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입’이라 불리며 서방에서 가장 악명 높은 선전 선동가인 러시아 국영방송(Rossiya-1) 정치토크쇼 진행자인 블라디미르 솔로비요프(Solovyov)가 제작한 유아용 ‘지정학’ 프로그램이 곧 러시아 국영방송과 그의 미디어를 통해 소개된다.

솔로비요프키즈(SolovyovKids)라고 이름 붙여진 이 프로그램의 30초짜리 첫 방송 예고편 ‘페소치니차(sandboxㆍ’모래 놀이터’라는 뜻)’에는 아기 얼굴의 푸틴 러시아 대통령,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북한 김정은,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스페이스X의 일론 머스크 6인의 만화 캐릭터가 등장한다.

솔로비요프는 “애국심은 어릴 때부터 심어져야 하며, 분석적인 사고는 초등학교 1학년 이전에 자라나기 시작한다”며 “삽 한 자루를 놓고 갈등을 빚는 모래밭 놀이터처럼, 아이들이 지정학을 토론할 수 있는 곳이 또 있느냐”고 이 프로그램의 취지를 말했다.

첫 회 ‘모래 놀이터’의 짧은 예고편에서는 아기 지도자 6명이 화상 회의를 갖는다. 아기 푸틴은 유도복 차림에 곰인형과 군함 모형을 옆에 두고 앉았고, 머스크는 테슬라 전기트럭인 사이버트럭 장난감을 만지락거렸다. 김정은은 로켓을 두 손으로 쥐고 있다. 트럼프는 트레이드마크인 남색 정장에 빨간 넥타이, 앵무새처럼 부풀린 금발 머리 아기로 표현됐다.

푸틴의 입이라고 불리며, 정보 왜곡과 선전 선동으로 악명 높은 러시아의 앵커 솔로비요프가 유아 세뇌용으로 제작한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의 첫 회에 등장하는 아기 지도자들 캐릭터./텔레그램 스크린샷

이 지도자들은 또 아이콘(아바타)으로도 묘사된다. 푸틴은 털모자에 붉은 별이 달린 곰으로, 김정은은 핵 버섯구름으로, 트럼프는 교황 복장을 하고 신도들에게 축복을 내리는 모습이다.

트럼프가 “왜 러시아 온라인 플랫폼에서 대화해야 하느냐”고 묻자, 아기 푸틴은 “너희 스카이프(Skype)가 죽었으니까”라고 대꾸한다. 마이크로소프사는 지난 5일 화상 통화앱인 스카이프의 서비스를 종료한다고 발표했다.

이어 에르도안이 다른 아기 지도자들에게 “5월15일 이스탄불로 놀러오라”고 제안한다. 이날은 튀르키예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푸틴과의 평화협상을 위해 직접 대면(對面) 회담을 하자고 제의한 날이기도 하다.

이에 아기 머스크는 장난감 전기차를 갖고 가겠다고 말하고, 아기 마크롱도 참석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아기 김정은이 “너는 못 와. 항상 할머니랑 같이 다니잖아”라고 말한다. 마크롱(47)의 아내 브리지트(72)가 25세 연상인 것을 비꼰 것이다. 그 직후에 한 여성 음성이 “에마뉘엘, 그만 꺼”라고 말한다.

영국의 더 타임스는 “이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은 러시아 정부가 푸틴의 세계관을 러시아 아동들에게 전파하기 위해 추진 중인 전방위 캠페인의 일환”이라고 전했다.

지난 1월 새로 배포된 러시아 10대용 역사 교과서는 우크라이나를 “나치 국가”로 규정하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러시아의) 생존과 역사적 미래가 달린 문제”라고 기술한다. 이 교과서는 또 2020년 미국 대선은 “민주당의 명백한 부정선거로 트럼프가 패배했다”고 서술한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솔로비요프는 우크라이나가 “파시스트 정권”이며 우크라이나인들이 “사탄을 섬긴다”고 주장해 왔다. 그는 또 그해 4월 키이우 인근 도시인 부차(Bucha)에서 러시아군이 저지른 대규모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도 “영국 정보기관이 벌인 자작극으로, 발음이 ‘도살자(butcher)’와 비슷한 이 도시를 선택했다”고 터무니없는 말을 했다.

솔로비요프는 ‘솔로비요프키즈’가 “어린이 시청자들에게 강대국이 지배하는 세계로 가는 문을 제공한다”며 “아이들이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시사 이슈를 설명하는 최고의 교실”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솔로비요프의 거짓 주장 선전에도, 러시아 청소년들이 모두 속는 것은 아니다. 지난 3년 간 러시아에서 일어난 반전(反戰) 시위에서 체포된 10대는 500명이 넘는다.

‘모래놀이터’ 예고편에 대한 서방 네티즌들 반응도 우려와 냉소가 섞였다. 소셜미디어 X의 한 네티즌은 “두뇌를 썩히기 위해 왜 어른이 되기까지 기다리겠느냐. 러시아 취향을 곁들인 북한 탁아소 같다”고 썼다.

또 “성인들을 더 이상 속일 수 없으면, 사실과 허구를 분간할 수 없는 아기들을 겨냥하자는 게 솔로비요프 생각” “현재 러시아의 정신 상태가 어떤 지를 집약해서 보여주는 애니메이션” “솔로비요프는 곧 괴벨스와 같은 운명을 맞을 것”이라는 댓글도 있었다. 나치 독일의 선전 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는 히틀러가 자살한 다음날인 1945년 5월1일 여섯 자녀를 청산가리로 살해하고, 부부는 총기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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