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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에 대한 신뢰성과 효용성이 지속 논란이 되는 가운데 빅테크 기업들과 금융권의 가상화폐 활용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가상화폐를 실제 결제 수단에 도입하는 기업이 늘면서 그 활용도와 잠재 시장가치 파악에 뒤늦게 뛰어드는 곳이 많다. 이들의 모토는 ‘여기저기서 맞고, 흔들려도 우리는 대세에 따라 간다’로 요약된다. 각국 정부는 중앙은행에서 발행하는 디지털화폐에 대한 본격 실험에 들어갔다.

◇“흔들려도 간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은 지난 23일(현지시각) 디지털화폐 및 블록체인 전략, 제품 로드맵을 개발할 제품 리더를 찾는다는 채용 공고를 올렸다. 새롭게 채용되는 인원은 블록체인과 분산형 장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암호화폐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이용해 활용 사례를 개발하고 제품 전략을 추진하게 된다. 아마존 측은 “우리는 가상화폐 분야에서 일어나는 혁신에 영감을 받았고, 이것을 아마존에 어떻게 구현할지 탐구하고 있다”며 “이는 빠르고 저렴한 결제를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기술을 기반으로 구축될 것으로 믿으며, 가능한 한 빨리 아마존 고객에게 그 미래를 제공하기 희망한다”고 밝혔다. CNBC는 “이는 아마존이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시장 진출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지난 20일(현지시각)에는 미국의 20대 청년이 설립한 가상화폐 파생상품 거래소 FTX가 9억달러(1조300억원)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손정의 회장의 일본 소프트뱅크 비전펀드,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탈 터줏대감 세콰이어, 억만장자 다니엘 로엡이 이끄는 행동주의 헤지펀드 서드포인트, 억만장자 이스라엘 잉글랜더와 폴 듀터 존스 등이 투자에 대거 참여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투자 유치 과정에서 FTX의 기업가치는 180억달러(20조7000억원)로 평가됐다”며 “세계에서 가장 가치있는 가상화폐 관련 기업 중 하나가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비트코인 가격 급락, 각국 정부의 규제 등으로 가상화폐 시장에 악재가 거듭 발생했지만 시중의 자금이 여전히 가상화폐 시장으로 몰리는 것이다. 실리콘밸리 유명 벤처캐피탈인 앤드리슨 호로위츠(a16z)는 지난달 가상화폐 분야에 투자하는 22억달러(2조5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도 했다. 앤드리슨 호로위츠는 “가상화폐 가격은 변할 수 있지만 혁신은 주기마다 계속 늘어나고 있다”며 “암호화폐가 차세대 컴퓨팅 혁신의 원동력이 될 것으로 믿으며, 잠재력에 대해 극단적으로 낙관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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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나도 가상화폐 시장 진입

최근 월스트리트 등 금융권과 빅테크 기업들은 가상화폐와 블록체인의 미래를 밝게 전망한다. 비트코인이 대세가 아니더라도 가상화폐와 블록체인은 현재의 결제수단을 대체할 수 있고,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대표적인 곳은 페이스북이다. 페이스북은 2019년부터 자체 가상화폐 ‘리브라’를 추진했다. 하지만 세계 각국 정부들이 “페이스북 주도의 가상화폐가 각국 통화와 금융 안정성에 위험을 끼칠 수 있다”며 반대했다. 페이스북은 이에 리브라를 현재 통화 가치와 가상화폐 가치가 1대 1로 연계되는 스테이블 코인 방식인 디엠(Diem)으로 바꿔 재추진 중이다. 페이스북은 올 연말까지 미 달러화와 디엠을 연동해 출시할 계획이다.

애플도 지난 5월 가상화폐를 포함한 결제 협력사와의 파트너십을 체결하겠다고 밝혔다. 애플은 ‘애플페이’를 통해 북미 간편결제 시장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가상화폐도 결제 수단의 하나로 검토하는 것이다. 트위터 창업자 잭 도시가 만든 결제 플랫폼 스퀘어는 이달 초 비트코인을 저장할 수 있는 하드웨어 지갑 서비스를 구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카드업체 비자는 가상화폐 연계 카드를 발급해 전 세계 7000만곳의 소매점에서 가상화폐 결제를 허용하고 있다. 올 상반기 가상화폐 연계 비자카드의 거래액은 10억달러(1조1500억원)를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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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는 정부 주도의 디지털화폐 검토

그동안 가상화폐에 미온적이던 세계 각국은 가상화폐가 현재 통화를 대체할 수 있는지 진지한 검토에 들어갔다. 특히 중국이 디지털 위안화를 빠르게 보급하자, 미국과 유럽 등도 가상화폐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각국 정부가 바라보는 것은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디지털화폐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다. 지난 2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CBDC 발행 전제조건을 담은 연구결과를 발표했고, 지난 5월엔 CBDC를 다양한 측면에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 14일에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미 하원 금융위원회 청문회에서 “미국의 디지털화폐가 있다면 암호화폐는 물론 스테이블코인도 필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나서서 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는 디지털화폐를 발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유럽중앙은행(EBC)도 디지털 유로화 도입을 전제로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지난 14일 “그동안 디지털화페 도입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고, 관련 프로젝트를 시작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며 “우리의 목표는 디지털 시대에 시민과 기업이 가장 안전한 형태의 통화인 중앙은행 통화에 계속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