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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토리와 테크놀로지는 뗄레야 뗄 수 없습니다. 테크놀러지 전문 기자가 현대 스토리 비즈니스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짚어드립니다.

“우리의 첫 25년이 무척 자랑스럽고 다음 25년이 무척 기대됩니다.”

2023년 1월 19일(현지 시각) 깜짝 놀랄 만한 뉴스가 있었습니다. 넷플릭스를 세계 최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스트리밍)로 키운 리드 헤이스팅스(Reed Hastings) 창업자가 공동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나 이사회 회장이 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넷플릭스를 설립한 지 25년 5개월 만이었습니다.

넷플릭스 최고경영자(CEO) 리드 헤이스팅스/넷플릭스 유튜브

넷플릭스는 스트리밍 서비스 경쟁 격화와 인플레이션 우려 속에서도 전 세계 가입자 수를 2억3000만명까지 늘려 월가의 비관적인 전망을 날려버렸습니다. 넷플릭스 특유의 빠른 실행력으로 지난해 도입한 광고 요금제 덕분에 가입자 수가 다시 반등했습니다.명예롭게 퇴진하는 헤이스팅스의 성명을 읽고, 기자도 박수 부대에 동참했습니다. 저의 소셜 미디어에 다음과 같이 올렸지요.

“이 훌륭한 기업가에게 무한한 박수를 보냅니다. 넷플릭스는 역사상 최초의 스토리 제국이었습니다. 콘텐츠 생산과 소싱, 유통을 국제적으로 하는 첫 번째 기업이었습니다.”

월트디즈니컴퍼니 등 할리우드 유명 스튜디오들도 일부 국가에 지사를 설립하는 등 해외 진출을 도모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넷플릭스처럼 190국에 진출해 오리지널 시리즈를 한날한시에 공개하는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그것도 각 국가에 최적화한 수준 높은 자막과 함께 말이죠.

그뿐만 아니라 넷플릭스는 전 세계에서 콘텐츠를 조달(sourcing)하는 체계도 정교하게 갖춰나가고 있습니다. 콘텐츠를 일방적으로 공급만 하는 것이 아니라 수급도 하는 것이죠.

넷플릭스는 유럽(런던·마드리드), 아시아(서울·도쿄·뭄바이), 북미(토론토), 남미(멕시코시티·리우데자네이루) 곳곳에 프로덕션 허브 또는 버추얼 프로덕션 스튜디오를 만들어 현지 제작 콘텐츠를 조달하고 있습니다.

제가 헤이스팅스를 훌륭한 기업가라고 비교적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넷플릭스에 관한 많은 정보를 독해하면서 세상을 바꾸는 기업가 정신이 무엇인지 그를 통해 가슴 깊이 배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Joseph Alois Schumpeter)는 기업가 정신의 본질을 ‘혁신’이라고 보았습니다. 새로운 제품을 발명하거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거나 비용이 적게 드는 생산 방법을 찾아내는 일 모두 혁신입니다. 그는 자본주의 발전의 원동력이 기업가의 혁신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 설명에 꼭 맞는 기업가가 헤이스팅스입니다. 넷플릭스는 남들이 시기상조라고 비웃을 때 스트리밍 서비스(새 제품)를 만들었고, 190개국(새 시장)에 진출했으며 세계 곳곳에 프로덕션 허브를 개설해 오리지널 시리즈를 제작(새 생산 방법)하고 있습니다.

◇ 눈 깜짝할 사이에 190개국에 진출

“오늘, 저희가 여기 CES 무대에 있는 동안, 넷플릭스는 아제르바이잔, 베트남, 인도, 나이지리아, 폴란드,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싱가포르, 대한민국, 터키,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130개국에서 서비스를 개시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글로벌 텔레비전 네트워크의 탄생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2016년 1월 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2016 CES 행사에서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창업자 겸 CEO가 연설을 하고 있다. 이날 그는 넷플릭스의 130여개국 진출을 발표하면서 "여러분은 '글로벌 텔레비전'의 탄생을 목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6년 1월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전시회 CES의 기조연설 무대에 나선 리드 헤이스팅스의 발표는 귀를 의심케 할 만했습니다. 글로벌 진출이 동네 마실 나가는 것도 아닐 텐데 넷플릭스의 해외 진출 속도가 너무 빨랐기 때문입니다.

2007년 넷플릭스가 처음으로 미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스트리밍 서비스를 선보인 후, 2010년 캐나다, 2011년 중남미(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 멕시코 등), 2012년과 2013년 일부 유럽(영국, 아일랜드, 덴마크, 스칸디나비아 등), 2015년 호주, 뉴질랜드, 일본에 진출했습니다. 그리고 2016년 서비스 가능 지역을 대거 추가해 190여 나라에서 넷플릭스를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23년 현재, 넷플릭스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 나라는 중국, 크림반도, 북한, 러시아, 시리아 등으로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입니다. 참고로 넷플릭스는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했습니다.

엔터테인먼트 세계의 ‘듣보잡’이었던 넷플릭스가 2010년 미국에서 가까운 캐나다를 해외 진출을 위한 시험 무대로 삼은 후 불과 5년 남짓 만에 190개 국으로 뻗어나갔습니다.

◇ 넷플릭스 세계화를 떠받치는 네 기둥

넷플릭스가 선제적으로 투자해 온 기술 기반을 이해하지 않고는 넷플릭스 세계화의 비밀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게 오늘 <아하! 스토리>에서 집중으로 살펴볼 주제입니다. 넷플릭스가 투자한 기술과 방향을 찬찬히 이해하면, 현대 디지털 제국을 만드는 필수 요건들이 무엇인지도 확인하게 됩니다.

아마존웹서비스(AWS)를 운영하는 아마존의 데이터센터 모습.

①이 스토리 제국을 떠받치는 첫 번째 기둥은 ‘클라우드’입니다.

오늘날 클라우드 없이 글로벌을 논할 수 없습니다. 클라우드란 인터넷으로 컴퓨터 자원(서버, 스토리지, 소프트웨어 등)을 빌려 쓰고 쓴 만큼 비용을 지불하는 컴퓨팅 서비스입니다. 지금은 클라우드 시스템을 쓰는 게 당연합니다만, 넷플릭스의 결정은 한참 빨랐습니다.

넷플릭스는 2008년 자체 데이터센터에서 아마존웹서비스(AWS) 클라우드로 데이터를 이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큰 계기가 있었습니다. 넷플릭스 데이터센터가 먹통이 되는 바람에 3일 동안 DVD를 발송하지 못하는 ‘재앙’을 겪었던 것입니다. (넷플릭스는 DVD를 우편으로 배송하는 회사로 출발했고 2008년에도 DVD 우편 배송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넷플릭스가 190여 나라에 동시다발적으로 진출하는 대(大)여정은 바로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새 국가에 진출할 때마다 클라우드 용량을 손쉽게 늘려 서비스 규모를 확장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클라우드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넷플릭스의 세계화가 이렇게 빠르게 진행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급성장한 넷플릭스는 연간 클라우드 사용 대가로만 아마존에 5억달러가 넘는 돈을 지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②마이크로 서비스는 두 번째 기둥입니다.

넷플릭스 해외 진출의 대장정이 클라우드 도입과 함께 시작된 이유는 또 있습니다. 넷플릭스 개발자들이 클라우드로 데이터를 이전하면서 개발 방법론을 완전히 바꿨기 때문입니다. 이때부터 넷플릭스는 단일한 거대 시스템을 개발한 것이 아니라 작은 서비스들을 개발해 서로 연결하는 프로세스를 도입합니다. 전문적인 용어로는 ‘마이크로 서비스(micro service)’라고 하는데 이것이 제국 운영의 두 번째 기둥입니다.

넷플릭스 서비스는 2017년 기준으로도 700여 마이크로 서비스를 연결해 구성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서비스들은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로 서로 연결돼 있습니다. 하나의 통합된 데이터베이스(DB) 대신 서비스에 따라 분할된 여러 데이터베이스를 사용하는 것도 넷플릭스 서비스의 특징입니다.

거대한 단일 시스템은 시스템을 구성하는 일부만 고장이 나도 시스템 전체가 죽습니다. 하지만, 회원 가입, 결제, 재생 버튼 등 소규모 서비스로 쪼개 일종의 모듈 형태로 개발하면 개발도 빠르고 작은 오류가 전체 시스템에 주는 악영향도 피할 수 있습니다. 넷플릭스 개발팀도 소규모로 운영됩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피자 한 판 이상을 시켜야 하는 팀은 운영하지 말라고 하죠. 팀이 커지면 업무를 명확히 정의하기 힘들고 낭비 인력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③세 번째 기둥은 ‘어댑티브(adaptive)’ 기술입니다.

어댑티브는 ‘환경에 적응하는’이라는 뜻이죠. 전 세계 사용자가 가진 디바이스(기기)는 천차만별이고 인터넷 환경도 각기 다릅니다. 사용자들은 10인치 태블릿에서 볼 수도 있고 55인치 대형 TV에서 볼 수도 있습니다. 인터넷 전송 속도도 초당 3MB 환경일 수도 있고 100MB 환경일 수도 있습니다. 수많은 변수를 탓하며 해외 진출을 주저하는 것이 아니라 숱한 변수를 기술로 제어하는 것이 넷플릭스의 힘입니다.

‘어댑티브 스트리밍(adaptive streaming)’은 넷플릭스의 핵심 비디오 전송 기술입니다. 어댑티브 스트리밍은 기기와 인터넷 데이터 속도에 맞게 적절한 화질로 자동 전송해 주는 기술입니다. 120가지가 넘는 영상을 인코딩(압축)해두고 사용자의 대역폭과 기기에 가장 적합한 화질을 선택해 재생해 주는 것입니다.

넷플릭스는 동영상을 전송할 때 네트워크에 가중되는 부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픈 커넥트 어플라이언스(Open Connect Appliances)’라는 장비도 만들어 각국 데이터 센터에 설치했습니다. 해당 지역 사용자들이 자주 찾는 콘텐츠 데이터를 오픈 커넥트 어플라이언스에 미리 보내 놓으면 먼 거리에서 데이터를 전송하는 비용도 절감하고 네트워크 병목 현상을 줄일 수 있습니다. 가령, 한국의 오픈 커넥트 어플라이언스에는 ‘더글로리’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재벌집 막내아들’ 등을 전달해 두는 것이지요. 넷플릭스는 줄잡아 1000곳에 오픈 커넥트 장비를 설치해두고 있습니다.

④네 번째 기둥은 똑똑한 데이터 활용입니다.

넷플릭스를 보는 사람들의 취향은 각기 다릅니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영화 목록 페이지를 보여줬다면 넷플릭스는 결코 제국으로 성장하지 못했을 거예요. 넷플릭스는 수많은 데이터를 고려해 영화와 드라마를 추천하는 알고리즘 ‘시네 매치’를 고도화했습니다.

넷플릭스가 2011년 ‘하우스 오브 카드’ 시즌 1 제작에 1억달러 투자를 결정할 수 있었던 것도 데이터 분석력 덕분이었습니다. 시청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영국에서 흥행한 하우스 오브 카드의 리메이크 작품은 데이비드 핀처가 감독하고 케빈 스페이시가 주연을 맡으면 흥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나왔던 것이지요. 2013년 공개된 하우스 오브 카드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넷플릭스는 DVD 우편 대여업을 할 때부터 데이터를 중요하게 다루고 잘 관리하는 기업이었습니다. 당시 넷플릭스는 ‘플렉스 파일’이라는 정교한 프로그램을 활용했는데, 이 프로그램을 통해 고객 획득 비용, 고객 생애 가치, 신규 가입자 수를 일일이 계산해 영업에 활용했습니다.

넷플릭스가 추천 알고리즘 ‘시네 매치’의 성능을 개선하기 위해 대회까지 열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2006~2009년까지 매년 100만달러의 상금을 건 ‘넷플릭스 프라이즈’를 개최했습니다. ‘딥러닝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제프리 힌턴 토론토대 교수도 이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미국 배우이자 제작자 리스 위더스푼(가운데)이 2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영화 '유어 플레이스 오어 마인'(Your Place or Mine) 시사회에 참가해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 공개 예정인 이 영화는 정반대 성격을 지닌 두 친구가 일주일간 집을 바꿔 살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로이터 연합뉴스

◇ 다큐멘터리 ‘극한 직업’ 아시나요?

혜성과 같이 등장한 넷플릭스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영화와 드라마를 보는 방법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오징어 게임’이나 ‘종이의 집’처럼 지역색이 강하지만 세계적으로 인기 많은 ‘글로벌 지역 드라마’도 탄생하고 있습니다.

영국 잡지 이코노미스트는 “유럽연합(EU)의 24개 공식 통·번역 제공 언어에도 포함되지 않을 정도로 사용자가 적은 룩셈부르크어로 만들어진 경찰 드라마 ‘캐피타니’가 넷플릭스 덕분에 탄생했다”고 주목하면서 “자막이 서비스되는 넷플릭스가 유럽 공통의 문화를 만들었다”고도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제작 환경도 크게 달라졌습니다. 나중에 다룰 예정이지만, 한국에서는 넷플릭스와 유튜브의 ‘원투펀치’를 얻어맞은 지상파 방송사의 엔터테인먼트 시장 장악력이 크게 약해졌습니다. 반면, 하도급이라는 악순환의 굴레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했던 스튜디오(제작사)가 새로운 판의 중심으로 부상했습니다.

라몬 로바토 호주 멜버른 RMIT 대학교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전공 교수는 ‘넷플릭스 세계화의 비밀’이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넷플릭스는 하드와 소프트 기술 인프라, 개방 및 폐쇄적 지식 체계, 그리고 공공 및 민간 투자에 의존하는 수백가지의 다른 소프트웨어 프로세스로 이루어진 복잡하고 역동적이며 유기적 통합 체계 (meta system)”이라고 썼습니다.

그렇습니다. 넷플릭스는 복잡하고 역동적이며 유기적인 거대한 체계입니다. 이 거대한 체계의 뼈대는 앞서 언급한 기술 기둥들입니다. 헤이스팅스 회장이 “넷플릭스는 기술 위에 쌓아 올린 엔터테인먼트 회사”라고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넷플릭스의 세계화는 어마어마한 기술 혁신과 상상을 초월하는 실행력에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넷플릭스 인사이트’ 저자 이호수 박사는 “넷플릭스는 인공지능(AI)이 잘하는 일과 인간이 잘하는 일을 잘 구분한다”면서 “영화의 스토리를 이해하고 태깅(꼬리표를 붙이는 작업)은 진짜 사람이 돈과 시간을 들여 노동집약적으로 해낸 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EBS의 ‘극한 직업’이라는 다큐멘터리 보신 적 있어요? 넷플릭스가 꼭 그렇게 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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