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수퍼컴 ‘후가쿠’.


일본이 개발한 수퍼컴퓨터 ‘후가쿠’(富岳)가 또다시 미국과 중국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능을 인정받았다. 코로나와 AI(인공지능) 연구의 핵심 인프라로 떠오른 수퍼컴퓨터 기술에서 일본이 또 한 번 앞서간 것이다.

◇6개월만에 연산 능력 3조(兆)회 업그레이드

‘후가쿠’는 16일 국제수퍼컴퓨터학회(ISC)가 발표한 ‘세계 상위 500대 수퍼컴’에서 1위에 올랐다. ISC는 매년 6월과 11월 두 차례 계산 능력을 기준으로 상위 500대 수퍼컴퓨터 순위를 발표한다. 일본은 지난 6월 9년 만에 1위에 오른 데 이어 2회 연속 왕좌를 지킨 것이다. 후가쿠는 지난 6월 발표에선 1초에 41경(京)5000조(兆)회 연산 성능이었는데 이번 발표에44경2000조회였다. 연산 성능이 3경회 가까이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이번 발표에서 후가쿠에 이어 2위는 미국 서미트(1초당 14경8600조회 연산), 3위는 미국 시에라(9경4640조회), 4위 중국 선웨이 타이후라이트(9경3014조회)였다. 중국은 이번 순위 발표에서 1위를 일본에 내줬지만 상위 500대 수퍼컴 중 총 212대를 보유할 정도로 질과 양 면에서 수퍼컴 강국으로 자리잡았다. 미국이 113대로 두번째로 많았고, 일본(34대), 독일(19대), 프랑스(18대)가 뒤를 이었다.

◇자국 기술 맹신 버리고 실리 택한 ‘후가쿠’

후가쿠는 지난 2011년에 일본이 처음 수퍼컴 성능 1위에 올랐던 수퍼컴 ‘케이(京)’의 후속 모델이다. 후가쿠는 15만개 넘는 CPU(중앙처리장치)를 사용해 연산한다. ‘후가쿠’가 선배인 ‘케이’와 다른 점은 높은 활용성이다. 10년전 일본은 자국 기술에 대한 지나친 맹신 탓에 후지쓰의 CPU 칩 설계 기술을 활용해 수퍼컴을 제작했다. 이때문에 수퍼컴에 탑재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인 OS(운영체제)도 한정돼 있었다. 이용자가 케이를 사용해 연구를 하려면 소프트웨어를 새로 만들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일본 내에서도 “국비를 투입해 개발하는 슈퍼컴퓨터에 사용자가 이용하기 쉬운 설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일본은 이후 CPU의 기본 설계를 재검토해 영국 반도체 설계 업체인 ARM의 기본 설계를 활용했다. OS도 산업계에서 널리 쓰이는 미국 리눅스의 제품을 채택해 호환성을 높였다. 이 덕분에 전세계 기업과 연구자가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후가쿠는 현재 재채기와 기침을 통해 실내에서 비말이 어떻게 퍼져나가는지 등 코로나 연구에 활용되고 있다.

◇코로나·AI 연구 여기에 달렸다…수퍼컴에 투자하는 미중일

일본을 비롯 미국과 중국, 유럽 등 주요 선진국은 4~5년 전부터 매년 수천억원을 수퍼컴 개발에 쏟아붓고 있다. 수퍼컴이 AI·신약 개발 등 미래 산업 성패를 좌우하는 인프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닛케이는 “미국은 당장 내년에 엑사급(1초에 100경회 연산)의 ‘오로라’를 내놓을 예정이고, 중국도 조만간 이에 버금가는 엑사급 수퍼컴을 가동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이들 국가와 격차가 크다. 한국은 이번 ISC 조사에서 수퍼컴 3대가 톱500에 들었지만 모두 돈 주고 사온 외국산이다. 이마저도 2018년 7대, 2019년 5대에서 매년 숫자가 줄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2022년까지 자체 기술 수퍼컴 제작 목표를 세운 상태지만 그때가 되면 주요국 수퍼컴과 성능격차는 1000배 이상으로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