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아이팟 등 애플 제품의 디자인을 주도한 조너선 아이브(Ive·58)가 챗GPT를 개발한 오픈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와 손을 잡는다. 인공지능(AI)을 탑재할, 기존에 없던 새로운 형태의 디바이스(기기)를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오픈AI는 21일 AI 기기 개발 스타트업 ‘io(아이오)’를 인수한다고 밝혔다. 애플의 전설적인 디자이너인 아이브가 지난해 “AI 서비스에 최적화된 기기를 개발하겠다”는 목표로 설립한 스타트업이다. 인수 금액은 65억달러(약 8조9161억원)로, 인수 작업은 규제 당국의 승인을 거쳐 2분기 안에 마무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1인자들이 의기투합해 개발하는 디바이스가 일으킬 파장에 테크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들이 혁신적 제품을 내놓을 경우, 모바일 시장을 주도해온 애플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스티브 잡스의 ‘영혼의 단짝’이라 불리던 아이브가 애플에 최대 위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아이브의 이번 행보가 AI 경쟁에서 고전하는 애플에 불길한 징조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잡스의 단짝’ 아이브, 애플 경쟁자로
오픈AI가 약 9조원에 이르는 돈으로 창업 1년밖에 안 된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것은 하드웨어 엔지니어와 소프트웨어 개발자, 생산 전문가로 구성된 ‘io’의 55명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여기엔 아이브를 비롯해 스콧 캐넌과 에번스 행키 등 애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이들이 포함돼 있다.
특히 아이브는 ‘미니멀리즘’이란 애플의 디자인 철학을 만들며 전성기를 이끈 일등 공신이란 평가를 받는다. 아이폰·아이패드·애플워치·맥북 등 애플 주요 제품의 디자인을 총괄했으며 2015년 최고 디자인 책임자(CDO)가 됐다. “좋은 디자인은 드러나지 않고 자연스럽게 느껴진다”며 디자인의 중요성을 늘 강조해왔다. 애플에서 쫓겨났다 복귀한 잡스는 아이브를 산업 디자인 부문 수석 부사장으로 발탁해 애플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제품 디자인 하나하나에 집착한 잡스는 거의 매일 아이브를 만나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끝없이 토론했다. 잡스는 아이브를 두고 “그가 없었다면 지금의 애플은 없었다”라며 ‘영혼의 동반자’라고 평가한 바 있다.
2011년 잡스 사망 후에도 아이브는 애플워치 등을 선보이며 애플의 디자인을 이끌다, 2019년 애플을 나왔다. 당시 월스트리트저널은 “아이브가 팀 쿡과의 불화로 회사를 나가는 것”이라고 전했다.
아이브는 애플 퇴사 후 디자인 전문 회사 ‘러브프롬’을 차렸다. 애플과 컨설팅 계약을 맺으며 관계를 이어왔으나, 2022년 애플 경영진이 자사 직원의 ‘러브프롬’ 이직을 문제 삼아 계약을 해지하면서 아이브와 애플의 관계는 완전히 끝났다.
◇아이브, 어떤 혁신 제품 내놓을까
샘 올트먼은 아이브 영입을 통해 스마트폰·PC 등 기존 디바이스를 넘어 AI 사용에 최적화된 제품을 개발·생산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아이폰이 세상을 모바일 중심으로 뒤바꾼 것처럼 AI 기술을 더 대중화하고, 사람들이 편리하게 쓸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올트먼은 “이전에는 결코 없었던 수준의 품질을 갖춘 소비자용 하드웨어 제품을 만들어낼 것”이라며 “30년 전 처음 애플 컴퓨터를 사용하며 느꼈던 기쁨과 경이로움, 그리고 창의적인 정신을 우리가 다시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올트먼과 아이브가 손잡고 개발하는 디바이스가 어떤 형태가 될지 지금까지 알려진 것은 없다. 블룸버그는 “스마트폰과 다르고, 기존에 없던 새로운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테크 업계에선 사용자가 보고 듣는 것을 인식하고, 마치 비서처럼 사용자의 요구를 처리하기 위해 몸에 밀착할 수 있는 웨어러블 기기일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오픈AI의 ‘io’ 인수는 AI를 둘러싼 빅테크의 하드웨어 경쟁에 불을 붙일 전망이다. 현재 AI는 챗GPT나 제미나이 등 주로 스마트폰과 PC에서 챗봇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AI를 탑재할 새로운 기기를 개발하는 시도들이 잇따르고 있다.
구글은 최근 AI 모델 ‘제미나이’를 장착한 ‘구글 글라스’를 공개했다. 안경을 쓰면 제미나이가 주변 정보 등을 눈앞에 보여준다. 아마존과 오픈 AI는 로봇 스타트업 ‘피지컬 인텔리전트’에 지분을 투자했고, 메타 역시 ‘AI 글라스’를 개발해 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