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게임사 크래프톤이 2021년 인도에 출시한 모바일 게임 배틀 그라운드에는 지난 6월부터 핑크색 바지와 점퍼를 입은 캐릭터가 등장한다. 턱수염이 덥수룩한 이 캐릭터는 인도의 인기 배우 ‘란비르 싱’과 똑 닮은 모습이다. 크래프톤은 지난해부터 인도 크리켓 선수 ‘파드리크 판디야’의 캐릭터를 넣거나 발리우드 영화를 차용해 게임 속 콘텐츠를 만들어 현지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크래프톤이 인도 시장 공략을 위해 내놓은 현지화 전략인 셈이다. 크래프톤은 올해 상반기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시장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약 50% 늘었다. 크래프톤 관계자는 “인도 같은 해외 신시장에서 성공 여부가 회사 실적을 판가름할 정도로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국내 게임사를 대표하는 3N(넥슨·넷마블·엔씨소프트) 2K(크래프톤·카카오게임즈)의 3분기 실적이 글로벌 진출 성공 여부에 따라 희비가 갈리고 있다. 글로벌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넥슨·크래프톤·넷마블과는 다르게, 나머지 게임사들은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게임 업계 관계자는 “갈수록 게임 개발 비용이 높아지는 만큼, 국내 흥행만으로는 점점 수익을 내기 어려워지고 있다”며 “글로벌 흥행 여부에 게임사의 명운이 달려 있다”고 했다.
◇글로벌 진출이 가른 실적
크래프톤은 글로벌 진출 수혜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16일 금융 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크래프톤의 올해 3분기 매출 전망치는 643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3%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배틀 그라운드의 중국판 모바일 ‘화평정영’이 현지에서 인기몰이를 이어가는 한편, 인도에서도 배틀 그라운드 모바일이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크래프톤은 신작 게임 ‘다크앤다커 모바일’의 글로벌 출시를 준비하고, 올해 안에 시뮬레이션 게임 ‘인조이’도 선보일 예정이다. 이 게임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한다면 크래프톤은 국내 상장 게임사 중 처음으로 영업 이익 1조원 달성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넥슨의 실적은 지난 5월 중국에 출사표를 던진 ‘던전앤파이터 모바일’이 이끌고 있다. 글로벌 앱 마켓 분석 업체 센서타워에 따르면, 던전앤파이터 모바일은 글로벌 누적 매출 10억달러(약 1조3600억원)를 돌파했다. 매출의 82%가 중국에서 나온다. 여기에 유럽과 북미를 겨냥한 ‘퍼스트 디센던트’도 동시 접속자 수 3만5000명을 뛰어넘으며 이용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넥슨은 대작 게임의 글로벌 흥행을 등에 업고 국내 게임사 최초로 올해 연간 매출 4조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 4분기 영업 이익 흑자 전환에 성공한 넷마블도 3분기 실적이 긍정적이다. 올해 연달아 내놓은 ‘나 혼자만 레벨업:어라이즈’, ‘아스달 연대기:세 개의 세력’, ‘레이븐2′가 흥행에 성공했다. 특히 ‘나 혼자만 레벨업’은 글로벌 174국 출시 이후 141국에서 다운로드 1위, 글로벌 21국 매출 1위 등 성과를 냈다.
◇현지화 전략이 승패좌우
글로벌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하면 실적이 내리막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엔씨소프트가 외연 확장을 위해 지난 8월 야심 차게 출시한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호연’은 당시 많은 이용자의 기대를 모았다. 한국·일본·대만 등 아시아 지역에 출시된 호연은 초기엔 인기를 얻으며 1위에 올랐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기존의 확률형 아이템에 기반한 ‘뽑기’식 과금 시스템에 국내는 물론 해외 이용자들이 반발했기 때문이다. 카카오게임즈도 국내에서 많은 이용자를 모으며 인기를 얻던 ‘오딘’을 지난해 일본에 출시했으나, 결국 흥행에 실패했다. 캐릭터 그래픽과 게임 방식 등이 기존 일본 이용자들의 성향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엔씨소프트와 카카오게임즈의 3분기 매출 전망치는 전년 동기 대비 10% 안팎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게임 업계 관계자는 “각 국의 문화, 이용 기기, 돈 내는 방식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가 큰 만큼 게임 장르부터 과금 구조까지 치밀한 현지화 전략이 게임의 성패를 가르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