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 지역에 40도가 넘는 이례적인 불볕더위가 덮치면서 수천만 명이 심각한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스페인 일부 지역에선 한때 기온이 46도까지 치솟아 6월 중 최고 기록을 세운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자들은 미국과 유럽을 동시에 강타한 폭염 원인으로 열돔(heat dome)을 꼽고 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29일(현지 시각)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진의 연구를 인용해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지난 1950년 이후 폭염과 홍수, 산불에 영향을 주는 정체된 대기 현상이 거의 3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최근 프랑스와 스페인, 그리스 등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고기압이 열을 가두는 현상인 열돔이 형성되면서 이례적인 불볕더위를 겪고 있다. 스페인 국립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28일 남부 내륙 마을인 엘 그라나도에서는 6월 관측 사상 최고 온도인 46도까지 올라간 것으로 기록됐다. 지난 26일 아테네 남쪽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수니온의 관광 명소인 포세이돈 신전으로 이어지는 해안 도로가 폐쇄됐는데 당시 기온이 40도에 달했다.
영국 기상청은 이번 주 초반에 더 높은 기온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영국 남동부와 웨일스 동부 지역에서는 최고 기온이 35도에 달할 것으로 예보됐고 런던도 35도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영국 기상청은 “일부 지역에선 열대야가 이어지면서 당분간 20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날씨 전문 매체 애큐웨더에 따르면 미국은 최근 1주일 새 3000곳이 넘는 지역에서 역대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미국 동부에선 온열 질환으로 수십 명이 병원에 입원했고, 뉴욕은 39도로 역대 6월 최고 기온을 경신했다. 한반도도 남쪽의 덥고 습한 공기가 유입되면서 전국적으로 찜통더위와 열대야가 이어지고 있다. 과학자들은 최근 지구 대류권을 도는 빠르고 좁은 공기 흐름인 제트 기류의 변화에서 이런 극단적 기상 현상의 원인을 찾고 있다.
열돔은 뚜껑이나 모자로 덮은 것처럼 대기가 뜨거운 공기를 가두어 극심한 열을 발생시키는 기상 현상이다. 강한 고기압이 비정상적으로 오랫동안 머물며 대류와 강수를 방해하고 뜨거운 공기를 특정 지역에 가둬 둔다. 열돔은 주로 여름철 고기압과 약해진 제트 기류가 합쳐지면서 발생한다. 영국 왕립기상학회에 따르면 강한 고기압과 저기압 사이로 제트 기류가 흐르면 그리스 문자 오메가(Ω)와 유사한 형태의 대기 흐름을 방해하는 차단막을 형성한다. 오메가 문자 가운데 해당하는 고기압대 영역에 대기가 정체하면서 장기간 무더운 날씨가 이어진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마이클 만 교수 연구팀은 이렇게 한 지역에서 장기간 계속되는 기상 현상의 배후에 준공진증폭(Quasi-resonant amplification·QRA)이라고 알려진 현상이 있으며 1950년 이후 지난해까지 그 발생 빈도가 3배 가까이 늘어났다고 국제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16일자에 소개했다.
이번 연구 공동 저자인 미국립로렌스버클리연구소 마이클 웨너 선임 과학자는 “지금까지 기온 상승에 따른 기후 변화의 열역학적 영향은 잘 알려졌으나 극한 기상을 유발하는 역학적 과정에 대한 해석은 훨씬 어려운 문제”라며 “이번 연구는 대기 운동의 이런 복잡한 측면에서 중요한 변화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준공진증폭은 8~15㎞ 상공에서 부는 좁고 빠른 공기 흐름인 제트 기류가 강해지고 증폭되는 현상이다. 한 지역의 기상 패턴을 장기간 정체시켜 이번 무더위 같은 폭염은 물론 중국과 아시아 지역을 강타한 홍수, 최근 북미 지역에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산불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번에 미국과 유럽을 강타한 폭염이나 중국에서 발생한 폭우처럼 특정 지역에만 극심한 기상 현상을 지속시킨다. 쉐커 리 박사후연구원은 “준공진증폭 현상은 파동의 강도와 지속 시간을 증가시켜 극심한 기상 현상이 한 지역에서 장기간 지속되는 결과를 낳는다”고 설명했다.
최근 20년 동안 북반구 중위도에서는 기록적인 여름철 극심한 더위가 여러 번 발생했다. 2003년 유럽의 폭염, 2010년 러시아의 폭염, 2011년 미국 텍사스의 폭염과 가뭄은 대표적인 사례다. 2021년 태평양 북서부 열돔 사례는 이 가운데 가장 심각한 사례로 평가된다.
당시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는 기온이 47도, 워싱턴주 시애틀에서는 42도를 넘었고, 6월 말에서 7월 초까지 이어졌다. 연구진의 분석 결과 준공진증폭을 통해 토양에 수분이 부족해졌고 하층 대기에 온난화가 증폭되면서 전례 없는 폭염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유럽중기예보센터(ECMWF)에서 생산하는 5세대 전 지구 기후 재분석 자료(ERA5)를 활용해 1950년부터 2024년까지 나타난 준공진증폭 현상을 분석했다. 이 자료는 1940년부터 현재까지 지구 대기, 지표면, 해양에 대한 포괄적인 4차원 관점을 제공하며, 매시간 업데이트된다.
만 교수는 “인간이 유발한 지구 온난화는 제트 기류와 다른 순환 체계를 조절하며 극심한 기상 현상을 더욱 빈번하고, 지속적이며,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며 “최근 북극 온난화와 육지 해양 열적 대비 환경은 이런 환경 조건에 점점 잘 맞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엘니뇨 현상의 성숙기에도 공진 증폭 현상의 빈도가 증가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엘니뇨는 열대 동태평양 해역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은 상태로 지속되는 현상이다. 리 연구원은 “엘니뇨 남방 진동(ENSO) 현상이 발생하는 동안 열대 태평양 전역에서 열과 대류가 변화하며 외부로 파장이 퍼져 제트 기류의 구조와 강도를 바꾼다”며 “이 과정에서 행성파 공진이 발생하는 대기 상태에 미묘한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상 기후 현상의 빈도와 영향력이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기후 모델은 이를 완전히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리 연구원은 “현재의 기후 모델이 극단적 기상 현상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며 “현재 모델이 파괴적이고 치명적인 여름철 극한 기상 현상의 증가 가능성을 과소평가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만 교수도 파이낸셜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지구 온난화가 지속됨에 따라 이번에 유럽과 북미에서 동시에 발생한 이중 열돔이 더 자주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아만다 메이콕 영국 리즈대 교수는 “여름철 일반적인 날씨로 여겨지던 것은 과거의 개념이고 앞으로는 날씨 패턴의 변화와 제트 기류로 기온과 강수량의 극단적인 현상이 규칙적으로 나타날 것”이라며 “기온 기록이 정기적으로 큰 폭으로 경신될 것으로 예상되며 온실 가스의 지속적인 증가로 인해 더위가 심화할 것은 확실하다”고 덧붙였다.
참고 자료
PNAS(2025), DOI : https://doi.org/10.1073/pnas.2504482122
PNAS(2024), DOI : https://doi.org/10.1073/pnas.2315330121
Science Advances(2018), DOI : https:// doi.org/10.1126/sciadv.aat32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