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에 있는 스타트업 ‘클루’는 생리 주기 추적 모바일 앱(응용프로그램)을 서비스한다. 여성이 자신의 과거 생리 정보를 입력하면 빅데이터 기술로 분석해 앞으로 3번의 생리 주기와 배란일을 예측해준다. 생리 기간엔 몸 상태와 스트레스 지수를 알려주고 맞춤형 조언도 해준다. 15가지 언어로 180국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클루 사용자는 3월 말 현재 1300만명에 이른다. 클루는 최근 배란일 예측을 활용해 안전한 피임 날짜를 알려주는 ‘디지털 피임약’의 미국식품의약국(FDA) 판매 허가도 받았다. 1년간 사용했을 때 원치 않는 임신을 할 가능성은 3~8%로 콘돔(2~13%)보다 낮다고 한다.
여성 건강을 위해 인공지능(AI)과 3차원(3D) 프린팅, 생명공학, 신소재 기술을 접목한 펨테크(FemTech) 기업들이 글로벌 스타트업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펨테크는 여성(female)과 기술(tech)의 합성어로, 여성 헬스케어와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기술·상품·서비스를 뜻한다. 폐경기 여성을 위해 건강 조언을 해주는 앱부터 유방암·자궁경부암 등 여성 암에 특화된 진단 기술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친환경 생리대를 만드는 업체까지 다양한 기업들이 출현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7일(현지 시각) “펨테크는 인류의 절반이 여성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시장”이라며 “여성 소비자의 힘이 커지고 있는 것도 긍정적인 부분”이라고 보도했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이머전리서치에 따르면 2019년 187억5000만달러(약 21조원)였던 펨테크 시장 규모는 2027년 600억1000만달러로 매년 15~20%씩 성장할 전망이다.
◇인류 절반이 타깃… 엄청난 잠재력
이스라엘 스타트업 모바일ODT는 스마트폰 절반 크기의 자궁경부암 검사기를 한국·미국·인도·브라질에 수출하고 있다. 이 검사기로 찍은 자궁경부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클라우드(가상 서버)에 올리면 AI가 암 발병 여부를 진단해준다. 자궁경부 세포를 채취해 현미경으로 검사하는 현재의 자궁경부암 진단 방식은 수주일이 걸린다. 하지만 모바일ODT 서비스를 이용하면 단 60초 만에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모바일ODT는 9000명을 대상으로 임상을 진행해 전문의와 비슷한 수준인 92%의 정확도를 인정받았다. 5만명을 대상으로 추가 임상을 진행할 계획이다.
유방암 환자들을 위한 기술과 서비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영국 스타트업 엘비는 유방을 절제한 환자들이 입을 수 있는 웨어러블(착용형) 가슴 펌프를 판매한다. 가슴 위에 부착하면 원하는 모양을 만들 수 있어 여성들의 자신감을 높여준다. 프랑스 회사인 라티스메디컬은 유방 환자용 임플란트(보철)를 개발했다. 우선 3D 프린터를 이용해 그물 형태의 보철을 만든다. 여성의 유방 주변에서 채취한 지방조직을 보철에 부착하고 가슴에 이식한다. 시간이 지나면 지방조직이 자라면서 절제된 가슴 부위가 복원되고, 보철은 18개월이면 분해돼 사라진다. 라티스메디컬은 동물 실험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고, 2022년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에 착수할 계획이다.
◇원격의료·여성용 신약 시장 공략해야
한국에도 펨테크 기업들이 등장하고 있다. AI 스타트업 루닛은 엑스레이 사진을 분석해 96~99%의 정확도로 유방암 의심 부위를 찾아낸다. 한국건강관리협회와 종합병원들이 루닛의 AI 기술을 영상의학과 전문의 보조용으로 활용하고 있다. 미 텍사스대 교수 출신 박지원씨가 창업한 세이브앤코도 유해 화학 성분을 모두 없앤 라텍스 콘돔 ‘세이브 프리미엄’으로 독일 레드닷, iF 등 세계적 디자인상을 받고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 500스타트업에서 투자도 받았다. 재미교포 여성 3인이 공동 창업한 라엘은 미국 최대 인터넷 쇼핑몰 아마존에서 유기농 생리대로 생리대 부문 판매량 1위를 수년째 유지하고 있다. 생리 주기 알림 챗봇 등 다양한 서비스도 제공한다.
김영수 연세대 약대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펨테크 산업이 나타나고 있지만 한국은 아직 소비재 비중이 높다”면서 “IT와 AI, 빅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원격의료 기술이나 여성용 신약 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펨테크(Femtech)
여성(Female)과 기술(Tech)의 합성어. 남성과 다른 여성의 신체 건강과 삶의 질 향상에 초점을 맞춘 기술·상품·서비스를 포괄하는 용어. 덴마크 출신 창업가 아이다 틴이 2013년 처음 제안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