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DB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의 고정 거래 가격(기업 간 거래 가격)이 지난달 큰 폭으로 하락했다. 스마트폰·PC 등 IT 기기 수요가 늘고는 있으나, 당초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면서, 이 제품에 들어가는 메모리 가격이 최근 떨어지고 있다. 인공지능(AI) 붐에 따라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메모리는 늘지만, IT 기기 수요 부진을 메울 정도는 아니라고 분석된다.

1일 시장조사 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 범용 제품 ‘DDR4 1Gx8′의 평균 고정 거래 가격은 지난달 1.7달러를 기록했다. 전달 2.05달러에서 한 달 사이 17.07% 떨어졌다. 하락률로는 지난해 4월(-19.89%) 이후 1년 5개월 만의 최대 폭이다. D램 가격은 작년 10월 약 2년 만의 하락세를 멈추고 반등한 뒤 상승세를 이어가다, 지난 8월 하락세로 전환했고 지난달에 추가로 떨어졌다. 또 다른 메모리 반도체인 낸드플래시 가격은 9월 10% 넘게 내렸다. 메모리카드·USB용 낸드플래시 범용 제품(128Gb 16Gx8 MLC)의 평균 고정 거래 가격은 4.34달러로 전달 대비 11.44% 떨어졌다.

그래픽=양인성

◇메모리 가격 왜 떨어지나

메모리 수요의 가장 큰 두 축은 모바일·PC 등 IT 기기와 데이터센터용 서버다. 이번에 D램 가격이 떨어진 건 IT 기기 수요가 기대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시장조사 업체 IDC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스마트폰 출하량은 부진했던 전년보다 늘지만, 증가폭은 4%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는 “세계적으로 (IT 기기에 대한) 수요 반등이 약해 PC 제조 업체들은 D램을 추가로 구매하지 않고 재고를 소진하고 있다”고 했다.

상승세에 접어들었던 메모리 가격이 보합 국면에 들어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해 상반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글로벌 메모리 업체들은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크게 증가했다. 지난해의 사상 최악 수준 반도체 불황에서 벗어나 AI 붐을 타고 반도체 수요가 늘고 평균 판매 단가(ASP)도 10% 안팎 올랐다. 하지만 최근 들어 IT 기기의 수요 반등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상승세가 주춤하다. 업계 관계자는 “AI 스마트폰, AI 노트북 등이 IT 수요를 크게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됐지만, 기대만큼은 아닐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며 “PC와 모바일 제조 업체들이 시장 전망을 하향 조정하면서 반도체 수요를 늘리는 대신 갖고 있는 재고를 소진하는 방식을 택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5세대 HBM3E 수요는 견조할 듯

PC·스마트폰에 탑재되는 일반 D램과 달리, D램을 쌓아서 만드는 고대역폭 메모리(HBM)의 수요는 늘고 있다. 트렌드포스는 내년 전체 HBM 수요의 80% 이상을 최첨단 5세대 제품인 HBM3E가 차지할 것이며 이 중 절반 이상은 HBM3E 12단 제품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세계 최초로 HBM3E 12단을 양산했고, 삼성전자도 연내 양산을 앞두고 있다.

이에 따라 HBM의 수익률은 더 커질 전망이다. 트렌드포스는 내년 HBM이 전체 D램 생산량의 10%를 차지하고, D램 시장 수익에 대한 HBM 기여도는 30%를 넘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PC와 스마트폰 수요 둔화와 재고 조정에 따른 단기 우려가 생겼지만, HBM의 흔들림 없는 성장세는 여러 경로로 확인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