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의 지시를 받아 새로운 글을 작성하거나 그림을 그려주는 생성 AI(인공지능)를 둘러싸고 전 세계 테크 업계가 전례 없는 속도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 주 오픈AI가 새로운 AI 모델인 GPT-4를 공개했고, 구글이 생성 AI를 적용한 업무용 툴 워크스페이스를 내놨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엑셀, 워드, 파워포인트에 생성 AI를 적용했다. 테크 업체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생성 AI 서비스를 내놓으며 빠르게 달려가고 있다. 21일(현지시각) 하루에만 구글, MS, 어도비, 엔비디아 등 4곳의 테크 기업들이 새로운 생성 AI 관련 서비스를 공개했다.
테크 업계에선 “자고 나면 새로운 AI 서비스가 등장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 전문가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정지훈 K2G테크펀드 파트너 겸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분야를 잘 알고, 여러 소식을 전하며 프로젝트를 하는 유명한 친구들조차 현재의 변화의 속도에 혀를 내두른다. 나도 용량 초과다”라고 썼다.
◇구글, 드디어 바드 출시
구글은 21일(현지시각) 지난달 예고한 AI 챗봇 바드를 미국과 영국에서 일부 이용자 대상으로 출시했다. 그동안 구글은 직원들을 동원해 바드를 테스트하고 보완해왔다. CNBC에 따르면 바드 테스트에 구글 직원 8만명이 동원됐다.
구글의 바드는 오픈AI의 챗GPT나 MS의 빙 챗봇과 기능적으로 비슷하다. ‘한 해에 책을 20권 읽을 수 있는 방법’을 물으면 10가지 방법을 알려주는 식이다. 하지만 답변 속도가 더 빠르다. 챗GPT나 빙 챗봇은 단어들이 차례로 나오는 형태로 답을 하는데, 바드는 답변이 한꺼번에 나온다. 또 초안을 여러가지 버전으로 내놓는 것도 특징이다. “나의 딸에게 플라잉낚시를 하는 법을 어떻게 설명할지 알려줘”라고 물으면, 3가지 형태의 답변을 한다. 구글은 “바드는 종종 여러 초안을 제공한다”며 “가장 적합한 것을 선택하면 된다”고 했다. 바드는 구글 검색과 연동돼 최근 사건에 대해서도 답변이 가능하다. 또 답변의 근거가 된 웹사이트를 사용자가 직접 찾아볼 수 있게 답변 밑에 ‘구글 잇’이라는 버튼을 달았다.
구글은 바드를 출시하면서도 조심스러웠다. “바드를 전적으로 믿어선 안된다”고 반복해서 경고했다. 시연창 하단엔 “바드는 부정확하거나 공격적인 정보를 표시할 수 있다”고 써놨다. 구글은 안정성을 위해 사용자와 바드의 대화 횟수를 제한하고, 바드가 증오·불법·위험한 주제에 대해서는 답을 거부하도록 설정했다.
◇MS 빙에선 바로 그림 창작 가능
이날 MS도 오픈AI의 그림 생성 AI인 ‘달리(DALL-E)’를 검색 엔진인 빙에 적용한 ‘빙 이미지 크레에이터’를 출시했다. 빙 검색엔진에서 AI챗봇과 대화를 하며 바로 원하는 그림을 생성할 수 있다. 빙 이미지 크리에이터로 만든 그림은 왼쪽 하단에 빙 아이콘이 표시돼 AI로 만들었음을 보여준다. 또 유해하거나 위험한 지시에 대해서는 거부하고 사용자에게 경고가 표시된다. 해당 기능은 빙 AI챗봇 접근 허가를 받은 사람들에게 순차적으로 허용될 예정이다. MS는 이 기능을 웹 브라우저 엣지에도 탑재했다.
어도비도 이날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등 자사 제품에 통합할 수 있는 생성 AI ‘파이어플라이’ 베타버전을 출시했다. 무료로 공개되거나 저작권이 만료된 그림을 기반으로 학습해 저작권 문제가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엔비디아는 AI 개발 위한 컴퓨팅 파워를 클라우드로 제공
엔비디아는 이날 아예 기업들이 생성 AI 개발에 필요한 컴퓨팅 파워를 클라우드(가상서버) 형태로 제공하는 ‘DGX 클라우드’와 이를 기반으로 하는 기업용 생성 AI 모델 개발 서비스 ‘엔비디아 AI 파운데이션’을 내놨다. 업체들이 GPU 등 하드웨어를 직접 마련할 필요 없이 엔비디아의 DGX 클라우드를 활용해 거대한 GPU 컴퓨팅 능력을 빌려쓰는 형태다.
업체들은 각각의 AI 훈련 모델을 개발할 필요 없이 엔비디아가 개발한 3가지 기본 AI 학습 모델을 클라우드로 연결하고, 자체 데이터를 넣어 훈련시켜 자사 서비스에 특화된 맞춤형 생성 AI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 그동안 테크 기업들은 자체 AI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막대한 서버를 구축했는데, 이제는 엔비디아가 이를 한번에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업체 입장에선 오픈AI의 GPT API를 활용하지 않고도 자사 서비스에 맞는 가볍고 더 빠른 AI 모델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최고경영자)는 “엔비디아는 하드웨어 공급업체를 넘어 기업용 AI 공급업체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엔비디아는 게티이미지, 모닝스타, 퀀티파이, 셔터스톡, 어도비와 협업해 AI 파운데이션을 통한 AI 모델 개발을 진행 중이다.
생성 AI는 앞으로 업무와 창작 등 다양한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적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조사업체 더 브레이니 인사이츠에 따르면 작년 86억5000만달러(11조3100억원) 규모였던 생성 AI 시장은 연평균 36.1%씩 성장해 10년 후인 2032년엔 1886억2000만달러(246조6000억원) 규모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인공지능 전문가인 래리 번바움 미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워싱턴포스트에 “모든 것이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며 “AI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조차도 AI의 능력에 상당히 놀라고 있다”고 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AI 산업의 아이폰 모먼트가 시작됐다”며 “생성 AI가 모든 산업을 재창조할 것”이라고 했다. 아이폰이 세상에 등장하며 다양한 모바일 앱 시대가 열린 것처럼 생성 AI의 시대가 이제 막 개막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