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운용 규모만 350억달러(약 47조5000억원)에 달하는 세계 최대 벤처캐피털(VC) 미국 실리콘밸리의 ‘앤드리슨 호로위츠(a16z)’가 오는 12일 한국에서 투자 설명회를 개최한다. 페이스북·에어비앤비·로블록스 등에 투자하며 벤처투자계 대표 큰손으로 꼽히는 a16z가 국내 투자 설명회를 개최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본지 취재에 따르면 a16z는 12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국내외 투자자들과 만나 투자 전략을 설명하는 ‘서울 심포지엄’을 연다. 행사에는 스콧 쿠퍼 관리 파트너와 바이오·헬스 분야 투자 담당인 줄리 유 총괄 파트너, AI·소비재 분야 투자 전문 브라이언 킴 파트너 등 a16z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한다. 국내 VC 업계에선 a16z의 이례적인 행보를 두고 “한국 투자에 대해 해외 VC들의 관심이 높아진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 벤처에 몰리는 해외 자본
올 들어 주요 해외 투자기관들은 전 세계적 벤처 투자 혹한기 속에서도 유독 한국 스타트업 투자를 늘리고 있다. 쿠팡과 크래프톤 등에 투자해 큰 성공을 거뒀던 미국계 VC 알토스벤처스는 지난 4월 한국 스타트업에만 투자하는 펀드인 ‘알토스 코리아 오퍼튜니티 펀드(KOF) 6호’를 조성했다. 규모가 5억달러(약 6800억원)에 달하는 대형 펀드로, 투자금의 90% 이상이 미국 대학 재단이나 연기금, 패밀리오피스 등 미국 자본이다.
a16z는 지난달 5400만달러에 이르는 IP(지식재산권) 관리 스타트업 ‘스토리 프로토콜’ 투자를 주도했는데, 이 기업은 북미 웹소설 플랫폼 ‘래디쉬’를 창업했던 이승윤 대표가 미국에서 재창업한 회사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투자 조직인 택티컬밸류(MSTV)도 지난 8월 한국신용데이터에 1000억원을 투자했다. MSTV가 한국 기업에 투자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달라진 K-스타트업 위상
해외 투자자들이 한국 스타트업에 큰 관심을 갖기 시작한 배경에는 해외시장에서 커진 한국 또는 한인 스타트업의 위상이 있다. 해외 투자기관에서 투자를 받은 한 국내 스타트업 임원은 “2021년 쿠팡이 뉴욕증시에 성공적으로 상장하면서 당시 투자자들이 큰 이득을 보자 한국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고 했다.
‘눔’ ‘센드버드’ ‘몰로코’ 등 한국인이 미국으로 건너가 창업한 뒤 유니콘으로 키워낸 기업들도 한국 시장에 대한 재평가에 큰 역할을 했다. 통상 해외 VC는 정보 부족에 따른 투자 위험 때문에 멀리 있는 타국 스타트업에 투자하길 꺼리기 마련이다. VC 업계 관계자는 “이스라엘 텔아비브가 스타트업의 성지가 된 것 역시 미국에서 성공한 유대계 기업가들이 끌어들인 자본 덕분”이라며 “한인 스타트업들이 미국에서 승승장구하면서 한국 시장에 대한 문의도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미·중 갈등의 심화로 반사이익을 보는 측면도 있다. 바이든 정부가 대(對)중국 투자 제한 조치 등 각종 규제를 내세우면서 해외 VC들의 중국 투자가 중단되기 시작했고, 중국에 투자하려는 돈이 한국으로 흘러들고 있다. 한국 정부가 출자하고 해외 VC들이 자본을 대는 한국벤처투자의 ‘글로벌펀드’ 누적 결성액은 올해 8월 말 기준 9조2704억원으로 정부 목표였던 8조원을 이미 넘어섰다. 한국벤처투자 관계자는 “8월까지 국내 571개 기업이 1조963억원을 투자받았다”고 말했다. 미국계 VC 업체 관계자는 “해외 펀드투자자(LP)들을 만나 보면 중국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있다”며 “동남아는 시장 규모가 작고 일본은 스타트업 시장이 활성화돼 있지 않다 보니 한국 시장이 최선의 대안이 된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