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중부 안후이(安徽)성의 성도 허페이(合肥) 도심 서북쪽. 이곳에는 중국 과학원 플라스마 물리연구소 등 5개 연구소가 밀집한 ‘과학섬(科學島)’이 있다. 중국 신화통신 등 현지 매체들은 최근 ‘버닝 플라스마 실험 초전도 토카막(BEST)’으로 명명한 새로운 핵융합로가 2027년 완공을 목표로 과학섬에 건설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BEST를 비롯해 중국의 대규모 국비 지원 핵융합로 건설 프로젝트(CRAFT)는 당초 예정보다 두 달 빨리 시작해 공기를 앞당기고 있다. 프로젝트 담당 연구원은 현지 언론에 “핵융합로는 설치 정밀도와 누적 오차가 모두 ㎜ 범위 내에서 제어돼야 하기 때문에 기술적 과제가 상당하다”며 “2027년 11월까지 완료할 것”이라고 밝혔다.
‘땅 위의 태양’으로 불리는 핵융합발전소 상용화를 먼저 하려는 주요 국가들의 경쟁 열기가 뜨겁다. 핵융합 에너지는 태양처럼 핵융합 반응을 일으켜 전력을 생산하는 차세대 에너지원이다. 기후위기 대응과 인공지능(AI) 산업의 성장에 따른 에너지 문제가 대두하면서 바닷물의 중수소를 연료로 사용해 탄소 배출이 없으면서도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핵융합발전이 주목받는다.
◇‘세계 최초’ 두고 美·中 경쟁
핵융합 발전의 에너지원은 지구상에 거의 무한에 가깝게 존재하는 수소다. 다른 발전 방식과 달리 에너지원 사용에 제한이 없고 환경 오염 위험도 낮아 ‘꿈의 에너지’로 불리는 배경이다. 원자력 발전은 우라늄과 같은 무거운 원소가 중성자를 흡수해 쪼개지는 ‘핵분열’을 이용하는 반면, 핵융합 발전은 중수소와 삼중수소가 융합하면서 헬륨으로 바뀔 때 발생하는 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한다. 핵융합 발전의 주요 폐기물은 헬륨으로, 원자력발전의 핵폐기물에 비해 위험도가 현저히 낮다.
현재 핵융합 상용화에 가장 가까이 간 국가는 미국과 중국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스핀오프 기업인 커먼웰스퓨전시스템(CFS)은 세계 최초의 핵융합발전 상용화를 두고 중국과 경쟁 중이다. CFS도 2027년 완공을 목표로 상온 핵융합 발전소 ‘SPARC’의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SPARC는 BEST에 비하면 규모가 작지만 더 강력한 자석을 사용해 핵융합을 일으키고, 투입 에너지 대비 생산 에너지를 최소 2배에서 10배까지 늘릴 수 있도록 설계됐다. 미국 에너지부는 이 기업에 2023년 1500만달러(약 214억원)를 지원했다.
미국 정부 산하 로런스리버모어국립연구소(LLNL)는 2022년 세계 최초로 핵융합 점화에 성공하고, 2023년 7월 두 번째 점화도 성공했다. 핵융합 점화는 핵융합을 일으키기 위해 투입한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생산했다는 의미로, 핵융합 발전으로 나아가는 주요 이정표다.
◇韓, 핵융합 토카막 제작 기술에 경쟁력
국제 공동으로 핵융합 발전에 대한 본격 논의를 시작한 것은 1980년대지만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상용화에 이르진 못했다. 고온, 고압에서 중수소와 삼중수소를 결합시키기 위해선 수천만~1억도에 달하는 온도에서 플라스마(원자핵과 자유전자가 각각 움직이는 이온화된 기체)의 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현재 기술로는 플라스마를 장시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토카막(tokamak·자기장을 이용해 플라스마를 가두는 장치)을 상업 발전 수준으로 구현하기가 매우 어렵다.
국내 연구소와 기업은 원전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대규모 토카막 제작에 필수적인 고난도 용접 및 정밀 부품 가공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03년 ‘국제 핵융합 시험로(ITER)’ 건설 사업에 참여한 한국은 현재까지 공동 개발 사업을 통해 1조6000억원 규모의 조달 물량을 수주했다. 프랑스 남부 카다라슈 지역에 건설 중인 ITER 핵융합 실험로에 필요한 주요 부품 상당수를 한국이 생산하고 있다.
미국·러시아·유럽연합·일본·중국·한국·인도 등은 ITER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는 한편, 개별적으로도 융합 발전을 상용화하기 위한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남용운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KSTAR 연구본부장은 “한국도 2007년 국내 기술로 완공한 초전도 핵융합 연구장치 ‘KSTAR’로 온도, 밀도, 전류 등 플라스마 운전 변수를 동시에 높일 수 있는 고성능 운전 실험을 다양하게 시행하고 있다”며 ”향후 핵융합 발전 상용화에 사용될 성과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