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별세했다. 향년 78세. 이건희 회장은 1942년 1월9일 대구에서 고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이병철 회장이 타계한 이후 1987년 12월 삼성그룹 회장 자리에 올랐다. 이후 반도체 사업 등을 잇달아 성공시키며 글로벌 무대에선 다소 뒤처지던 삼성전자를 명실상부한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키워냈다. 사진은 2002년 삼성그룹 사장단 워크샵사진. (사진=삼성전자 제공).

한국 재계의 거물이자 삼성전자를 세계 최고의 제조업체로 키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서울 일원동 서울삼성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8세.

이건희 회장은 오늘날 삼성전자가 휴대폰과 TV,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위에 오를 수 있게 한 장본인으로 꼽힌다. 늘 위기의식을 강조하며 ‘창조적 파괴’를 통해 끝없는 혁신을 주문한 이 회장의 리더십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1993년 6월 유명한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이 회장 평생의 화두였던 ‘위기의식’과 ‘혁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안이었다. 당시 삼성이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리며 승승장구하고 있었음에도, 이 회장은 자만에 빠지기 보다는 ‘잘 나갈수록 위기를 생각하라’고 주문하며 스스로 혁신의 선두에 섰다.

◇과감하게 디지털TV에 투자

이 회장은 2003년 전체 판매량의 27%였던 브라운관 TV생산을 중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시대적 흐름에서, 당장 매출에 손실이 있더라도 PDP, LCD 등 디지털TV로 승부를 걸라는 것이었다. 이에 삼성전자는 ‘TV일류화프로젝트팀’을 구성하고, 반도체 부문의 시스템 LSI인력 200여명을 TV사업부로 보내는 조직개편을 하는 등 TV 1위를 위한 체질변화에 나섰다.

이 회장의 승부수가 먹혀 들어 삼성전자는 2006년 세계 TV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게 된다. 1969년 흑백TV를 생산한지 37년만에 ‘빠른 추격자’에서 ‘시장 선도자’로 변모한 순간이다.

◇애플 등장에…"머뭇거릴 시간 없다"

휴대폰과 스마트폰 분야 역시 이 회장이 글로벌 1위로 키운 대표적 산업이다. 글로벌 휴대폰 시장은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처음 내놓으면서 요동쳤다. 당시 피처폰의 강자였던 노키아의 점유율은 급락했고, 삼성역시 타격을 입었다. 이 회장은 2010년 3월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일류기업들이 무너지고 있고 삼성도 어찌될지 모른다. 다시 시작하자. 머뭇 거릴 시간이 없다”고 주문했다.

이 회장의 지시로 삼성전자는 무선사업부를 전면에 배치하고, 주력 스마트폰 운영체제를 구글 안드로이드로 전환했다. 2010년 5월 첫 스마트폰인 ‘갤럭시S’를 빠르게 내놨고, 2012년에는 총 4억대의 휴대폰을 팔아 글로벌 시장 점유율 25.2%로 세계 정상에 등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