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 치료제가 전 세계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경구용(먹는 약) 비만 치료제 개발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비만약은 모두 주사 투여 방식이라 환자 편의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비만 치료 주사제 위고비·젭바운드를 각각 개발한 덴마크 노보 노디스크, 미국 일라이 릴리와 국내외 후발 주자들이 잇따라 경구용 비만약 개발에 나섰다. 업계는 경구용 개발이 비만약 시장의 제2막을 열 것이라고 기대했다.
4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노보 노디스크, 일라이 릴리 등 글로벌 제약사들은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유사체를 활용한 경구용 비만치료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GLP-1 호르몬은 뇌의 시상하부에 있는 신경세포를 조절해 식사 후 식욕을 떨어뜨리고 포만감을 유발한다. 이를 흉내 낸 게 GLP-1 유사체다. 비만약 시장은 2030년까지 1260억달러(한화 177조원) 규모로 성장한다고 전망되는 만큼, 약물의 편의성을 높이면 초대형 시장의 판도를 바꿀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속도가 빠른 회사는 선발 주자인 노보 노디스크다. 전날 시장조사 기관인 글로벌 데이터는 노보 노디스크가 위고비의 약효 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를 경구용 제제로 만들기 위해 임상 3상 시험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데이터는 “경구용 약물 중 노보 노디스크가 성공 가능성이 가장 높고 승인 가능성이 35%에 달한다”고 밝혔다.
약은 그대로 두고 전달체를 바꿔 알약처럼 먹는 효과를 내는 방식도 연구 중이다. 노보 노디스크는 최근 바늘 없는 캡슐에 넣은 GLP-1 유사체를 돼지의 소화기관 내벽 안으로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캡슐은 몸에 남지 않고 배출된다.
경쟁사인 일라이 릴리도 오는 2026년 출시를 목표로 GLP-1 계열의 경구용 비만 치료제의 임상 3상 시험을 하고 있다. 임상 2상에서 평균 최대 14.7%의 체중 감량 효과를 증명했다.
다른 글로벌 제약사들도 먹는 비만약에 도전장을 냈다. 중국 항서제약은 임상 3상 단계의 먹는 비만약 후보물질인 HRS-9531을 미국 헤라클레스CM뉴코에 기술이전하고 공동 개발하고 있다.
스위스 로슈는 현재 개발 중인 경구용 비만치료제 CT-996의 임상 1상 결과를 최근 공개했다. 임상시험에 참여한 환자들이 하루 1회 복용한 결과, 4주 이내 체중이 평균 6.1% 감소했고 관련 부작용도 다른 체중 감량 약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국 화이자는 부작용 문제로 개발이 중단됐던 GLP-1 계열 경구용 비만 치료제 개발을 최근 재개했다. 하루 2회 복용하는 방식의 경구용 비만 치료제로, 기존에 임상 2b상까지 마친 상태다. 용량 최적화 연구를 통해 하루 1회 복용 방식으로 임상시험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국내 기업들의 약진도 눈에 띈다. 가장 앞선 곳은 일동제약이다. 자회사 유노비아를 통해 GLP-1 관련 약물의 임상 1상 후속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 약물은 GLP-1 수용체 작용제로, 몸속에서 인슐린의 합성·분비, 혈당량 감소, 위장관 운동 조절, 식욕 억제 등으로 GLP-1 호르몬과 같은 역할을 한다.
디앤디파마텍은 지난해 4월 미국 멧세라에 비만 치료제 후보물질 4개를 기술수출했다. 그중 DD02S가 최근 임상 1상 시험서 투약되기 시작했다. 한미약품도 비만 전주기 관리 프로젝트 일환으로 경구용 비만 치료제 후보 물질을 탐색하고 있다. 대웅제약은 GLP-1 수용체와 인슐린 분비 촉진, 항염증 작용을 하는 위 억제 펩타이드(GIP) 수용체에 이중 작용하는 먹는 비만 치료제 후보물질을 발굴해 국내 특허를 출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