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부터 이번 주 내내 고품격 오페라 축제의 명소이자 모차르트의 고향인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시에선 특이한 이름의 시위가 열리고 있다. ‘잘츠부르크 포르쉐 터널 페스티벌.’ 터널 건축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붙인 이름이다.
사연은 이렇다. 포르쉐와 폭스바겐 두 브랜드의 지주회사 감독위원회 회장인 볼프강 포르쉐 회장(81)은 2020년 10월 잘츠부르크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파싱거 슐뢰슬(Schlösslㆍ작은 성, 저택이란 뜻)’이란 이름의 저택을 840만 유로(약 135억 원)에 사들였다. 창업자 페르디난트 포르쉐의 손자인 포르쉐 회장은 이후 이 건물을 광범위하게 내부 수리를 했고, 이 집을 가끔 머무는 별장으로 쓸 계획이다.
잘츠부르크의 카푸지너베르크 산 언덕에 위치한 이 집은 또 1920~1930년대 유대계로 유럽의 대표적인 작가였던 슈테판 츠바이크가 1917~1937년 거주했던 유서 깊은 저택이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은 ‘빌라 츠바이크(Villa Zweig)’라고도 불린다. 츠바이크는 이곳에서 20만 장의 원고를 썼고, 국내에도 ‘마지막 수업’ ‘광기와 우연의 역사’ 등 다수의 책이 번역 소개됐다.
하지만, 문제는 시내에서 이 저택까지 오르는 접근로였다. 포르쉐 회장이 새로 구입한 산 위의 ‘빌라 츠바이크’에 도달하려면, 좁고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가파르게 올라야 한다. 이 길은 또 시내 전체를 보려고 걸어 오르는 수많은 관광객들과 주민들의 차량으로 늘 붐빈다.
포르쉐 회장 측이 낸 아이디어는 산 밑에 있는 시내의 린처가세(Linzer Gasse) 공영 지하주차장을 전용으로 임차하고, 이 주차장에서 별장까지 500m의 개인 터널을 산속에 뚫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별장 밑에는 12대의 차량을 주차할 수 있는 십자(十字) 형태의 주차장을 짓는다는 계획이었다. 오스트리아 언론에 소개된 총공사비는 1000만 유로(약 161억 원).
포르쉐 회장 측은 이 프로젝트를 작년 3월 시로부터 승인 받았고, 터널 입구가 될 시내 지하주차장의 사용료 4만 유로도 시에 냈다.
그러나 작년 3월 선거에서 이 프로젝트를 승인했던 잘츠부르크 시장이 속했던 보수적인 오스트리아국민당은 패배했다. 현재 시장은 사민당 소속이고, 시 의회는 공산당과 녹색당 등 좌파가 다수당이다. 결국 시의 정권이 바뀌면서, 당시에는 조용히 넘어갔던 ‘포르쉐 터널’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영화 ‘사운드오브뮤직’의 실제 배경이었던 잘츠부르크에서 이 터널을 반대하는 좌파 세력은 “포르쉐 터널 승인은 시 의회도 모르게 작년 3월 선거를 전후해서 비밀리에 났다”며 “어떻게 수퍼 리치에 대한 행정 서비스는 이렇게 신속하고, 대중이 원하는 공공 터널 공사는 전혀 진척이 없을 수 없느냐”고 반발한다.
반대파는 포르쉐 회장의 입김을 비꼬아 구약 성경 창세기의 천지창조 구절을 빗대 “그리고 포르쉐가 말했다. ‘구멍[터널]이 있으라’”는 플래카드를 시내 곳곳에 붙였다.
시 의회의 녹색당 대표인 인게보르크 할러는 지역 매체에 “놀라운 것은 개인이 사적인 용도로 산을 파낼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할러의 요구에 따라, 잘츠부르크의 새 시장은 공영 주차장을 포르쉐에게 임대한 가격의 타당성을 조사했다. 그러나 시가 독립적으로 계산한 적정 가격은 3만 5305유로로, 포르쉐 회장이 오히려 더 지불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산 위에 집이 있는 포르쉐 별장의 이웃들은 터널을 자신들에게도 개방한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한 이웃은 “어차피 잘츠부르크는 이렇게 엄청난 부자들이 멋진 건물들을 지어서 유명해졌다”고 말했다.
포르쉐 회장은 주민들의 반대가 거세자, 초기엔 별장의 일부를 대중에게도 공개하겠다고 말했지만 현재 이 제안은 철회한 상태다.
포르쉐 터널을 짓고 산속 별장에 지하 주차장을 만드는 것은 잘츠부르크 시 의회의 표결을 거쳐서 도시 계획이 변경돼야 하는 사안이다. 그런데 결정적인 캐스팅 보트를 쥘 수 있는 베른하르트 아우잉거 시장(사민당 소속)은 과거에 포르쉐 감독위원회에서 노동자 대표로 활동한 적이 있다. 그래서 자신이 기권해야 할지 여부를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포르쉐 터널’은 오스트리아뿐 아니라, 유럽 각국과 브라질에서도 여러 반응을 일으켰다. 프랑스 일간지 르 파리지앵은 “그는 부자니까, 뭐든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고 썼고, 독일 일간지 빌트는 “포르쉐가 상당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썼다.
유대계 작가였던 츠바이크는 오스트리아가 나치 독일의 영향에 들어가자 브라질로 망명했고, 그곳에서 살다가 1942년 2월 아내와 함께 목숨을 끊었다.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과거 안식처가 말 그대로 밑에서부터 파헤쳐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독일 일간지 빌트는 포르쉐 창업자인 현재 회장의 조부 페르디난트 포르셰가 히틀러를 위해 폭스바겐 비틀의 원형을 설계했던 사실을 다시 들춰 보도했다.
포르쉐 터널 프로젝트의 운명을 결정할 잘츠부르크 시 의회의 표결은 5월 중순에 있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