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교육 서비스 스타트업인 에밀리러닝은 지난 5월 300만달러(35억9000만원) 규모의 시드 투자를 유치했다. 이 스타트업에는 미국 내 아프리카계와 라틴계 기업인이 이끄는 회사에 투자하는 소프트뱅크 기회 성장 펀드, 아울 벤처스 등과 함께 우버 동문 연합(Uber Alum Syndicate)이 투자했다. 우버 동문 연합은 차량공유 업체 우버 출신들이 모여 전 우버 직원이 창업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다.
우버 펀드가 작년 설립된 교육 스타트업에 투자를 나선 이유는 에밀리러닝의 공동창업자이자 최고운영책임자(COO)인 마이클 빌라도가 우버 출신이기 때문이다. 빌라도는 우버에서 화물 및 모빌리티 인프라 관련 업무를 했다. 그는 LA비즈니스저널에 “우버의 두 인큐베이팅 부서에서 일했고, 그 경험이 이번 펀딩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미 실리콘밸리에 새로운 ‘마피아’가 세력을 넓히고 있다. 바로 우버 마피아다. 페이팔의 공동창업자 겸 CEO였던 피터 틸, 공동 CEO였던 일론 머스크, 천재 엔지니어였던 맥스 레브친 등이 페이팔 매각 이후 스페이스X, 유튜브, 링크드인 등을 창업하며 막강한 ‘페이팔 마피아’가 된 것처럼 우버 출신들도 서로 챙기며 실리콘밸리에서 세력을 넓혀가는 것이다.
◇최근 10년간 우버 출신이 세운 스타트업 242개
글로벌 리서치 업체 CB인사이츠에 따르면 2011년 이후 전 우버 직원이 새로 창업한 스타트업은 242개에 달한다. 이 회사들은 총 358번의 펀딩을 받았고, 총 40억달러(4조8000억원)를 투자 유치했다. 이들 회사는 대부분 시드나 시리즈A 등 사업 초기 단계에 있다. CB인사이츠는 “우버가 2009년에 설립돼 2019년 5월 상장한 것을 고려하면 우버 출신들이 세운 스타트업이 초기 단계인 것은 의미가 있다”며 “우버 출신들은 킥보드에서 의료, 금융 서비스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스타트업을 탄생시켰다”고 분석했다. 우버 상장으로 보유 지분을 수익화한 직원들이 우버를 나와 새로운 스타트업을 창업하며 세를 불리고 있다는 것이다.
우버 출신이 세운 스타트업들은 ‘페이팔 마피아’가 세운 회사보다는 덜 알려졌다. 하지만 킥보드 공유 업체 ‘버드 라이즈’, 공유주방 서비스 ‘클라우드키친’, 헬스케어 업체 ‘포워드’ 등은 유명하다. 우버의 임원이던 트래비스 밴더잔덴이 2017년 설립한 버드는 창업 1년 만에 유니콘(비상장이면서 기업가치가 1조원 이상인 기업)이 됐다. 클라우드키친은 우버의 창업자인 트래비스 칼라닉이 2017년 사내 성추문 문제로 회사에서 쫓겨난 후 세운 스타트업이고, 포워드는 우버의 전 임원인 일야 아비조브가 세웠다.
◇풍부한 자금에 고군분투 경험이 바탕
우버 출신들이 우버를 나온 후에도 연쇄 창업을 하고, 투자도 잘 받는 이유는 세계 최대 차량공유 업체인 우버가 거쳐온 길에 있다.
우버는 ‘공유 경제’를 상징하는 기업이다. 2009년 창업 당시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사업화는 쉽지 않았다. 세계 각국의 교통 정책과 부딪혔다. 우버는 세계 각 도시를 담당하는 팀을 나눠 꾸렸고, 그 팀을 작은 스타트업처럼 운영했다.
예컨대 샌프란시스코를 담당하는 팀은 샌프란시스코의 교통 정책과 택시 기사들, 사용자들과 관련한 모든 문제를 직접 해결했다. 우버의 많은 직원들이 아이디어를 사업화하는 과정의 어려움과 그 해결 방법을 체득한 것이다. 라이언 그레이브스 우버의 전 글로벌 운영 수석부사장은 뉴욕타임스에 “이는 많은 스타트업들이 디지털 세계에 머무는 것과 대조적으로 우버가 실제 세계 정책 문제와 싸웠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그런 과정을 경험한 사람들을 찾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고 했다.
우버에서 벌어졌던 사내 괴롭힘과 차별 등 윤리적 문제도 우버 직원들의 내공을 깊게 했다. 우버는 빠른 성장을 하면서 사내에서 벌어진 성추행, 남녀차별 등 부조리에 둔감했다. 우버가 세워진지 8년이 된 2017년이 돼서 직원들의 폭로로 이러한 부조리가 세상에 드러났고, 우버 창업자인 트래비스 칼라닉은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쫓겨났다.
전 우버 직원은 “그 사건은 우버의 전 직원에게 빠른 성장도 중요하지만 포용적인 문화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교훈을 줬다”며 “우버에서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더 나은 스타트업을 만들겠다고 창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했다. 우버가 2019년 상장하며, 지분 일부를 보유한 직원들이 대박난 것도 연쇄 창업의 한 배경이다.
우버 직원들의 이러한 경험은 투자업계에서도 높게 평가한다. 한 VC는 뉴욕타임스에 “우버 직원들은 긱 이코노미와 그에 수반되는 모든 것을 개척한 세대의 일부”라고 평가했다. 실리콘밸리의 전통 강호 벤처캐피탈인 세콰이어는 버드 라이즈 등 우버 출신이 세운 8개 스타트업에 투자했고 A16Z도 우버 출신이 세운 스타트업 7개를 투자 포트폴리오로 보유하고 있다. 우버에서 겪은 경험이 값지다는 것을 가장 잘 아는 전 우버 직원들도 펀드를 만들어 우버 출신 창업자들을 지원사격한다. 지난 2018년엔 우버 전 임원인 조쉬 모럴과 윌리엄 바르네스가 우버 출신 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위한 우버 동문 연합(uber alumni syndicate)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