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열린 주요 7국(G7) 외교·개발장관회의의 최종 공동성명에 ‘주요 7국이 대만의 국제기구 참가를 지지한다’는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 대한 동맹국들의 공동 대응을 강조하던 미국이 중국이 강력 반대해 온 ‘대만의 국제기구 가입’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5일 일본의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미 국무부 고위 관계자는 전날 취재 기자단을 만난 자리에서 “(G7 공동성명에) 대만이 세계보건기구(WHO) 등 국제기구에 참가하는 것에 대한 강한 지지를 명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대만은 (WHO 등 국제기구에) 참가할 권리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신종 코로나 대책과 관련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많은 경험을 갖고 있다. 그들을 배제하는 것은 자멸적”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미 국무부 고위 관계자도 “이 커뮤니티(G7)에서 보게 될 것 중 하나는 WHO나 세계보건총회(WHA)와 같은 국제기구들에 대해 대만의 의미 있는 참여를 강력히 지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G7 공동 성명에 대만의 국제사회 복귀를 지지하는 문구가 포함될 경우, 중국이 강력하게 반발할 것으로 보여 미·중 간의 대결이 더욱 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을 의식해 대만 문제 언급을 꺼려왔던 우리 정부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대만은 WHO의 창립 멤버였으나 1971년 중국의 유엔 가입 이후 유엔과 WHO 등 산하 기관에서 퇴출됐다. 대만은 친중(親中) 성향 정부가 집권했던 2009~2016년엔 ‘옵서버’(발언권은 있지만 의결권은 없는 참여국) 자격으로 WHO 총회에 참가했지만, 2017년부턴 그마저도 할 수 없게 됐다.
미 국무부 관계자는 “중국 관련 문제가 G7 회의 중 가장 중요한 의제였다”며 “외교장관들은 회의 중 특히 중국 인권 문제에 대한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달 미·일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도 미·일은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했었다.
한편, G7 회의에 참석 중인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역시 이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중국을 겨냥해 “(중국과의 경제 관계에서)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할 어떤 기본적인 기준과 규칙들이 있다”며 “동맹국들이 이런 높은 기준을 지키는 것을 보고 싶다”고 했다. 이는 한국을 포함한 핵심 동맹국들이 중국의 ‘반(反)시장 정책’ 등에 맞서 자유주의와 시장경제, 인권이라는 기본 가치를 중심으로 ‘대중(對中) 견제 전선’에 동참해 달라는 ‘우회적 압박’으로 해석됐다.
한·미·일, 대북제재 논의했다는데... 한국은 관련내용 쏙 빼고 발표
G7(주요 7국) 외교장관 회의 참석차 영국을 방문 중인 정의용 외교장관이 5일 런던 현지에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상과 만나 최근 재검토 작업을 마친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세 장관은 안보리 제재 이행 등 대북 압박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했지만 한국 외교부는 이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 북한 비핵화에 대해 미국과 일본이 제재 이행에 무게를 둔 반면, 한국은 미북 대화 재개를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한·미·일 외교장관 회의는 작년 2월 독일 뮌헨안보회의를 계기로 열린 지 15개월 만에 성사됐다. 지난 2월 취임한 정 장관이 모테기 외무상과 처음 대면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두 장관은 한·미·일 외교장관 회의 직후 20분간 별도의 약식 회담을 했다.
블링컨 장관은 약 50분 진행된 이날 회의 직후 트위터에 “오늘 북한의 핵·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공통의 우려와 관련, 한국의 정 장관과 일본 모테기 외무상을 만났다”며 “우리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3국 협력에 대한 공약을 재확인했다”고 썼다.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세 장관은) 핵확산 방지를 위한 유엔 회원국들의 안보리 결의(제재)들을 완전히 이행할 필요성에 대해 동의했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하지만 우리 외교부 발표엔 ‘결의 이행’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 같은 표현들이 빠졌다. 대신 “정 장관이 블링컨 장관, 모테기 외무상과 회의를 갖고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3국 간 협력 방안 및 역내 정세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만 했다.
외교부는 “블링컨 장관은 미측의 대북 정책 검토 결과를 한·일 양측에 설명했으며, 세 장관은 향후 대북 정책 추진 과정에서도 3국 간 계속 긴밀히 소통·협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앞서 바이든 정부는 최근 재검토를 마친 대북 접근법과 관련, ‘일괄 타결’이나 ‘전략적 인내’와는 다른 ‘제3의 길’을 가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과거 트럼프 대통령 때와 달리 정상회담을 통한 ‘일괄 타결’보다는 제재와 대화를 병행하는 강온 전략을 동시에 구사하겠다는 구상이다. 미국은 이 과정에서 한·미·일 3국의 공조를 강조하고 있다.
외교부는 또 “한·미·일 외교장관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의 실질적 진전을 위해 공조를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앞서 모테기 외무상은 지난 3일 북한과 이란을 주제로 개최된 G7 외교장관 실무 환영 만찬 후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만찬에서) 북핵 문제와 관련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라는 목표를 유지하기로 의견이 모였다”고 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폐기 대상을 북한이 개발한 핵무기로 특정하는 표현으로 우리 정부나 북한이 사용해 온 ‘한반도 비핵화’보다 비핵화의 대상이 구체적이다.
당초 미국 주도의 대중 견제 전략에 대해서도 논의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지만, 회담에 참여한 외교부 당국자는 “미국이 검토를 마친 새로운 대북 정책을 차질 없이 이행해서 북한을 대화 테이블에 앉히는 방안이 논의됐고 중국 등 다른 이슈는 거론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전날 일본 교도통신은 이번 한·미·일 회동이 미국 측 제안으로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 국무부 부장관 등을 지내며 한·미·일 3각 협력을 중시했던 블링컨 장관은 바이든 정부 들어서도 대중 견제 등에 있어 한·일의 참여를 적극 요구하고 있다.
외교 소식통은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을 이행하는 데 한·일 관계 개선을 바탕으로 한 한·미·일 협력이 필수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한·일 양국이 (회담에) 적극적이지 않았음에도 미국이 회의를 밀어붙인 것은 이 때문”이라고 했다.
앞서 백악관이 새 대북 정책을 공개한 직후인 지난 1일(현지 시각) 미 국무부는 미국의소리(VOA)에 “미국, 한국, 일본 간 강력하고 효과적인 3국 관계는 공동의 안보와 이익에 매우 중요하다”며 “인도·태평양 구상과 역내외 국제 평화 및 안보 증진 등에 있어 세 나라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한·미·일 외교장관 회의 직후 외교부가 “세 장관은 한·미·일 협력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역내 평화·안보·번영을 증진시키기 위한 호혜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협력을 지속 모색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힌 것도 이런 미국의 의중을 반영한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