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를 만들면서 내뿜는 탄소를 계산해보니 너무 많은 거예요. 그래서 나무를 심어 그 탄소들을 공기 중에서 없애자는 아이디어를 내게 됐죠.”
최근 영국 스코틀랜드에 서울 강남구 면적(39㎢)에 육박하는 부지(37.6㎢)를 사들이곤 이곳에 대형 숲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한 영국 맥주 회사 ‘브루독’ 공동 창업자 마틴 디키(38)씨 말이다. 지난달 23일(현지 시각) 화상 전화로 만난 그는 “이미 작년에 843만㎡(약 255만평) 규모의 땅에 1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했는데 이걸론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3306만㎡(약 1000만평) 규모의 땅을 또 샀다”고 말했다. 이 아이디어에 시민 20만명이 동참해 376억원을 크라우드펀딩(인터넷 소액 모금)에 투자했다. 그는 “세계 최초로 탄소 네거티브 맥주가 탄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회사는 나무를 심는 것뿐 아니라 탄소 배출량 자체를 줄이기 위한 일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맥주를 만들 때 쓰는 홉을 운반하는 데 쓰이는 연료를 줄이기 위해 아예 홉 농장 근처로 양조장을 옮겼다. 만들어진 맥주를 배송할 때 쓰는 대형 트럭도 지난달부터 전부 전기트럭으로 바꿨다. 양조장에서 쓰는 전기는 화력에너지가 아닌 풍력에너지다. ‘아들 하나, 딸 둘의 아빠'라는 디키씨는 “우리 어른들이 충분히 지구와 자연환경을 즐긴 것처럼 우리 아이들, 손자, 증손자들이 살기 좋은 자연에서 즐거운 삶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브루독의 움직임에 젊은 세대들이 열광했다. 브루독이 지난해 9월 탄소 네거티브 맥주를 만들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며 750만파운드(약 115억원)를 모금하는 크라우드펀딩을 시작하자 시민들이 투자금을 냈다. 단 6주 만에 목표액을 가뿐히 넘겨 기간을 연장했다. 3일 현재 2434만파운드(약 376억원)가 모였다. 브루독은 “지속 가능한 성장에 대한 우리의 가치를 믿고, 우리와 함께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밝혔다. 디키는 “이들은 투자자가 아니라 우리의 맥주를 사랑하는 팬이자,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를 옹호해주는 후원자들”이라고 했다.
2007년 마틴 디키와 친구 제임스 와트(38)가 ‘지루하고 맛없는’ 영국 맥주에 신선한 충격을 주겠다며 창업한 브루독이 처음부터 착한 기업이었던 것은 아니다. 틀을 깨는 마케팅으로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의 지지를 얻어온 악동 같은 기업에 가까웠다. 탱크를 타고 런던 시내를 돌아다니거나, 러시아 푸틴 대통령을 조롱하는 맥주를 만들어 크렘린궁에 보낸 적도 있다. 영국 왕실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 결혼식에 맞춰 비아그라 성분이 들어간 맥주도 만들어 내놨다. 젊은 세대가 이 같은 활동에 열광했고 이 회사는 10년 만인 2017년 유니콘(10억달러 이상 가치의 비상장 스타트업)에 올랐다. 현재 기업 가치는 약 2조2200억원으로 평가된다. 디키는 “그동안 우리가 내놓은 맥주는 장난 같아 보이지만 의미 있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며 “푸틴에게 보낸 맥주도 러시아의 반동성애법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회사가 커진 만큼 우리가 지닌 가치를 현실화할 수 있는 힘이 생긴 건 긍정적인 변화”라고 했다. “고객이 많아진 만큼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한 번 더 환경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됐고, 같은 업종에 있는 다른 회사도 브루독의 방식을 보고 따라 할 수 있게 돼서 좋은 점도 많아요. 다 같이 지구를 위해 조금씩 노력하면 좋겠어요. 이 기사를 볼 한국 회사들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