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을 하루 앞둔 19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대선 승리 축하 집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남성 디스코그룹 '빌리지 피플' 공연을 지켜 봤다. /AFP 연합뉴스

“Young man, there’s no need to feel down, I said. Young man, pick yourself off the ground, I said(젊은이, 우울해할 필요 없어요. 젊은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요).

19일 워싱턴 DC의 실내 경기장 캐피털 원 아레나에서 열린 트럼프 지지자 집회에서 초대 가수 빌리지 피플이 무대에 오르자 장내는 거대한 디스코장으로 변했다.

이들이 라이브 반주에 맞춰 1978년 발표한 대표곡 ‘Y.M.C.A.’를 부르는 동안 트럼프는 지난해 대통령 선거 유세에서 그랬던 것처럼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듯 마는 듯한 어색한 몸동작을 선보였다. 트럼프가 대선 유세곡으로 고른 덕에 빌리지 피플도 뒤늦은 전성기를 맞고 있다. ‘Y.M.C.A’는 지난해 말 빌보드 댄스·일렉트로닉 차트에서 1위에 오르는 등 역주행을 펼쳤고, 멤버들은 이날 무대를 시작으로 트럼프 취임을 전후해 열리는 두 번의 무도회에서도 초청 가수로 공연한다.

트럼프는 이번 대선 전부터 빌리지 피플의 음악에 각별한 모습이었다. 2020년 10월 코로나 확진으로 격리된 뒤 업무에 복귀한 후 첫 유세장에서 ‘Y.M.C.A.’를 틀었다. 한 달 뒤 대선에서 조 바이든 전 대통령에게 고배를 마신 뒤 이듬해 1월 대통령 임기를 마무리하고 에어포스원에 탑승하는 고별 행사에서도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또 다른 히트곡 ‘마초맨(Macho Man)’도 트럼프의 유세장에서 자주 들렸다.

19일 미국 워싱턴 DC 캐피털 원 아레나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 축하 행사에서 트럼프(오른쪽에서 넷째)가 디스코 그룹 빌리지 피플과 함께 노래 ‘Y.M.C.A.’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AP 연합뉴스

이렇게 트럼프가 빌리지 피플의 ‘찐팬’이 된 데는 뉴욕이라는 공간적 배경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트럼프와 빌리지 피플 멤버들이 혈기 왕성한 청년기에 뉴욕을 배경으로 성공 신화를 그려나갔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빌리지 피플이 ‘Y.M.C.A.’를 발표한 1978년, 트럼프는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은 맨해튼의 부동산 거물로 성장하고 있었다. 워싱턴포스트는 “‘Y.M.C.A.’가 발표됐을 때 서른두 살의 트럼프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들을 클럽에서 만나 이 노래를 들었을 것이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했다.

이런 트럼프를 빌리지 피플은 한때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특히 트럼프 1기 마지막이던 2020년 미 전역에서 인종차별 반대 시위(BLM·흑인 목숨도 소중하다)가 걷잡을 수 없이 격화했을 때 트럼프가 시위 진압을 위해 군사력을 동원하겠다는 방침을 밝히자 빌리지 피플 멤버들은 “더 이상 우리의 노래를 사용하지 마라”라고 반발했다.

2023년에도 빌리지 피플 복장을 한 그룹이 트럼프의 플로리다 마러라고에서 공연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빌리지 피플은 공연을 중단하라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당선하면서 빌리지 피플의 입장도 바뀌었다. 빌리지 피플 원년 멤버인 빅터 윌리스(74)는 작년 12월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당선인이 진정으로 이 노래를 좋아하는 것 같아 노래 사용을 계속 허용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빌리지 피플은 지난 14일 공식 X 계정에 멤버 전원의 사진과 함께 “대통령 취임 행사에서 공연하게 돼 행복하다”는 소감을 올렸다.

빌리지 피플이 데뷔 때부터 성소수자 코드가 매우 강한 뮤지션이라는 점도 새삼 주목받고 있다. 트럼프의 지지층은 보수 성향의 독실한 기독교인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도 대선 유세에서 군대 내 성전환자 복무 금지 등의 성소수자들이 반발하는 공약을 내세웠다.

그런데 빌리지 피플의 팀 이름에 나오는 ‘빌리지’부터가 뉴욕 성소수자 거주 지역인 ‘그리니치빌리지’를 뜻한다. 1977년 팀 결성을 이끈 프로듀서 중 한 명인 자크 모랄리를 비롯, 팀을 거쳐간 멤버 20여 명 중 상당수가 동성애자다. 이들이 경찰·군인·노동자·폭주족 등 남성성이 강한 캐릭터로 분장해 무대에 오르는 것 역시 남성 동성애자가 주축인 팬층 취향을 반영했다고 알려졌다.

대표곡 ‘Y.M.C.A.’도 동성애 코드가 숨은 노래로 알려져 있다. 노래의 소재인 기독교청년회(YMCA)는 표면적으로는 젊은이들의 문화 교류 공간이지만, 남성 동성애자들의 은밀한 만남의 공간으로도 활용됐다는 점도 가사에 담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빌리지 피플 음악에 대한 트럼프의 애착이 의외로 유연한 성소수자에 대한 그의 시각을 보여준다는 얘기도 나온다. 트럼프는 2기 행정부 핵심 각료로 스콧 베센트 재무 장관과 리처드 그리넬 대북 특사 등 남성 동성애자 두 명을 기용했다.

한편 이번 트럼프 취임 행사에서 공연하는 가수들의 면면을 보면 역대 대통령 취임식과 대조된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날 지지자 집회에서는 트럼프의 열성 지지자인 컨트리 가수 리 그린우드(83)가 트럼프 등장에 맞춰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God Bless the USA)’를 불렀다. 컨트리와 록, 힙합을 합친 퓨전 음악을 발표해 온 키드 록(54)도 공연했다. 캐리 언더우드(42)와 제이슨 올딘(48) 등 컨트리 스타들도 취임 당일 공연자에 포함됐다.

통상 인종·세대 화합 메시지를 전하고 미국 문화의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다양한 음악 장르의 글로벌 팝스타들이 공연자로 나선 과거 대통령 취임식과 달리 트럼프 본인과 지지자 취향을 우선시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21년 조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식과 특별 공연에서는 레이디 가가, 제니퍼 로페즈, 저스틴 팀버레이크 등이 무대에 올랐다.

☞빌리지 피플

1977년 결성해 지금까지 활동 중인 남성 6인조 디스코 그룹. 각 멤버들이 아메리카 원주민·경찰·건설 노동자·카우보이·군인·오토바이 폭주족 차림으로 무대에 오르는 콘셉트를 유지해 왔다. 대표곡 ‘Y.M.C.A.’는 1979년 10월 빌보드 핫100 2위까지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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