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17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군의 남동부 요충지인 마리우폴을 완전히 장악했다. 마리우폴의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서 항전하던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이 ‘지옥의 무기’로 불리는 백린탄(白燐彈)을 투하한 지 하루 만에 전투 종료를 선언하며 사실상 항복했다. 이로써 러시아는 침공 82일 만에 친러 반군이 장악한 동부 돈바스 지역과 2014년 무력 합병한 크림 반도를 연결하는 전략적 거점을 확보했다.
이날 새벽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마리우폴에서의 ‘작전 임무’를 끝냈다”며 “중상자 53명을 포함, 총 264명의 장병이 아조우스탈 제철소를 빠져나와 친러 정부인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 지역 의료 시설로 이송됐다”고 밝혔다. 중상자가 아닌 우크라이나군은 DPR이 장악한 지역인 올레니우카로 이송될 예정이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영웅들을 가능한 한 빨리 송환하기 위해 러시아 포로와 교환하는 절차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나 말랴르 국방차관은 “마리우폴의 수호자들 덕분에 우크라이나는 매우 소중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며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포로 교환 협상이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아조우스탈에 남은 장병에 대해서는 “구조 임무가 진행 중”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항복한 군인들은 국제법에 따른 대우를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마리우폴은 지난 2월 말 러시아의 침공 초기부터 두 달 넘게 집중 포위 공격을 받았다. 도시와 산업 시설 대부분이 파괴됐고, 도시 인구의 10%에 육박하는 4만여 명이 숨졌다. 피란민은 30여만 명에 달한다. 이와 관련, 16일 오후 우크라이나 서부 도시 르비우의 한 카페에서 만난 올가 피쿨라(Pikula) 마리우폴 시의회 부의장은 “마리우폴을 싱가포르처럼 부유하고 아름다운 도시로 만드는 꿈을 하나씩 실현하고 있었는데, 러시아 침공으로 죽음과 파괴를 상징하는 도시가 돼버렸다”고 한탄했다.
피쿨라 부의장은 “전쟁 피해자 대부분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동포’라고 부른 러시아어 사용자들”이라고 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번 전쟁을 일으키며 “이른바 ‘나치 민족주의자들’에게 핍박받는 우크라이나의 러시아어 사용자를 해방시켜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상은 정반대였다는 것이다. 그는 “나 자신을 포함해 마리우폴 시민의 90% 이상이 러시아어를 모어(母語)로 쓰는데, 러시아군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우리를 학살했다”고 개탄했다. 그는 지난달 22일 포위된 마리우폴을 맨몸으로 빠져나왔다.
피쿨라 부의장은 “군인은 물론 많은 민간인이 (국제법으로 사용이 금지된) 백린탄에 희생되고 있다”고 증언했다. 백린탄 폭격으로 건물을 통째로 무너뜨렸다는 것이다. 러시아군은 앞서 체첸과 시리아 등 시가전에서도 ‘초토화 전술’을 펼치며 백린탄을 사용한 전력이 있다. 그는 “도시는 점령당했지만, 시민의 저항 정신이 살아있는 한 러시아군에 넘어간 것이 아니다”라며 “꼭 마리우폴을 되찾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