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환 기자

우리말로 통신(通信)이라고 번역되는 텔레커뮤니케이션(telecommunication)은 본래 ‘멀다’는 뜻의 그리스어 텔레(τηλε)와 ‘나누다’라는 뜻의 라틴어 ‘communicare’가 합쳐진 말입니다. 멀리 떨어진 사람들끼리 무언가를 나눈다는 뜻입니다. 14세기 프랑스어에서 처음 등장했다고 하네요. 그리스어와 라틴어의 단어가 모여 프랑스어에서 생겨난 단어라니, 말의 뿌리마저 ‘소통’의 깊은 뜻을 반영하는 것 같아 신기합니다.

나름 멋진 뜻과 배경을 가진 이 말이 요즘 유독 천대받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무엇보다 한국의 통신기업들이 사명에서 ‘통신’이라는 말을 지우고 싶어 합니다. 본래 ‘LG텔레콤’이라고 불렸던 LG유플러스가 가장 먼저 텔레콤이라는 말을 지웠고, SK텔레콤도 그 뒤를 이으려 합니다. 이젠 KT마저 회사 이름의 ‘T’가 텔레커뮤니케이션이 아닌 기술(technology)이라는 말을 합니다.

겉으로 드러난 이유는 분명합니다. 통신 서비스가 이제 그 자체만으로는 예전만큼의 무게감이 없다는 겁니다. 휴대전화나 초고속인터넷은 이제 수도나 전기처럼 당연한 것이 됐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한 시대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굳이 통신이라는 말을 회사명에서 떼고 싶은 이유일까요. 사실은 ‘통신’이라는 말에 덧씌워진 부정적 의미가 더 큰 이유라는 말이 나옵니다. 통신산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크게 나빠졌다는 것이죠.

누구의 잘못일까요. 국민에게서 충분한 신뢰를 얻는 데 실패한 통신 기업들의 탓이 가장 우선할 겁니다. 하지만 통신산업을 치적(治績)의 도구로 활용해온 정부와 정치권의 행태가 초래한 결과란 비판도 적지 않습니다.

단말기 가격을 누구나 공정하게 지불하게 하겠다며 보조금을 제한하는 법을 만들었다가 국민들의 단말기 가격 부담만 늘이고, 수십년간 통신 요금을 ‘정부 허가제'로 운영해 놓고 뒤늦게 통신 요금이 낮추라며 기업들을 압박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그런 모습이 지금 정부에서도 별반 달라지지 않은 듯해 아쉽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기업들이 먼저 ‘통신’이라는 이름을 떼고 싶어 하는 게 아닐까요.

통신이란 단어의 진의(眞意)가 더는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되어 가는 것 같아 씁쓸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