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그룹 창업주 마윈이 지난달 중국 규제 당국과 회담에서 핀테크 계열사 앤트그룹의 일부를 중국 정부에 넘기겠다는 제안을 했다고 20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중국인 10억명이 사용하는 중국 최대 전자 지급 결제 플랫폼 ‘알리페이’의 모회사인 앤트그룹은 지난달 5일 상하이와 홍콩 증시에 동시 상장해 약 345억달러(약 40조원)를 조달할 계획이었지만 돌연 상장준비 절차를 중단했다.
WSJ은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마윈이 지난달 2일 인민은행과 증권감독관리위원회 등 4개 감독기관의 ‘예약 면담’(豫談·웨탄)에 소환돼 질책을 받은 뒤 “국가가 필요로 한다면 앤트그룹의 어떤 플랫폼도 가져갈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웨탄은 중국 정부 기관이 감독 대상 기관 관계자나 개인을 불러 공개적으로 질타하고 요구 사항을 전달하는 형식의 면담으로 알려져 있다. 상하이·홍콩 증시 상장을 불과 며칠 앞두고 있던 앤트그룹은 웨탄 다음날인 3일 돌연 상장 준비 절차를 중단했다.
이를 두고 마윈이 지난 10월 24일 상하이에서 열린 와이탄 금융서밋 연설에서 당국이 ‘위험방지’를 지상 과제로 앞세워 지나치게 보수적인 감독 정책을 취하고 있다고 공개 지적한 것을 후폭풍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마윈은 당시 중국 은행을 담보와 보증만 요구하는 ‘전당포’에 비유하며 “중국 금융의 전당포 정신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며 “우리(중국)는 규제엔 강하지만 감독하는 능력은 부족하다”고 비판했고, 이날 연설 이후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중국 당국은 이후 정보기술(IT) 기업에 대한 규제 강화 정책을 연달아 내놨다. 지난달 10일 인터넷 플랫폼 기업의 독점 거래를 규제하는 가이드라인 초안이 나왔다. 지난 18일엔 앤트그룹이 개인이 알리페이를 통해 은행 예금을 하는 서비스를 중단했는데, 이는 금융 리스크가 높아지는 것을 회피하도록 규제 당국이 앤트그룹에 이 같은 조치를 요구한 것이라고 신랑망(新浪網)이 전했다.
시진핑 주석은 ‘반독점’을 강조하면서 거대 인터넷 기업들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중국 금융 당국과 가까운 소식통들은 중국 정부가 마윈의 제안을 받아들일지를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다만, 검토 중인 계획에는 앤트그룹에 더 엄격한 자본 규제를 적용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이 시나리오에 따라 강화된 규제 때문에 앤트그룹의 자금줄이 마르면, 국유 은행이나 다른 국영 기관이 매수에 나선다는 것이다. 익명의 중국 정부 관계자는 WSJ에 “최소한 그룹의 일부를 국유할 가능성이 0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중국 공산당은 앤트그룹에 앞서 여러 거대 민간 대기업을 굴복시켜 왔다. 다롄완다그룹, 안방보험그룹, 하이난항공(HNA) 등은 당국의 재산 매각 명령을 받거나, 국유화되거나, 창업주가 장기 징역형을 받는 등 곤욕을 치렀다.
미국 싱크탱크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마틴 초젬파 연구위원은 “앤트그룹이 구축한 금융 인프라의 일부가 이미 국유화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