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창업에 뛰어들며 한국 경제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성장을 돕기 위해 스타트업 인터뷰 시리즈 ‘스타트업 취중잡담’을 게재합니다. 그들은 어떤 일에 취해 있을까요? 그들의 성장기와 고민을 통해 한국 경제의 미래를 탐색해 보시죠.

할리우드 영화 ‘데드풀’이나 ‘울버린’을 보면 주인공들의 몸은 깊은 상처가 나도 금방 회복된다. 영화 속 얘기만이 아니다. 현실 속 불가사리, 도마뱀, 게 등의 동물은 위급한 상황에서 몸이 잘려 나간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해당 부위가 다시 자라난다.

이들처럼 대단한 재생 능력까진 아니지만, 사람도 피부의 상처를 재생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칼에 살짝 베이는 수준의 상처라면 연고를 바르는 정도로 충분하다. 새로운 조직이 자라나고, 표피 세포들이 좌우로 움직이면서 상처의 면적을 줄여 나간다.

문제는 피부와 근육, 혈관 등을 포함한 연부조직이 손상될 때 발생한다. 연부조직은 신체에서 경도(단단한 정도)가 낮은 조직을 의미한다. 암 수술로 연부조직을 강제로 떼어내거나, 외상이 깊은 경우에는 자가 회복으로 치유되기 어렵다. 자가 회복이 어려운 경우 연부조직을 대체할 것을 신체에 이식해야 하는데, 이때 쓰이는 것이 인공 연부조직이다. 국내에서 인공 연부조직을 개발하는 기업은 한 곳뿐이다. 플코스킨의 백우열(40) 박사를 만나 재생의료기기의 필요성에 대해 들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인공 연부조직을 개발하는 기업 플코스킨의 백우열(40) 대표 겸 연세세브란스병원성형외과 조교수. /더비비드

◇부작용 없는 인공 피부조직

바이오 스타트업 플코스킨은 신체 연부조직 재건용 소재를 만든다. 2017년 연세대학교 성형외과 조교수 백우열 박사가 창업했다. 플코스킨의 주요 개발품은 유방 재건용 인공진피 ‘티슈덤’이다. 동물성 콜라겐과 인공 폴리머를 배합한 것으로, 유방암 환자의 유방 등 결손된 신체조직을 채워야 하는 상황에 쓰인다.

기존에는 배나 등 쪽의 자가 조직을 이용하거나, 실리콘 보형물을 넣어 재건술을 진행했다. 이 경우 신체에 흉터가 남는 등 부작용이 발생한다.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실리콘 보형물에 사체의 진피를 감싸는 경우도 있는데, 사체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고 수술 비용이 비싸 보편적이지 않았다.

백 대표가 개발한 인공 연부조직 '티슈덤'의 실제 모습. /백우열 대표 제공

티슈덤은 신체 이식 시 3년 이내에 완전히 체화돼 체내 염증에 대한 걱정이 없다. 인공 개발품이라 대량 생산이 가능해, 불완전한 사체 공급 문제를 해결했다. 등이나 배에서 조직을 떼어 내지 않아도 되니 수술도 비교적 간편해졌다.

지난 3월 개발과 함께 동물 실험을 끝내고 품목 허가 절차를 밟고 있다. 기술력을 인정 받아 지금까지 30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2022년 서울산업진흥원 기술상용화 지원사업에 선정돼 ‘생체적합성이 향상된 요실금치료용 생분해 의료기기 개발’로 연구 과제를 수행했다. 현재 자체 공장을 설립해 상용화를 준비하고 있다.

◇수술에 직접 쓰기 위해 창업

백 교수는 2007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전공으로 성형외과를 택했다. 2015년 레지던트 생활을 마치고 현재 세브란스병원에서 성형외과 조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지금도 일주일 중 이틀은 병원에 출근해 진료를 보고 수술도 한다.

백 대표가 티슈덤 등 의료기기를 연구하는 연구실 모습. /백우열 대표 제공

현장에서 환자를 돌보고 임상 연구를 이어갈수록 ‘중개 의학’에 관심이 생겼다. “기초 의학에서 만든 새로운 치료법을 임상 의학에 적용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합니다. 새로운 의약품, 의료기기, 진단 및 치료 기술을 처음 접하는 것이 좋아 도전한 분야죠. 신약 개발자, 생명공학자에게 환자를 돌보는 의사의 관점에서 유의할 점을 알려주고, 임상 연구의 방향성을 잡는 역할을 합니다.”

성형외과에서 많이 쓰이는 피부 재생 물질이나, 상처 드레싱용 의료기기 위주로 의뢰가 들어왔다. 제품에 대해 분석할수록 직접 개발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학 연구는 무척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필요해요. 결국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제품이나 해외 의료기기의 복제품 위주로 개발이 진행되곤 합니다. 그런 현실이 답답했어요.”

현장에 당장 필요한 게 뭔지 고민했다. 당시 백 교수가 자주 집도했던 수술은 유방 재건술과 안면 재건술이었다. 유방암으로 인해 절제한 유방을 재건하거나, 선천적 기형으로 두개골이나 안면의 조직을 절제한 환자의 얼굴을 재건하는 수술이다. “티타늄을 활용한 인공 두개골과 같은 골 대체품은 많이 있는데, 피부 조직을 대체하는 소재는 많지 않았어요. 자기 조직을 사용하거나 사체에서 떼어와 가공 후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죠.”

백우열 대표가 티슈덤을 이용해 인공 연부조직을 만들어내는 3D 프린터를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더비비드

부작용이 없으면서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인공 연부조직에 대한 국내외 수요가 계속 느는 상황이었다. “유방암은 전세계 여성암 중 발병률 1위입니다. 국내에서도 매년 5% 이상 발병 건수가 증가하고 있죠. 환자는 점점 늘고 있는데, 정작 유방 절제술을 한 환자 중 80%는 재건술을 받지 못해요. 비용 문제도가 있고,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크기 때문이죠.”

◇결손 부위의 재생, 인공피부가 내 진짜 피부되는 과정

2017년 미국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에서 1년 동안 조직 재생 분야 연구 강사로 지내면서 창업을 결심했다. “미국은 의료인 창업이 활성화돼있더군요. 그들이 출시하는 의료기기와 소재도 다양해요. 창업에 대한 열린 자세가 의학 수준과도 연관이 깊다는 생각이 들었죠. 반면 한국은 의료인이 창업하는 일이 드물어요. 마침 임상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기도 하고, 국내에서 인공 연부조직에 대한 연구도 지지부진한 상황이라 제가 직접 회사를 차리기로 했습니다.”

티슈덤을 이용해 부분 유방 재건 과정을 나타낸 그래픽. /백우열 대표 제공

인공 연부조직 개발에 돌입했다. 피부의 표피 밑에 있는 진피층과 피하층이 연부조직에 속한다. “진피층의 주성분 중 하나인 콜라겐과 고분자 폴리머를 결합해 인공 조직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인공으로 만든 피부지만 생분해성 폴리머를 넣어 인체에 이식했을 때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장점이죠. 돼지나 소에서 유래한 동물성 콜라겐과 폴리머를 적절히 배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콜라겐 비율이 너무 높으면 물리적 강도가 약해 잘 찢어져 다루기 어렵거든요.”

해외 시장을 공략하기에도 적합한 제품이다. 일본과 유럽 일부 국가에선 사체에서 떼어낸 진피를 법적으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체의 진피를 사용할 수 없는 국가에선 실리콘 보형물로만 유방재건술을 할 수 있죠. 인공 연부조직이라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

4년의 연구 끝에 개발한 인공 연부조직을 처음 제품화한 것이 유방 재건용 ‘티슈덤’이다. 유방 전체 재건술에선 보형물에 티슈덤을 감싸 적용하고, 부분 재건을 할 때는 티슈덤을 단독으로 쓴다.

(왼쪽부터) 존스홉킨스 의과대학 성형재건 외과 부장 WP 앤드류 리 교수, 백우열 플코스킨 대표. /백우열 대표 제공

티슈덤에 이어 여러 신체 부위에 적용할 수 있는 인공 연부조직을 개발하고 있다. “복벽을 재건할 때 쓰는 메쉬 형태의 연부조직, 요실금이나 림프부종 치료를 위한 삽입형 의료조직 등을 모두 인공 연부조직으로 만들 수 있어요. 신체에서 이상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생분해성 물질이니 용도가 무궁무진하죠.”

임상시험을 거쳐 상용화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건 예상되는 수순이었다. 투자금 외에도 수익을 낼 방안을 마련해뒀다. “2018년 ‘유리프’라는 화장품 브랜드를 론칭했습니다. 재생력이 강한 천연 유래 성분으로 제작한 화장품이죠. 10명의 임상 전문 연구원이 있어 외부에서 임상 리포트 분석 요청도 자주 들어옵니다. 화장품 판매 수익과 임상 연구 대행으로 작년에는 5억원의 매출이 발생했고, 올해는 이미 10억원 이상의 매출을 냈습니다. 수익은 전부 연구 개발에 쓰이고 있죠.”

◇연구 창업이라도 파이프라인은 만들어둬야

망하기 십상이라는 연구 창업에 도전한 백우열 대표. 연매출 10억원을 내고 있다. /더비비드

10명의 연구원이 플코스킨에서 다양한 개발을 하고 있다. 인공 연부 조직 이후도 준비하고 있다. 최근 진행한 줄기세포 연구에서 세포의 노화를 억제하는 구성 성분을 발견했다. “줄기세포를 활용한 바이오 의약품과 화장품 개발에도 도전하고 싶습니다.”

연구 창업이라고 해서 투자금 유치에만 몰두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조언했다. “연구 창업은 수익이 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투자금에만 의존할 순 없어요. 갖고 있는 인력 안에서 적은 금액이라도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부가 수익이 연구 속도를 더 올릴 수 있는 추진력이 되기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