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서 이기려면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계획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식물의 전쟁도 마찬가지다. 기생식물은 숙주가 어느 정도 자랐는지 파악해 자신의 행동을 결정한다.

독일 막스플랑크 화학생태학연구소와 중국 과학원 쿤밍 식물학연구소 공동 연구진은 지난달 31일 국제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기생식물인 새삼이 숙주가 언제 꽃을 피울지도 알아내 그에 맞춰 꽃 피는 시기를 조절한다”고 밝혔다.

기생식물 새삼/중국 과학원

새삼은 전 세계 200여 종이 있는데, 뿌리도 없이 숙주식물에 기생한다. 실 같은 가지에는 흡수근 또는 기생근이라고 부르는 유사 뿌리가 있다. 이것을 숙주에 부착시켜 영양분을 빼앗는다. 중국에서는 새삼이 콩 농사에 큰 피해를 주고 있어 방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가 많이 진행됐다.

앞서 쿤밍 식물학연구소의 젠창우 박사 연구진은 새삼의 유전자를 분석해 식물에서 꽃 피는 시기를 조절하는 유전자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즉 새삼은 혼자 힘으로는 언제 꽃을 피울지 알 수 없다는 말이다.

연구진은 새삼이 숙주식물의 해당 유전자 활동을 대신 이용한다고 추정했다. 연구진은 숙주 식물의 개화(開花) 시기 유전자를 바꾸자 새삼도 꽃 피는 시간이 달라지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개화 신호가 숙주에서 새삼으로 전달된다고 보고, 숙주식물에서 꽃 피는 시기를 조절하는 단백질에 형광 물질을 부착했다. 이를 통해 개화 시기 조절 단백질이 숙주식물에서 새삼으로 전달되는 과정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기생식물은 숙주와 꽃 피는 시기를 맞춰야 생존할 수 있다. 숙주가 꽃이 피면 생식 조직에 영양분이 몰리는데, 새삼도 이때 꽃을 피워야 영양분을 제대로 뺏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기생식물이 숙주보다 늦게 꽃을 피우면 숙주의 양양분이 이미 생식 조직으로 다 빠져나간 뒤라 소득이 없어진다. 반대로 기생식물이 더 빨리 꽃을 피우면 성장이 너무 일찍 끝나 씨를 제대로 퍼뜨리기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새삼이 늘 뺏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숙주가 죽으면 기생식물도 타격을 입는다. 새삼은 이런 파국을 막기 위해 해킹 능력을 숙주를 살리는 데 쓰기도 한다.

막스플랑크 화학생태학연구소의 이언 볼드윈 박사는 지난 2017년 쿤밍 식물학연구소 연구진과 함께 새삼이 숙주식물의 경고 신호를 전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나방 애벌레가 잎을 갉아먹으면 식물은 자스몬산을 분비해 동료가 방어 물질을 준비하도록 한다. 연구진은 유전자 분석을 통해 숙주식물의 경고 신호가 새삼을 통해 다른 식물로 전달되는 과정을 확인했다. 해커가 좋은 일을 할 때도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