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당진에서 약 1만㎡ 규모로 벼농사와 고구마 농사를 짓는 9년 차 청년 농부 박상욱(33)씨는 지난해부터 자율주행 이앙기를 농업에 활용하고 있다. 보통 동네 주민들 5명이 함께 붙어 한 명은 모판을 쌓고 다른 사람은 이앙기를 작동하며 온종일 모내기를 했는데 자율주행 이앙기를 사용하면서부터는 작업이 훨씬 쉬워졌다. 경운기를 운전하며 직접 뿌렸던 농약도 이제는 드론을 활용한다. 올해는 땅을 갈아내고 바닥을 평평하게 만드는 작업에 자율주행 트랙터를 이용하기로 했다. 박씨는 “질퍽한 땅에서 농기계를 운전하는 게 멀미도 나고 어려웠는데 자율주행 기계를 이용하니 기존보다 힘이 절반밖에 안 든다”며 “효율성을 높이고 노동력을 줄일 수 있는 기계를 앞으로도 적극 사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각종 첨단 농기계 기술로 농촌 풍경이 바뀌고 있다. 사람 없이 24시간 작업하는 자율주행 농업용 트랙터, 이앙기, 콤바인뿐 아니라 제초기, 자율 운반 로봇, 드론 등이 농촌에 투입됐다. 농촌의 첨단화·기계화는 농촌 인구 고령화가 심해지며 촉발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40%였던 농가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은 2022년 49.8%로 늘었다. 업계 관계자는 “생산성 향상을 위해 농업에서도 각종 기술이 개발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했다. 정부는 2027년까지 생산 농가의 30%에 스마트 농업 장비와 서비스를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완전 자율주행 트랙터 시대 열린다
자율주행 농기계는 최근 들어 급성장하고 있다. 자율주행 농기계는 자율주행 자동차처럼 1~4단계 나뉜다. 1단계는 10㎝ 오차까지 자동 조향이 가능한 단계, 2단계는 자동 직진과 회전이 가능하고 RPM(분당 엔진 회전수) 자동제어까지 가능한 단계다. 장애물 감지와 변속기·전자 유압 자동화까지 가능해지면 3단계, 완전 자율인 4단계는 최종 단계다.
이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건 중장비 농기계 부문 세계 시장 1위인 ‘농(農)슬라(농기구+테슬라)’라 부르는 미국 존디어다. 존디어는 2030년까지 완전 무인 농업 시스템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22년에 이미 24시간 내내 사람 없이 자동으로 작동할 수 있는 4단계 자율주행 트랙터를 내놨다. 작년 CES에서는 카메라 36대와 머신러닝(기계학습) 기술이 탑재돼 농작물에 섞여 있는 잡초만 골라 제초제를 뿌리는 무인 로봇 제초기를 선보였다. 이 밖에 로봇 파종기, 밀과 왕겨를 세심하게 분리해주는 콤바인 등 AI를 탑재한 다양한 농기계를 개발하고 있다.
대동, LS엠트론, TYM 같은 국내 업체들도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대동은 작년 9월 국내 업체로는 최초로 3단계에 해당하는 자율주행 트랙터와 콤바인을 내놨다. 농산물이나 비료를 나르는 농업용 운반 로봇 개발에도 앞서 나가고 있다. 이 운반 로봇은 사람 작업자를 일정 거리를 유지해 따라다니며 일을 돕는다.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 작업자가 편하게 자재를 운반할 수 있도록 자율주행 기능을 탑재했다.
LS엠트론은 장애물 감지 기능을 탑재한 자율 작업 트랙터 MT7 스마트렉을 개발해 수출에 나섰다. 별도 조작 없이 전후진과 회전, 작업기 연동을 자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LS엠트론 관계자는 “이를 통해 작업 시간은 17% 단축하고 수확량은 8% 늘릴 수 있다”며 “트랙터 매출의 80%는 북미, 브라질 등 외국에서 나온다”고 했다.
◇농업 스타트업도 속속
국내 스타트업들도 커지는 농업 기술 시장을 노리고 있다. 스타트업 ‘아그모’는 트랙터, 이앙기 같은 기존 농기계에 센서와 카메라 등을 부착해 자율주행 농기계로 활용할 수 있는 ‘아그모 키트’를 개발했다. 스타트업 ‘긴트’는 농기계 자율주행 설루션 ‘플루마 오토’를 개발했다. 농기계에 자유롭게 부착해 기계의 실시간 위치 데이터를 파악할 수 있게 돕고 스마트폰 앱 등을 통해 자율주행을 조작할 수 있게 만들었다.
해외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농업 스타트업도 나왔다. 스타트업 ‘엔씽’은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농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컨테이너 박스 모양 모듈형 수직 농장을 만들어 아랍에미리트(UAE)에 수출하고 있다. 40피트(약 12.2m) 크기 컨테이너 박스에서 양상추나 콜라비, 바질 같은 채소와 과일을 키울 수 있는데, 내부에 LED로 광합성을 촉진하고 물과 비료, 일조량을 제어하는 기술이 핵심이다. 테크 업계 관계자는 “농업은 기술 도입이 더딘 편이기 때문에 혁신 여지가 많은 산업”이라며 “이 시장을 노리고 창업하는 국내 스타트업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