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반도체 시장 거래 가격(현물가격)이 무섭게 치솟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 거래 가격(현물가격)이 무섭게 치솟고 있다. /그래픽

지난 24일 D램 반도체 시장 거래 가격은 11월 말보다 24%나 오른 3.44달러를 기록했다. 25일째 가파른 상승세이다. 반도체 현물 가격의 움직임이 PC·스마트폰 제조업체 같은 대형 거래처에 제품을 공급할 때 적용하는 고정 거래 가격보다 2~3개월 선행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내년 초에는 고정 거래 가격도 큰 폭으로 오를 게 확실시된다. 현재 현물 가격이 고정 거래 가격보다 20%가량 높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이런 가격 움직임을 수퍼사이클(장기 호황)의 전조로 보고 있다. 과거 2017~2018년 메모리 반도체 수퍼사이클 직전에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 삼성전자 주가도 24일 5% 이상 치솟으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도체로 전체 이익의 절반 이상을 거두는 삼성전자의 내년 실적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것이다.

◇IT기기 수요 회복·데이터센터 구축 경쟁

글로벌 시장 조사업체들은 앞다퉈 내년 반도체 시장 호황을 전망하고 있다. 세계 주요 반도체 업체 60여 사가 참여하는 반도체 시장 통계기관 WSTS는 최근 내년 반도체 시장이 8.4% 성장해 올해 성장률(5.1%)을 크게 웃돌 것으로 전망했다. 코로나 사태로 위축됐던 스마트폰, 휴대용 게임기 등 IT 기기 수요가 내년 본격적으로 회복되면서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가격 상승과 장기 호황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하나금융투자는 5G(5세대) 스마트폰 시장 규모가 올해 2억대에서 내년 6억대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이번 반도체 호황은 최소 2022년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D램 현물가격

글로벌 IT 기업들의 데이터센터 구축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것도 반도체 업계에는 희소식이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지난 23일(현지 시각)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등이 주도하던 데이터센터 투자 경쟁에 IBM, 오라클, 중국 제이디닷컴 등이 가세했다”면서 “내년엔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들은 데이터센터 한 곳에 10만 대 이상의 서버를 설치하는데 이 서버가 대부분 D램을 비롯한 메모리 반도체로 채워진다. 시장조사 업체 옴디아는 올해 622억1200만달러(약 68조6500억원)인 D램 반도체 시장 규모가 내년 794억5500만달러를 기록하고, 2022년엔 1004억9200만달러까지 급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TSMC·삼성전자 양강 체제로 급성장하는 파운드리

과거 반도체 하도급 생산으로 여겨졌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산업이 인공지능(AI) 붐으로 급부상하는 것도 호재다. 옴디아는 작년 600억5400만달러(66조2700억원)였던 세계 파운드리 시장 규모는 올해 681억7700만달러, 내년엔 738억3400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2024년엔 1000억달러에 육박할 전망이다.

파운드리 시장의 급성장은 인공지능(AI), 자율주행, 5G 등 첨단 기술 시장이 열리면서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알리바바 같은 글로벌 IT 업체들이 자사 서비스를 위한 맞춤형 반도체칩 개발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체 공장이 없기 때문에 파운드리 업체에 생산을 맡긴다.

파운드리 업체들은 과거에는 고객사를 찾아다니며 제품을 수주하던 ‘을(乙)’의 입장이었지만 이제는 고객사를 골라 받는 상황이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반도체칩 사양은 급격히 높아지는데, 초미세 공정인 5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미터) 이하 공정이 가능한 파운드리 업체는 전 세계에서 삼성전자와 대만 TSMC뿐”이라며 “지금 파운드리 주문을 해도 몇 달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TSMC와 삼성전자 파운드리 매출은 매 분기 20%의 두 자릿수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두 회사의 독과점 구조는 더욱 공고해질 전망이다. 파운드리 시장에서 두 회사를 따라잡겠다며 미세공정 개발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던 중국 반도체 기업 SMIC가 미국의 무역 제재로 인해 10나노 이하 공정 개발이 사실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최근 10나노 이하 공정 개발을 위한 미국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중국 기업에 수출할 때 정부 허가를 받도록 명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