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주제런가 맑고 고운산

그리운 만 이천봉 말은 없어도

이제야 자유만민 옷깃여미며

그 이름 다시 부를 우리 금강산”

지난달 28일 주한 러시아대사관에서 열린 루드밀라 남 18주기 추모음악회에서 함께 노래하고 있는 메조소프라노 신현선, 베이스 이연성, 소프라노 린다 박. /정지섭 기자

지난 28일 서울 중구 러시아대사관 1층 그랜드홀. 피아노 연주에 맞춰서 한국인의 애창가곡 ‘그리운 금강산’이 열창됐다. 비제 오페라 카르멘의 ‘하바네라’로 시작해 샹송 여왕 에디트 피아프의 ‘사랑의 찬가’, 그리고 러시아 가곡 ‘일생에 단 한 번’, ‘들어보세요 만약 원하신다면’ 등으로 이어진 음악회의 대단원을 알리는 노래였다. 한 시간 남짓 진행된 음악회에는 베이스 이연성, 메조 소프라노 신현선, 소프라노 린다 박 등 세 명의 성악가가 나왔고, 피아니스트(백설)와 아코디어니스트(빅토르 제마노프)까지 함께 했다.

지난달 28일 주한 러시아대사관에서 열린 루드밀라 남 18주기 추모음악회에서 성악가들이 함께 노래하고 있다. /정지섭 기자

음역도, 소리도 악기도 저마다인 음악인들을 한 무대에 선 공통분모가 있다. 한국계 러시아 성악가인 메조 소프라노 루드밀라 남(1947~2007)이다. 이날 콘서트는 주한 러시아 대사관과 ㈜발레앤모델이 공동 주최한 ‘루드밀라 남 18주기 추모 음악회’. 그가 세상을 떠난 해에 시작해 코로나 시기 중단된 것을 빼고 해마다 기일에 즈음해 열리는 행사다. 고인의 딸 율리아 사칼바예바, 고인의 동생 라리사 남 등 유족들과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 러시아 대사 등 내빈들과 객석을 채운 관객들 앞에서 음악인들은 노래와 연주로 고인을 추모했다.

지난달 28일 주한 러시아대사관에서 루드밀라 남 18주기 추모음악회가 끝난 뒤 참가자들과 내빈들이 함께 모였다. /정지섭 기자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 당시를 기억하는 세대에게 루드밀라 남은 잊히지 않는 이름이다. 적성국 소련을 필두로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의 서울올림픽 참가가 확정되면서 냉전시대의 상징인 보이코트 없이 ‘완전체’로 올림픽이 열리게 됐다는 기대감 속에 미지의 세계이기도 했던 공산권 국가에 대한 관심이 폭발했다. 그 때 올림픽과 함께 치른 서울올림픽 문화예술축전을 계기로 한국계 소련인 성악가 루드밀라 남과 넬리 리(1942~2015)의 내한공연이 성사돼 조선일보 주최로 열렸다. ‘동토의 왕국’, ‘은둔의 나라’로 여겨지던 낯선 공산국가 소련에 한국인 피를 가진 유명 성악가가 활약 중이며 이들이 자신의 뿌리가 있는 한국에서 첫 공연을 한다는 소식에 전국이 들썩였다. 무대에 오른 루드밀라 남은 벅찬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는 고려인 3세”라는 말로 이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를 이야기했다.

이어 “한국인 아버지와 소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언제나 아버지의 나라 대한민국을 잊지 못했고 올림픽 덕분에 서울을 찾게 된 것이 꿈만 같다”며 “성악가로 살아온 보람을 느낀다”며 연방 눈물을 쏟았다. 그렇게 객석과 무대가 울음바다가 됐을 때 루드밀라 남이 부른 노래가 ‘그리운 금강산’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인에게 생소한 단어이자 개념이었던 ‘고려인’이라는 말의 존재를 각인시킨 주역이기도 했다. 루드밀라 남은 고난의 가족사를 겪었다. 고려인 동포인 할아버지는 극동지역에서 총살당했고 나머지 가족들은 지금은 독립국가가 된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했고, 한국인 아버지와 카자흐스탄 어머니 슬하 5남매 중 맏딸로 태어났다. 커튼이나 모자, 어머니나 할머니의 치마 등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소품으로 사용하여 노래하고 춤추기를 좋아할 정도로 예술가 기질이 다분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조선일보 주최 내한공연을 갖고 한국에서 커다란 화제가 됐던 고려인 출신 세계정상급 성악가인 루드밀라 남과 넬리 리를 소개한 당시 조선일보 기사. /조선일보 DB

‘남’이라는 성은 아버지쪽에서 물려받았지만 음악적 재능은 외가의 영향이라고 지인들은 말한다. 그는 음악적 재능이 인정받으면서 모스크바 유학길에 모스크바 국립음악원에 진학해 소련의 전설적 메조 소프라노 이리나 아르히포바를 사사해 볼쇼이 오페라 단원이 돼 프리마돈나까지 올랐다. 루드밀라 남을 사사한 제자로 인천시티오페라단을 이끌고 있는 베이스 이연성은 “생전 선생님의 목소리·스타일과 가장 비슷한 성악가들, 그리고 러시아에서 함께 음악을 배운 피아니스트와 오랜 시간 함께 무대에 서온 아코니어니스트와 무대를 준비했다”며 “한국을 너무나 아꼈던 선생님의 모습이 지금도 선한데 너무 일찍 떠나셨다”고 안타까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