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내부 인테리어와 최신 시설을 둘러본 카타르 왕실의 ‘선물’ 전용기가 지난 2월16일 플로리다 주 팜비치 국제 공항 활주로에 앉아 있다. 이 기종은 13년 된 보잉 747-8으로 처음 보도한 ABC뉴스는 '하늘을 나는 궁전'이라고 표현했다./AFP 연합뉴스

“사우디에서 2500만 달러, 여성을 죽이고 끔찍하게 대하는 카타르에서도 거액 기부를 받은 빌 클린턴 재단은 범죄 기업이요. 힐러리 목표는 최고가(最高價)를 제시하는 나라에 백악관을 파는 것…본질적으로 부패한 거래이고, 내 목표는 외국 자금을 미국 정치에서 몰아내는 것이다.”(2016년 10월 미 대선 3차 토론ㆍ트럼프 후보 발언)

“카타르는 역사적으로 최대의 테러 자금줄”(2017년 6월 트럼프 대통령 발언)

이랬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 카타르 왕실의 4억 달러(약 5656억 원)짜리 초호화 점보제트기(보잉 747) 선물을 받아 임기 중에는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원(Air Force One)’으로 이용하고, 퇴임 후에는 개인 모금으로 운영되는 대통령 기념관(museum)에 보내겠다고 밝혔다. 이 말대로라면, 일단 미국 국방부 소유의 공무(公務)로 사용하고, 이후에는 개인이 소유한다는 것이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은 퇴임 후에는 이 제트기를 “타지 않겠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13년 된 카타르 왕실의 점보기를 받겠다고 밝힌 것은 애초 작년이었던 보잉 사의 신형 에어포스원 2대의 납기(納期)가 계속 미뤄져 2027년에야 가능한 것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민주당뿐 아니라 공화당 주요 정치인들과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윤리적 논란이 거세게 제기된다. 세계 최고 권력의 상징물을 중동 왕실에서 받는 게 합당하냐는 비판과, 에어포스원이 갖춰야 할 각종 보안과 안전성, 군사적 특성을 고려할 때 내부를 완전히 뜯어내야 하는데 임기 중에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기술적 문제도 제기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 리야드에서 사우디 왕세자와의 양자 회담에서 합의문에 서명하고 있다./AFP 연합뉴스

트럼프는 논란이 확산되자, 12일 카타르 선물을 거절하면 “멍청한 사람”이라며, 골프에 빗대 “상대가 퍼팅을 봐주면 ‘고맙다’하고 공을 집어 다음 홀로 가야지, ‘아니오. 치겠다고 했다가 실수하면 멍청한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카타르의 점보기 제공 수락을, 미국이 카타르에 제공하는 안보 서비스에 대한 ‘맞거래(quid pro quo)’로 본다. 그는 “우리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카타르를 안전하게 지켜주고 있소. 우리가 없었다면, 지금 그들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카타르 왕실 소유의 이 점보기는 세계에서 가장 호화로운 개인 전용기로, 침실 3개와 전용 라운지, 집무실을 갖췄으며 현재 플로리다 주 팜비치 공항에 주기(駐機)돼 있다. 트럼프는 지난 2월 이 제트기를 둘러봤다.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내에서도 반발 우려

트럼프 행정부의 팸 본디 법무장관은 카타르 왕실의 제트기를 미국 정부가 받는 것이 “적법하다”고 밝혔다. 그는 과거에 카타르 정부의 로비스트로 등록해 활동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13일 의회에서 “도대체 어느 미국 대통령이 외국으로부터 4억 달러짜리 선물을 받았느냐” “무모하고 뻔뻔스럽고 부패의 극치”라고 맹비난했다.

랜드 폴 공화당 상원의원도 단호하게 “노(No)”라며 “보기에도 좋지 않고, (부패) 냄새도 좋지 않다”고 말했다. 존 튠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차세대 에어포스원의 납기가 엄청 지연된 데 대한 대통령의 불만은 이해하지만, 이게 올바른 해결책인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열렬한 트럼프 충성 지지자인 인플루언서 로라 루머는 “나는 트럼프를 위해 총알도 맞을 수 있지만, 정말 실망스럽다. 이건 신사복 입은 지하디스트(이슬람 전사들)들이 주는 4억 달러짜리 선물이고, 이번 행정부에 큰 오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공적(公的)으로 받고, 후에 사용(私用)으로 전환?

미 헌법은 대통령을 포함한 유급 공직자가 의회 동의 없이 외국 정부로부터 어떤 형태의 선물ㆍ수당ㆍ보수ㆍ직위ㆍ작위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외국 사익(私益ㆍ Foreign Emoluments) 수수 금지 조항’을 명시하고 있다. 또 1966년에 제정된 ‘외국 선물 및 훈장 법(Foreign Gifts and Decorations Act)’을 포함해, 관련된 여러 법률이 있다. 기본적으로 미국 공직자가 의회 동의 없이 받을 수 있는 선물의 최대 가치는 480달러(약 68만원)이다. 이를 넘기면, 의회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

카타르 왕실의 제트기를 미국 정부가 수령(受領)해도, 나중에 이를 트럼프가 자신의 개인 기념관에 기증하면 이는 ‘개인적인 선물’이 돼 법을 위반할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 13일 보수적인 월스트리트저널 사설은 “(퇴임 해인) 2029년에 트럼프가 이 비행기를 몇 년 더 타고 다니겠다고 마음을 바꾸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며 “트럼프가 강조하는 ‘절약’은 미 연방예산 전체에서 보면 무시할 수 있는 소수점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도 “카타르 제트기는 2029년이 돼도 거의 새것이라서, 트럼프 재단이 이 비행기를 계속 사용할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고 보도했다.

트럼프가 예로 든 레이건 대통령 도서관에 전시된 퇴역 에어포스원은 이와는 경우가 다르다. 레이건 도서관은 미 국립기록관리청(NARA)이 운영하는 도서관(library)과 사적인 레이건 재단이 운영하는 기념관(museum)이 붙어 있고, 전시된 에어포스원은 비행 불가 상태이며, 소유주인 미 공군이 도서관 측에 ‘기증’이 아니라 ‘영구 대여’한 것이다.

5월 2일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의 샌안토니오 국제공항에 모습을 드러낸 카타르 왕실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선물한 보잉747-8./AP 연합뉴스

◇카타르의 선물? 뇌물?

11일 백악관 대변인 캐롤라인 레빗은 “트럼프 대통령은 오직 미국인의 이익만 위해 일한다”며 트럼프가 외국 정부의 ‘뇌물’에 영향 받을 가능성을 부인했다. 백악관 법률 고문팀은 이 점보기를 받아도 트럼프의 어떤 공식적 행위와 연결돼 있는 게 아니어서 ‘뇌물 수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WSJ 사설은 “카타르는 트럼프에게 최소한의 호의라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만약 에미르(군주)가 백악관에 전화해 이란ㆍ이스라엘ㆍ중동 정세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전달한다면, 트럼프는 그 전화를 안 받을 수 있겠느냐”며 “유권자들이 이런 점을 의심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대통령직의 품격을 손상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프랑스의 ‘자유의 여신상’ 선물은 1877년 미 의회의 공동 결의를 통해 이뤄졌다.

워싱턴대학교(세인트루이스 소재) 로스쿨의 정부 윤리 전문가인 캐슬린 클라크 교수는 13일 미 공영라디오(PBS) 인터뷰에서 “이건 불법적이고 위헌적인, 외국 정부가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뇌물(payoff)로 보인다”며 “그것도 무려 4억 달러 규모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수준”이라고 평했다. 그는 “건국의 아버지들이 헌법에 ‘외국 사익 수수 금지 조항’을 넣은 것은 외국 정부의 이해 충돌에 물드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라며 “이는 공개한다고 해서 죄가 없어지거나 이해 충돌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에도, 외국의 고위 관리들이 트럼프 소유 호텔 객실을 예약하는 것을 놓고 이 헌법 상의 조항 위반 논란이 일었다. 워싱턴포스트는 “어떤 사안이 법적으로 허용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좋은 정치(good governance)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一家의 카타르ㆍUAE 투자 사업

한편 트럼프의 아들들이 운영하는 트럼프 그룹은 트럼프 대통령이 4일간 순방 중인 중동 4개국에서 여러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4월 30일 트럼프 그룹은 두바이 중심부에 80층짜리 초호화 주거ㆍ호텔인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 앤 타워’ 건설 계획을 발표했고, 5월 초에는 카타르 수도 도하 북부에 18홀 골프장ㆍ고급 빌라 단지를 조성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 건설 프로젝트엔 사우디 건설사와 카타르 국영 부동산개발사가 참여한다.

◇보잉의 에어포스원 제작은 왜 늦어졌나

미국 대통령의 에어포스원은 2대로, 모두 35년 된 노후 항공기다. 조지 H W 부시 때부터 타던 것이다. 그래서 트럼프 1기때인 2018년 7월, 보잉은 39억 달러 고정 가격에 2024년까지 신형 에어포스 2대를 납품하기로 했다.

이 항공기들은 미사일 방어 시스템, 해킹 및 핵폭발에 대비한 전자 보호 장치, 국방부와 직접 통신이 가능한 고급 통신 시스템 등 대통령 전용기에 특화된 기능을 갖추도록 설계돼야 한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붕괴, 주요 협력업체의 파산, 미 국방부의 까다로운 보안 인가 절차로 인한 인력난, 내부 설계 지연 등으로 인해 2027년까지 납기가 연기됐다. 보잉은 이 계약으로 이미 25억 달러 손실을 입었고, 잇단 항공기 추락 사고로 인해 회사의 신뢰도는 떨어졌다.

◇‘하늘 위 궁전’을 ‘에어포스원’로 개조해도 ‘골칫거리’

카타르 왕실의 전용기는 호화로운 인테리어를 갖춘 ‘하늘 위의 궁전’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카타르 왕실 전용기를 받아도, 이는 기체(frame)만 받는 것이지, 전자 감청과 방첩(防諜) 기능ㆍ통신 장비ㆍ미사일 방어 시스템 등을 갖춘 현재의 에어포스원처럼 군용화(軍用化)하려면 결국 내부를 완전히 해체해야 한다. 그리고도 안심할 수 없다.

'하늘의 궁전'으로 개조된 카타르 왕실의 보잉 점보기(B-747) 내부

현재의 에어포스원 항공기들은 냉전 말기부터 설계돼 핵폭발에도 견딜 수 있고, 기내 수술실도 있고, 공중에서 급유를 받을 수 있다. AP 통신은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미국 권력의 상징인 에어포스 원이 윤리, 법적, 안보 및 방첩상의 우려가 얽힌 하늘 위의 골칫거리로 전락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하늘의 궁전’으로 개조된 왕실 전용기에 에어포스원의 일부 기능을 추가하는 정도가 아니라 전체 기능을 신속하게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급히 개조하려다가 되레 미국 대통령의 안전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트럼프 1기 때 미 국가방첩안보센터(NCSC) 국장을 지낸 윌리엄 에바니나는 소셜미디어에 “기존 항공기에서 스파이 장비를 탐지하고, 전체를 분해해 평가하는 데만도 수년이 걸린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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