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필리핀에서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1917~1989) 전 대통령 재임 당시 계엄령과 부패 등을 다룬 서적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 CNN 방송 등이 17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새 대통령으로 취임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인 페르디난드 봉봉 마르코스 주니어(65)가 부친 집권 시절을 미화하며 ‘역사 왜곡’에 나설 것이라는 우려에서라는 분석이다.
CNN 등에 따르면, ‘마르코스 계엄령: 다시는 안 돼’라는 책은 정가의 2배에 팔리고 있다. 세계 최대 온라인 서점인 아마존 등에서는 매진된 상태다. 저자인 라이사 로블스는 “다시 인쇄해 달라는 독자들의 이메일이 쏟아지고 있다”며 “5~10권을 구매하는 독자도 있다”고 CNN에 전했다. 마닐라대 출판부가 출간한 마르코스 시대 비판 서적 10여 종도 모두 팔렸다고 한다. ‘페르디난드와 이멜다 마르코스의 부부 독재’ ‘마르코스의 정실(情實) 자본주의’ 같은 책은 재인쇄에 들어갔다.
지난 5월 대선에서 승리한 마르코스 주니어는 취임 연설에서 “전 세계가 가문의 과거가 아닌 나의 행동으로 판단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자신의 아버지는 “1946년 필리핀 독립 이후 그 어떤 행정부 때보다 많은 업적을 낸 인물”이라고 치켜세웠다. 당장 그가 부친 집권 시절의 역사를 미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실제로 대선 직후 현지 유명 아동 전문 출판사인 아다나 하우스는 마르코스 전 대통령 시대를 다룬 책 5권을 묶어 20% 할인 판매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다가 현지 정보 당국으로부터 “어린이들을 급진적으로 만든다”는 경고를 받기도 했다.
1965년부터 21년간 필리핀을 철권 통치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1986년 부정선거를 강행하다 ‘피플 파워(민중 혁명)’에 밀려 실각했다. 그는 망명지인 미국 하와이에서 1989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사치를 일삼았던 부인 이멜다(93)는 실각 당시 구두 3000켤레와 핸드백 888개를 보유한 사실이 공개돼 국제적 지탄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