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약 2조4000억원을 들여 유럽 최대 냉난방공조(HVAC) 업체인 독일 플랙트그룹(이하 플랙트)을 인수한다. 삼성전자는 14일 영국계 사모펀드 브라이튼으로부터 플랙트의 지분 100%를 15억유로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로선 2017년 미국 전장·오디오 기업 하만을 약 80억달러에 사들인 이후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M&A)이다.

이번 계약은 최근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인공지능(AI) 인프라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고대역폭 메모리(HBM) 같은 AI 반도체, AI 탑재 스마트폰과 가전·TV 등을 개발하며 AI로 촉발된 새로운 산업 변화에 올라탔다. 이번에 빅테크들이 천문학적 금액을 들여 조성하는 데이터센터 시장까지 진출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노태문 삼성전자 사장은 “공조 사업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육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AI 인프라 시장 노린다

삼성전자가 인수하는 플랙트는 1918년 설립된 기업으로 대형 산업용 공조 시스템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공조 분야에서 빌딩 냉난방 위주였으나, 이번 인수로 데이터센터 시장에 본격 진출할 수 있게 됐다.

그래픽=양인성

삼성전자가 HVAC 사업으로 AI 인프라 시장에 발을 들인 것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데이터센터의 수요를 내다본 것이다. 글로벌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2024년 3016억달러(약 420조원)인 HVAC 시장은 2034년 5454억달러(약 760조원)로 커질 전망이다. 지난해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 규모가 약 5700억달러라는 것을 감안하면, HVAC 산업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HVAC의 성장성은 전 세계적으로 수백조원 규모로 조성되고 있는 데이터센터가 이끌고 있다. 기존에는 히타치·슈나이더일렉트릭 등 일본·유럽의 제조 기업들이 장악했다. 최근에는 MS가 새로운 데이터센터 냉각 기술 개발에 나서는 등 빅테크들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삼성전자도 이 시장의 가능성을 보고 지난해 미국 존슨컨트롤스 HVAC 사업부 인수전에 뛰어들었다가 보쉬에 밀린 적도 있다.

데이터센터에서 냉각·공조는 가장 중요한 시스템으로 꼽힌다. 고성능 서버가 24시간 가동되며 막대한 열을 내는데, 이를 식히지 않으면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 얼마나 적은 에너지로 효율적인 냉각을 제공하느냐가 데이터센터의 성능을 가르는 관건이다. 플랙트는 냉각액을 순환시켜 서버를 냉각하는 액체 냉각 방식에서 업계 최고 수준의 냉각 효율 기술을 갖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안정적 냉방이 필수인 대형 데이터센터 같은 데에 고효율의 공조 설비를 공급해온 기업”이라고 했다.

◇AI 산업 생태계 완성하는 삼성

삼성전자는 이번 인수뿐 아니라 ‘삼성 중심의 AI 생태계’ 구축이라는 전략을 내걸고 AI 연관 산업에 집중해 왔다. 지난해 세계 최초로 내장형(온디바이스) AI를 탑재한 갤럭시 S24를 내놓은 데 이어 TV,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에도 AI를 탑재하고 이들을 AI로 연결하는 플랫폼도 만들었다. 로봇과 AI가 결합한 이른바 ‘피지컬 AI’를 구현하기 위해서 레인보우로보틱스를 자회사로 편입시키고, ‘미래로봇추진단’을 만들었다. 삼성전자는 업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자체 개발한 AI 모델 ‘가우스’의 별도 조직도 최근 신설했다.

그래픽=양인성

지난해 옥스퍼드 시멘틱 테크놀로지스 인수를 통해 자연어 처리 기반의 AI 기술을 확보했다. 차세대 운영체제, 로봇 지능, 검색 최적화 등에 활용할 방침이다. 반도체에서도 6세대 HBM 양산을 통해 AI 반도체 시장에서의 주도권을 가져온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AI가 산업 전반에 가져올 변화는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며 “다양한 산업 포트폴리오를 통해 AI 산업의 주도권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