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한국 게임 성공 방정식은 ‘모바일’과 ‘유료 아이템’이었습니다. 중견 게임사인 네오위즈가 이 방정식을 따르면, 이미 성공을 거둔 대형 게임사를 이길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제3의 길’을 선택한 겁니다.”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독일 쾰른에서 열린 세계 3대 게임쇼 ‘게임스컴’에서 국내 게임 업계를 깜짝 놀라게 한 낭보(朗報)가 날아들었다. 한국 중견 게임사 네오위즈가 개발한 액션 롤플레잉(역할수행) 콘솔 게임 ‘P의 거짓’이 ‘최고의 롤플레잉 게임’ ‘최고의 액션 어드벤처 게임’ ‘가장 기대되는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수상하며 한국 게임 최초로 3관왕을 차지한 것이다.

2009년 게임스컴이 시작된 이래, 10여 년간 모든 수상은 미국·유럽과 일본 게임사들이 독식해왔다. 스마트폰 게임을 주력으로 해 온 한국 게임 업계가, 게임기(콘솔) 시장 중심인 유럽에서도 통할 수 있음을 최초로 인정받은 것이다. 게임 업계 관계자는 “이번 P의 거짓 수상은 빌보드(음악)나 아카데미(영화) 수상과 맞먹는 성과”라고 했다.

◇한국 첫 게임스컴 3관왕 ‘P의 거짓’ 만든 네오위즈 최지원 PD 인터뷰 “佛 배경의 피노키오 모험… 한국색 뺀 글로벌게임 통했다”

지난달 27일 게임스컴 현장에서 만난 P의 거짓 제작 총괄 최지원(41) PD는 “이번 수상으로 한국 콘솔 게임이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였다”며 “앞으로 계속 세계시장 문을 두드리겠다”고 했다.

지난달 27일 독일 게임스컴 행사장에서 만난 최지원 PD는 “그동안 수익성 문제로 콘솔 게임을 제대로 내놓지 못했던 한국 게임업계에 ‘콘솔도 돈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네오위즈

◇콘솔 중심 유럽 시장서 첫 3관왕 쾌거

P의 거짓은 19세기 말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액션 롤플레잉 게임이다. 이탈리아 고전 동화 피노키오를 각색한 것으로, 주인공 피노키오가 자신의 창조자이자 아버지인 제페토 영감을 찾아가며 벌어지는 모험을 그렸다. 외신들은 “파격적인 주제” “현실적인 그래픽과 타격감이 훌륭하다”는 평을 쏟아냈다. 미국 AMD의 리사 수 회장도 P의 거짓 게임 영상에 대해 “놀라운(Amazing) 그래픽”이라고 평가했다. 수상 소식이 국내에 전해지자, 네오위즈 주가도 일주일간 34% 뛰었다.

지난 10여 년간 한국 게임은 유료 아이템을 사서 캐릭터를 키우고, 남들과 싸워 이기는 스마트폰 게임 중심으로 성장해왔다. 모바일 게임이 국내 게임 시장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60%에 육박한다. 주 타깃 시장은 내수와 중국 시장이었다. 하지만 중국이 수년 전부터 한한령 때문에 한국 게임의 중국 출시 허가(판호)를 내주지 않으면서 위기가 시작됐다. 국내 게임사들은 콘솔 중심인 북미·유럽 진출을 뒤늦게 타진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시기 일쑤였다. 최 PD는 “북미와 유럽 시장은 콘솔 점유율이 40%가 넘는다”며 “게이머가 돈 대신 자신의 실력과 노력으로 난관을 극복하는 걸 좋아하는 시장”이라고 했다.

◇韓 게임 흥행 공식 버린 ‘P의 거짓’

‘P의 거짓’은 한국 게임의 3요소로 통했던 ‘모바일’ ‘유료 아이템’ ‘멀티플레이’라는 성공 방정식을 전혀 따르지 않았다. 살기 위해 유럽 시장을 택했지만, 중견 게임사인 만큼 시행착오를 겪을 금전적·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최 PD와 개발진 100여 명도 온라인 게임을 주로 만들어왔기 때문에 콘솔 게임 개발은 낯설었다.

최 PD는 “개발 기간을 최대한 단축하고 버그를 줄이기 위해, 이용자들끼리 온라인으로 대결하는 멀티플레이 기능은 아예 안 넣었다”며 “1인 플레이 기능에만 집중하는 모험을 했다”고 말했다.

또 한국색을 쫙 빼고 철저히 ‘글로벌 전략’을 택했다. 배경은 19세기 프랑스, 주제는 이탈리아 고전 피노키오, 기본 언어는 영어를 택한 것이다. 최 PD는 “피노키오 원작은 굉장히 잔혹하다”며 “이탈리아 기자가 ‘어떻게 한국 회사가 원작의 느낌을 이렇게 잘 살렸느냐’고 묻더라”고 했다.

게임 업계에서 ‘게임스컴 수상’은 글로벌 흥행의 보증수표로 통한다. 지난해 4관왕이었던 일본 반다이남코의 ‘엘든링’은 지난 2월 출시돼 누적 판매량 1700만장을 돌파했다. 증권가에선 ‘P의 거짓’이 내년 출시되면 250만장가량 팔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매출은 연간 1000억원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한다. 지난해 네오위즈 매출(2612억원)의 40%에 육박하는 수치다. 최 PD는 “현재 게임 개발 진척도는 70% 수준으로, 내년 여름까지 출시하는 것이 목표”라며 “P의 거짓을 통해 한국 게임 업계가 세계 콘솔 시장으로 가는 길을 열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