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스스로 움직이면서 다양한 진동수에 맞춰 공진해 전기를 생산한다./KIST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에서는 열이 나오고 산업 현장의 발전기나 자동차에서는 진동이 발생한다. 열과 진동 모두 에너지이지만 너무 작아서 무시된다. 최근 이처럼 버려지는 에너지를 모아서 전기를 만드는 ‘에너지 하베스팅(수확)’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좀 더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수집하고 실생활에 접목할 수 있는 실용화 기술 개발이 국내외에서 활발하다.

◇주변 다양한 진동수 맞춰 에너지 수확

에너지 하베스팅은 일상에서 버려지는 진동과 열⋅빛⋅전파 등의 에너지를 모아 전기 에너지로 변환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배터리와 전선 없이 주변의 에너지만으로도 기기를 작동할 수 있다. 최근 사물인터넷(IoT)이나 웨어러블 기기 개발이 활발해지면서 작은 전자기기에 적용할 수 있는 독립 전원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전자재료연구단 송현철 박사팀은 “설치 환경에 따라 스스로 고유 진동수를 조절하는 에너지 하베스터(수확기)를 개발했다”고 국제 학술지 ‘나노 에너지’ 최신호에 발표했다.

모든 물체는 고유 진동수를 가지고 있다. 외부에서 고유 진동수와 같은 진동수를 가해주면 진폭이 커지면서 에너지가 증가하는 공진(共振) 현상이 나타난다. 큰 진동이 일어나면 다리나 건물 같은 구조물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건축설계에서는 공진을 피하려고 한다.

에너지 하베스팅에서는 많은 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 큰 진동을 일으키는 공진 현상을 이용한다. 기존 에너지 하베스터는 하나의 고유한 진동수를 갖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용하려는 주변의 진동은 각각 다른 범위의 진동수를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에너지 하베스터를 설치할 때마다 주변 진동수에 맞춰야 했다.

연구진이 개발한 장치는 스스로 고유 진동수를 조절한다. 압전소자로 이뤄진 막대에 움직이는 추를 부착했다. 압전소자는 형태가 바뀌면 전기를 만드는 성질을 가진다. 추는 진동을 감지해 움직이다가 외부 진동수와 맞는 곳에서 멈춰 선다. 이 자리에서 공진이 일어나면 막대가 위아래로 진동하면서 전기 에너지를 생산한다. 연구진은 “하나의 고유 진동수를 가지는 기존 소자보다 공진할 수 있는 주파수 대역을 1400% 이상 향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옷 구겨질 때마다 전기 만드는 장치도

폐열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중국 화중과기대학 연구진은 “폐열을 효율적으로 전기로 바꿀 수 있는 장치를 만들었다”고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10일 발표했다.

냉장고나 보일러, 전구 등에서 지속적으로 열이 나오지만 그 양이 너무 적다. 연구진은 열전지에 주목했다. 열전지는 아래 전극은 온도가 높고 위 전극은 온도가 낮다. 폐열이 나오는 곳에 뜨거운 전극을 대면 전기를 띤 이온 입자가 전자를 방출하고 차가운 전극으로 이동한다. 이 과정에서 전류가 발생한다.

연구진은 전지에 유기 화합물을 첨가해 뜨거운 전극과 차가운 전극 사이에서 열 전달을 차단했다. 그러자 전극 사이의 온도 차가 유지되면서 전지의 효율이 높아졌다. 그 결과 기존의 열전지보다 5배 많은 전력을 만들어냈다. 연구진은 열전지 20개로 구성된 모듈을 통해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을 켜고 휴대전화를 충전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카이스트 연구진은 천과 압전 소자 필름을 강력히 접착시키는 제조 공정을 개발했다./카이스트

에너지 하베스터의 실용화를 위한 기술 개발도 이뤄지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신소재공학과 홍승범 교수팀은 “가격 경쟁력과 내구성이 높은 패브릭(천) 기반 웨어러블(착용형) 압전 에너지 하베스터 제조 방법을 개발했다”고 국제 학술지 ‘나노 에너지’ 9월호에 발표했다. 옷이 구겨질 때마다 압전소자가 변형되고, 여기서 전기가 나오는 장치다.

기존에는 에너지 하베스터를 기계 장치로 붙여야 했고, 제조 공정과 설비도 복잡했다. 연구진은 배터리나 연료 전지 제작에 흔히 쓰이는 ‘핫프레싱’이라는 방법을 적용했다.

천에 압전 고분자 필름을 부착하고 높은 온도를 가한다. 필름이 순간적으로 녹으면서 울퉁불퉁한 천 표면에 스며든다. 실 틈 사이로 필름 성분이 들어가 마치 못처럼 천과 필름을 강력하게 결합한다. 필름은 식으면서 압전소자의 성질을 가지게 된다.

연구진은 “2~3분 안에 제작이 완료될 정도로 빠르고 간단하다”고 설명했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옷에 내장형으로 부착해 웨어러블 기기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홍승범 교수는 “기존 의류에 접착할 수 있어 공정 단가를 낮출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연구 성과를 통해 에너지 하베스터 기술의 실용화 가능성을 한 단계 높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