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로 아파트에 살고 있는 직장인 A(36)씨는 요즘 속이 탄다. 올해 말 만기가 되면 집을 비워줘야 하는데, 주변 아파트 전세 시세가 많이 올라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됐기 때문이다. A씨는 “최근 아파트 청약에 예비 당첨이 됐는데 내 순번 앞 대기자가 2000명이더라”며 “내 집 갖기는 갈수록 어려워질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

부동산값을 잡겠다며 정부가 규제책을 내놨지만 서민들이 느끼는 주거 불안은 더욱 커지고 있다. 하나은행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16일 법원 등기 데이터 등을 활용해 아파트값이 실제로 얼마나 큰 폭으로 올랐는지, 무주택자의 내 집 마련은 얼마나 어려워졌는지, 정부 부동산 규제가 어떤 효과를 냈는지 등을 분석한 ‘국내 부동산 거래 트렌드 분석’ 보고서를 내놨다.

◇정부 발표 아파트값 상승률, 현실과 달라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최근 정부가 발표해 논란이 된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이 현실과 거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감정원은 서울 아파트값과 관련해 ‘매매가격지수(최근 3년간 14.2% 상승)’와 ‘실거래가격지수(45.5% 상승)’ ‘실거래 평균가격(39.1% 상승)’ ‘실거래 중위가격(38.7% 상승)’ 등을 산출한다. 정부는 이 중 가장 상승률이 가장 낮은 매매가격지수를 인용했다. 그런데 매매가격지수는 지역별로 아파트 거래 표본을 추출한 뒤 설문 조사로 가격을 조사해 산출하기 때문에 정확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지수 산정 기간에 거래 신고가 2회 이상 있는 서울 아파트의 가격 변동률과 거래량을 토대로 산출되는 실거래가격지수는 같은 기간 45.5%나 상승했다. 또 연구소가 각 구별로 네이버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인기 아파트를 뽑아 가격 변동률을 계산했더니, 최근 3년간 가격이 60% 넘게 뛴 것으로 나타났다. 25구의 인기 아파트 가격은 평균 63% 올랐는데, 강동구와 광진구는 상승률이 89%에 달했고, 마포구도 87%나 올랐다. 이어 동대문구(73%), 성동구(72%), 강남구(71%)도 70% 이상 가격이 올랐다. 일반인들이 체감하는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이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무주택자의 내 집 마련 갈수록 어려워

법원 등기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서울과 경기도의 부동산 거래 중 무주택자의 매수 비율이 2013년 41%에서 올해 상반기 31%까지 떨어졌다.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주택 구입을 보류하거나 포기한 무주택자는 증가하고, 상대적으로 기존 주택 보유자의 추가 매수나 다른 부동산으로의 ‘갈아타기’ 비율이 높아진 것이다. 생애 첫 부동산 매수인 수(전국 기준)도 지난 2015년 53만명에서 작년에는 41만명으로 쪼그라들었다. 서울 지역만 보면 2015년에는 부동산을 처음으로 구입한 사람이 10만1000명이었지만, 이후 꾸준히 감소해 작년에는 5만7000명에 그쳤다.

연구소는 “2013년까지는 침체된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위해 신규 주택 구매를 장려하는 저리 대출,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 완화, 양도·취득세 경감 등의 부양책으로 서울의 생애 첫 부동산 매수 비율이 40%대까지 상승했으나, 2014년부터 재건축·재개발 완화 정책 등과 함께 부동산 가격이 점차 상승하자 생애 첫 매수 비율이 30% 초반까지 하락했다”고 분석했다.

◇반복되는 규제, 효과 없이 풍선 효과 남겨

정부의 부동산 규제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부동산 가격은 급등했고, 수요 억제에 초점이 맞춰진 정책 때문에 여러가지 부작용이 나타났다는 지적도 나왔다. 보고서는 “서울 인기 지역에 대한 규제로 인해 서울 내 비인기 지역의 집값이 상승했고 이후 수도권 전역으로 집값 상승 추세가 나타났다”며 “최근 광범위한 매매 규제와 임대차법 시행으로 인해 일부 지역 전세가가 상승하는 등 다양한 풍선 효과가 발생했다”고 했다.

2017년부터 다주택자를 대상으로 하는 부동산 정책이 다수 시행됐지만, 정작 다주택자들은 신탁, 증여, 법인 명의 거래 등으로 규제의 영향을 피해간 것으로 연구소는 분석했다. 2017년 ‘8·2 대책’(대출 축소, 다주택자 규제)이 발표되자 그해 8월 집합건물(주택, 아파트 등) 신탁이 사상 최고 수준(6589건)으로 증가했다. 올해 ‘7·10 대책’(다주택자 세제 강화) 이후엔 다주택자들이 증여를 통해 규제를 회피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책 발표 다음 날부터 바로 증여 건수가 크게 증가하며 7월 한 달간 서울 집합건물 증여 건수는 역대 최대 수준(6456건)으로 급증했다.

연구소는 “수요 억제 위주의 부동산 규제책을 반복해서 발표하는 것 자체가 시장에는 ‘집값이 계속 상승 중’이라는 신호를 줘 잠재 수요자의 불안감을 자극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금이 막차’라는 불안감에 30대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로 집을 사는 경우가 늘었다. 서울 집합건물 매수인 중 30대 비율은 2017년 24%에서 올 상반기 28%로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