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유니콘을 잡아먹는 타이거가 등장했다. 뉴욕에 기반을 두고 최근 실리콘밸리 투자에 열을 올리는 헤지펀드 타이거글로벌 이야기다. 타이거글로벌은 최근 전통적 벤처캐피탈인 a16z나 세콰이어보다 빠르게 더 많은 투자금을 스타트업에 쏟아붓고 있다. 투자했던 스타트업들이 증시에 상장되면서 타이거글로벌은 막대한 수익을 거두고 있다.
12일(현지시각) CB인사이츠에 따르면 타이거글로벌은 올 2분기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8배 많은 81건의 투자를 진행했다. 평일 기준 매일 1.3건의 투자를 진행한 셈이다. 2위는 a16z(64건)이었고, 3위는 세콰이어(62건)였다. 실리콘밸리에서 두각을 나타낸 스타트업은 대부분 타이거글로벌의 투자를 받았거나 투자 제안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 1~5월 기준으로 보면 타이거글로벌은 118개의 스타트업에 투자했는데, 이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10배나 많다.
◇글로벌 스타트업 투자 큰 손된 타이거글로벌
타이거글로벌은 뉴욕에 기반을 둔 20년 된 투자회사다. 이 회사의 창업자 체이스 콜먼은 전설적인 헤지펀드인 ‘타이거 펀드’ 출신이다. 억만장자 투자자인 줄리언 로버트슨이 설립한 타이거 펀드는 헤지펀드 사관학교로 불린다. 체이스 콜먼은 줄리언 로버트슨의 수제자였다. 그는 2000년 로버트슨으로부터 2500만달러(287억원)의 종자돈을 받아 타이거글로벌을 세웠고, 2003년부터 비상장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시작했다.
타이거글로벌은 현재 650억달러(약 75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운용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의 비상장 회사에 투자를 시작했다가 점차 실리콘밸리 IT 기업 전반으로 투자 포트폴리오를 넓혔다. 지금까지 타이거글로벌은 400개에 가까운 스타트업에 투자했고, 이 중 87개가 증시에 상장했다.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 음악 스트리밍서비스 스포티파이 등이 타이거글로벌의 투자를 받아 유니콘이 됐다. 현재 타이거글로벌의 투자 포트폴리오엔 126개의 유니콘이 있다.
타이거글로벌은 성장 스타트업에 폭넓게 투자하면서 높은 수익을 거두고 있다. 작년 전 세계 헤지펀드가 거둔 수익금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고, 투자자들에게 104억달러(11조원)의 수익을 돌려준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인 체이스 콜만은 작년 미국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린 헤지펀드 매니저에 올랐다. 수수료와 투자이익으로 30억달러(3조5000억원)를 벌어들였다.
CNBC는 “타이거글로벌이 로블록스 같은 회사에 배팅해 승리한 후 비상장 스타트업 투자 시장에서 자리를 잡았다”며 “수십억달러 기술 스타트업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타이거글로벌의 이름은 갈수록 유명해졌다”고 보도했다.
◇누구보다 빠르고 많이 투자
타이거글로벌의 성장 비결은 ‘스피드’와 ‘물량공세’다. 타이거글로벌은 기존 벤처캐피탈보다 훨씬 빠르게 투자를 결정한다. 타이거글로벌 리서치팀이 지역별, 사업 구분별 최고의 스타트업 2~3개를 선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스타트업에 투자를 제안한다. 실제 투자 논의를 시작하고 스타트업에 실제 돈이 지급되는 기간도 매우 짧다. 투자 제안 후 3일만에 계약을 맺는 경우도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익명의 투자자를 인용해, “타이거글로벌은 투자를 결정하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며 “이는 20년간 벤처 투자 업무를 하면서 본 적 없는 수준”이라고 했다.
타이거글로벌은 투자 심사도 덜 깐깐하다. 기존 벤처캐피탈은 스타트업에 투자한 후 이사회에 참여해 수시로 경영에 대해 조언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타이거글로벌은 이를 하지 않는다. 스타트업이 도움을 요청할 경우 유명 컨설턴트사인 ‘베인앤컴퍼니’를 붙여준다. 지분 가치도 더 높게 쳐준다. 최근 타이거글로벌에서 투자를 받은 한 스타트업 설립자는 이코노미스트에 “타이거글로벌은 다른 벤처캐피탈이 제안한 것보다 같은 지분에 더 많은 투자금을 제시한다”며 “이미 투자한 후에도 계속 연락을 해 더 많은 돈을 투자할 수 있는지 묻는다”고 했다.
일각에선 타이거글로벌을 막대한 자금으로 스타트업 투자를 휩쓸었던 소프트뱅크 비전펀드와 비교한다. 하지만 비전펀드는 몇 개의 스타트업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 형태의 투자를 하지만, 타이거글로벌은 더 많은 스타트업에 폭넓게 돈을 쥐여주는 방식이라 차이점이 있다.
타이거글로벌이 앞으로도 실리콘밸리에서 위세를 떨칠 수 있을까. 현재까지는 그럴 가능성이 있다. 타이거글로벌은 투자하는 스타트업에 간섭을 적게하고, 같은 지분이라도 더 많은 돈을 투자하니 스타트업으로서는 나쁠 게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들은 단순히 돈의 액수만을 보고 투자를 받지 않는다. 자신과 회사의 성장을 위해 다양한 지원을 해주고, 이끌어주는 벤처캐피탈을 원하는 경우도 많다. 이코노미스트는 “결국 타이거글로벌이 영향을 계속 확대할 것인가는 실리콘밸리의 창업자들이 결정할 문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