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앤디 파커(오른쪽)와 어머니 바바라 파커가 사망한 딸의 사진을 들고 있다. /뉴타운액션얼라이언스파운데이션 트위터

미국의 한 여성 기자가 어떤 사람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때 어디선가 갑자기 총성이 울렸고, 인근에서 총을 쏜 사람이 등장한다. 당황한 기자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다. 그 뒤를 총을 든 사람이 따라갔고, 이내 총성이 들린다.

현지 소셜미디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17초짜리 이 짧은 영상은 2015년 8월 15일 버지니아주 로어노크에서 실제 발생한 일이다. 총격으로 미국 CBS 계열사 WDBJ 소속 앨리슨 파커(여·당시 24) 기자와 카메라 담당 아담 워드(당시 27)기자가 현장에서 사망했다. 성추행 혐의로 WDBJ에서 해고된 것에 앙심을 품고 범죄를 저지른 총격범 베스터 리 플래너건(당시 41)은 도주 중 극단적 선택을 했다.

사건이 일어나고 약 6년이 흐른 22일(현지시각) 앨리슨 파커의 아버지 앤디 파커는 딸이 죽는 장면이 담긴 이 영상의 ‘대체불가능토큰’(NFT)을 판다고 워싱턴포스트에 밝혔다. 이날 그는 NFT거래소 라리블에 해당 영상 판매하려 했으나, 거래소가 바로 거래를 차단했다. 거래소는 차단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NFT는 영상·사진 등 특정 자산에 대한 소유권과 거래내역을 블록체인에 디지털 형태로 저장하고 기록하는 것이다. 각 NFT는 고유 속성이 없어 대체할 수 없고, 위변조 가능성이 없다. 이 때문에 원본을 인증할 수 있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 앤디가 딸의 살해 장면을 이 NFT로 만들어 팔고자 한 이유는 돈이나 명성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다. 딸을 위한 선택이었다.

앨리슨 파커(왼쪽) 기자와 카메라 담당 아담 워드 기자. /유튜브채널 'wsls10'

◇ SNS에 떠도는 딸 살해 장면, 플랫폼은 ‘나 몰라라’... “아빠가 지워줄게”

엘리슨 피살 사건은 방송 생중계 도중 벌어졌다. 이 때문에 이 사건 영상은 유튜브, 페이스북, 구글 등 여러 소셜미디어에 곧바로 공유됐다. 영상 조회수는 적게는 수천에서 많게는 수백만회에 달했다. 유튜브 등은 수년간 영상을 삭제해달라는 앤디의 요청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다. 영상의 저작권자가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대해, 유튜브와 메타(옛 페이스북)는 최신 기술을 통해 이와 같은 폭력적인 영상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가 확인한 결과 페이스북이나 유튜브에서 2015년 8월 이후 유지되고 있는 관련 영상을 20개 가까이 발견했다. 보도 이후에야 영상들은 삭제됐다.

앨리슨 파커의 아버지 앤디 파커. 지난 2019년 법원에 나온 그가 유튜브와 메타(당시 페이스북)에 영상을 전부 삭제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유튜브채널 'wsls10'

피살 영상의 저작권은 딸이 기자로 일했던 WDBJ의 모회사 ‘그레이 텔레비전’이 가지고 있다. 아버지는 수년 동안 회사에 저작권 양도를 요청했지만 “비디오에 직접적인 총격 사건이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대신 회사 측은 ‘공동저작권’을 제안했다. 아버지에게도 저작권을 나눠줌으로써 인터넷에 떠도는 영상을 제거할 수 있는 권한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버지 앤디 파커는 ‘완전한 저작권’을 원했다. 자신이 사망한 이후에 이 방송사가 해당 영상을 악용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NFT를 통한 해당 영상의 디지털 저작권을 아버지가 따로 직접 생성하고, 이를 소유하는 것이었다. 현행법상 구글이나 유튜브 등 플랫폼들이 ‘문제적 영상’에 대한 형사적·도의적 책임은 해당 콘텐츠를 올린 사용자에게 떠넘길 수 있지만, 저작권에 대해서는 그러한 방식의 책임 회피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버지 앤디 파커측의 법률사무소는 “일반적으로 저작권은 인터넷에 가볍게 소비되는 피해자들을 지켜줄 수 있는 효과적인 도구”라며 “저작권이 있으면 소셜미디어와 플랫폼은 반드시 행동한다”고 했다. 이어 “아직 NFT 소유권에 대한 판례는 거의 없지만, NFT 거래를 통해 우회적으로 권리(소유권)를 획득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했다.

그러나 현재는 NFT를 통한 우회적인 접근도 쉽지 않아 보인다. 라리블을 포함해 주요 NFT거래소는 저작권자가 아닌 사람이 올린 NFT를 팔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NFT를 통해서라면 이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있을 것”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 뿐”이라고 했다.

아버지 앤디 파커는 “해당 영상을 봤냐”는 취재진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못 봐요, 저는 못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