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70세 중반 이상인 사람이 코로나에 감염되면 1000명 중 116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50~60대는 5명에 그치고 50세 미만은 0명에 가까웠다. 또 스페인에서 나이 든 남성은 치사율이 같은 나이 여성의 두 배를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Pikist

영국에서 75세 이상 노인이 코로나에 걸려 목숨을 잃을 확률은 65~74세의 세 배인 것으로 나타났다. 80세 이상 스페인 남성이 코로나에 감염돼 숨질 가능성은 같은 연령대 스페인 여성의 2.5배였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지난 28일(현지 시각) 스페인과 영국·이탈리아·스위스 제네바에서 코로나 항체를 가진 사람의 비율을 바탕으로 연구·조사한 결과, 연령대와 성별로 코로나 위험도를 수치화할 수 있었다고 발표했다. 수치화된 결과는 ‘나이가 많은 남성’이 코로나에 가장 취약하다는 것이다. 미국 다트머스대의 앤드루 레빈 교수는 네이처와 인터뷰에서 “60세 이상이 코로나에 감염돼 죽을 확률은 자동차를 운전하다 사망할 확률의 50배”라고 밝혔다.

◇코로나 60세 이상 운전보다 50배 위험

항체는 바이러스가 우리 몸에 침입했을 때 대항해 싸우는 면역 단백질이다. ‘몸 안에 코로나 바이러스 항체가 있다‘는 것은 이미 바이러스가 들어왔던 적이 있음을 뜻한다. 따라서 항체를 가진 사람을 조사하면, 코로나 검사를 하지 않아도 전체 인구에서 코로나로 얼마나 많이 희생될지 추정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실제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 병원에서 치료받다가 숨진 사람의 비율만 알 수 있었다.

유럽 각국 나이별 코로나 환자 치사율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의 헬렌 워드 교수 연구진은 지난 21일 논문 사전 출판 사이트인 메드아카이브(medRxiv)에 “6~7월 영국인 10만9000여명을 조사했더니 코로나 항체를 보유한 사람은 6%였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를 근거로 영국인의 코로나 감염 치사율을 0.9%로 추산했다. 감염 환자 1000명당 9명이 사망한다는 의미다. 나이별로 15~44세는 치사율이 0%에 가까웠다. 반면 65~74세는 3.1%, 그 이상에선 11.6%로 급상승했다.

다른 나라도 사정은 비슷했다. 스페인 카를로스 3세 보건연구소 과학자들이 지난 4월부터 6만1000여명을 조사한 결과에서 코로나 치사율은 영국과 비슷한 0.8%로 나왔다. 50세 미만은 0%에 가까웠지만 80세 이상은 7.2%였다.

◇남성은 면역세포 약해 치명적

스페인 연구진은 성별 코로나 치사율 차이도 밝혔다. 80세 이상 여성은 4.6%였지만, 같은 나이 남성은 2.5배인 11.6%에 달했다. 미국 프린스턴대의 제시카 메트칼프 교수는 네이처 인터뷰에서 “여성의 면역 시스템은 남성보다 좀 더 빨리 병원체를 감지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앞선 연구 결과도 이를 입증한다. 미국 예일대의 아키코 이와사키 교수 연구진은 지난 26일 네이처에 “나이 든 남성은 면역 반응이 여성보다 약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더 취약하다”고 밝혔다. 연구진에 따르면 여성 코로나 환자는 남성보다 T세포를 더 많이 생산한다. 백혈구의 하나인 T세포는 항체에 결합한 바이러스를 파괴해 감염과 전이를 막는다. 남성은 나이가 들수록 T세포 반응이 약해진다. 여성은 90세가 되어도 면역 반응이 잘 나타난다. 남성은 사이토카인 수치도 여성보다 높았다. 면역 단백질인 사이토카인 수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 장기에 치명적인 염증을 유발한다. 이른바 ‘사이토카인 폭풍’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백신 임상 시험 참여자의 인종과 함께 성별을 고려해 결과를 분석해야 한다고 제약사들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체 면역 반응이 약한 만큼 나이 든 남성은 여성보다 더 백신에 의존해야 할지 모른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