키로 합의했다. 러시아는 “포로 교환 규모가 1000명을 넘을 수 있으며, 중상자 교환을 정례화하기 위한 ‘의료 위원회’ 설치에도 동의했다”고 밝혔다. 포로 교환은 이르면 다음 주부터 이뤄질 예정이라고 로이터 등은 보도했다.
하지만 협상 종료 후에도 양측의 설전은 이어졌다. 러시아 대표 메딘스키 보좌관은 “납치된 아동은 없으며, 구조된 것”이라고 주장했고, 우크라이나 대표 우메로우 국방장관은 “이제는 핵심 의제를 정상 간 대화로 해결할 때”라며 젤렌스키와 푸틴 간의 정상회담을 거듭 촉구했다. 러시아는 이에 대해 “고위급 협상에서 실질적인 진전이 있을 경우에만 정상회담이 가능하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양측은 3차 협상 개최에 합의했지만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는 6월 20~30일을 제안했으며, 양측의 제안 검토 이후 협상이 재개될 전망이다. 그러나 여전히 극명한 입장 차로 인해 휴전이나 종전 조건에 있어 실질적 진전이 이뤄지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편 중재자 역할을 자임한 튀르키예는 이날 러시아·우크라이나·미국 3국 정상이 참여하는 4자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스탄불이나 앙카라에서 회담을 하길 바라며,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초대하고 싶다”고 밝혔다.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열린 나토 동·북유럽 회원국 정상회의에 참석 중인 젤렌스키는 협상 종료 후 기자회견에서 “어제 벌어진 ‘거미줄 작전’ 같은 압박 수단이 몇 개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며 “트럼프와 마지막 통화에서 말했듯 휴전 진전이 없으면 미국의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그는 이날 동유럽 국가 정상들과의 회동에서도 “협상이 실패할 경우, EU와 미국의 제재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