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광고홍보 및 유통업계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기업은 빙그레이다. 올해로 창업 53주년을 맞은 식품 회사로서 디지털 전환 시대에 어울리는 차별화된 마케팅으로 승승장구하고 있어서다. 이를 통해 중년 기업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젊고, 발랄한 회사로 다가오고 있다.

# 1. 지난달 23일 빙그레의 유튜브 계정인 ‘빙그레 TV’에 3분짜리 동영상이 떴다. 제목은 ‘빙그레 메이커를 위하여’. 영상은 평소 아재 개그를 즐겨하던 주인공 ‘빙그레우스’가 2020년 빙그레왕국에서 ‘노잼(재미없다)’이라는 죄로 재판에 회부되는 걸로 시작한다.

올해 8월 하순부터 3주일만에 639만뷰를 기록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모은 유튜브채널 빙그레TV 동영상인 '빙그레 메이커를 위하여' 장면/빙그레 제공

‘6개월 농담 금지형’을 선고받은 빙그레우스는 판결을 뒤집기 위해 뮤지컬 형식으로 최후의 변론을 한다. 자신과 같은 ‘빙그레 메이커’(삭막한 세상 속에서 웃음을 주기위해 민망함도 감수하며 웃음에 도전하는 사람)의 긍정적인 힘에 대해 노래하며 ‘빙그레 웃음을 위해 도전하는 마음이 세상에 가득했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내놓는다. 빙그레우스는 결국 무죄를 선고받으며 영상은 끝난다.

빙그레 인스타⋅유튜브 마케팅...폭발적 인기

이 동영상은 3주일만에 640만여건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댓글과 ‘좋아요’는 각각 7000개와 2만5000건이 넘는다. 폭발적인 반응이다.

빙그레가 소셜미디어(SNS) 마케팅의 캐릭터로 내세운 빙그레우스는 '빙그레 메이커’를 지향한다. 삭막한 세상 속에서 웃음을 주기위해 민망함도 감수하며 웃음에 도전하는 사람을 뜻한다./빙그레 제공

#2. 올해 2월 26일 빙그레의 공식 인스타그램에 '‘빙그레 더 마시스’ (빙그레 더 맛있어라는 뜻. 이하 빙그레우스)라는 캐릭터가 등장했다.

‘빙그레 왕국의 왕위 계승자’라고 자신을 밝힌 그는 “아버지로부터 인스타그램 채널 운영을 일임받았다. 6개월 뒤 팔로워 수 목표치를 채워야 왕위를 승계받을 수 있다”고 했다. 왕위 계승자 답게 빙그레 로고 모양의 귀걸이부터 빨간 머리에는 바나나맛 우유 왕관을 쓰고, 빵또아 바지를 입고, 꽃게랑과 메로나 봉까지 온 몸을 빙그레 제품들로 치장하고 있다. ‘투게더리고리 경(卿)’은 그의 비서이다.

순정만화 같은 그림들과 “안녕하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하겠소” 등 ‘하오’ 체 말투, 인터넷 소설에서 자주 보이는 오글거리는 대사도 색다르다. ‘빙그레우스’라는 이름은 서양식이지만, 체벌(體罰)을 받을 때에는 왕관과 액세서리 등을 모두 내려 놓는 등 한국의 유교 문화도 담겨있다.

빙그레의 인스트람 캐릭터인 '빙그레우스'가 왕관과 액세서리 등을 다 떼어 내고 벌받고 있는 모습/빙그레 제공

국내 식품 회사 가운데 압도적 1위

처음엔 약간 황당하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이 캐릭터도 열광적인 인기몰이 중이다. 게시물당 평균 4000여개이던 ‘좋아요’ 수는 2배 넘게 뛰었고, 40~80개에 머물던 댓글 수는 300~2000개로 수십배 치솟았다. 이달 15일 현재 국내 식품회사를 통틀어 빙그레의 인스타그램 팔로어 수(14만 9000명)는 1위이다. 10만명이 넘는 인스타그램 계정도 빙그레가 유일하다.

전문가들 사이에 ‘도른자(돌은자) 마케팅’이라고 불리며 찬사를 받고있는 빙그레의 소셜미디어(SNS) 마케팅이 콘텐츠 홍수시대에 대박을 터뜨린 비결은 뭘까. 이달 15일 서울 정동의 빙그레 본사에서 조수아 미디어 전략팀 차장과 유화진 사원을 만났다. 두 사람은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기획⋅제작⋅관리한다.

빙그레의 소셜미디어(SNS) 마케팅 기획과 제작 등을 맡아 업계에 선풍적인 화제를 모은 빙그레 미디어전략팀의 조수아 차장(사진 오른쪽)과 유화진 사원./빙그레 제공

-어떤 관점에서 기획했나?

“SNS가 단순히 신제품 소식이나 공시 사항을 전달하는 창구가 아니라 브랜드 마케팅의 중심이라고 봤다. 특히 가장 활발한 SNS 이용자인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해 디지털 기기와 같이 생활해온 세대)에 초점을 맞췄다. 그래서 MZ세대가 좋아할 만한 ‘빙그레우스’라는 강력한 페르소나를 만화 캐릭터로 만들었다.”

全權 쥔 젊은 직원 2명, ‘MZ세대 감성 저격'

-'댓글'과 ‘좋아요’ 반응이 매우 뜨거운데.

“일방적인 푸쉬(push)로 전달받는 걸 꺼리고 상호작용(interaction)을 좋아하는 MZ세대의 특성을 고려했다. 20~30대들이 우리 계정에 들어와서 댓글 등을 쓰면서 반응하면서, 캐릭터를 가꾸며, 같이 놀 수 있는 놀이공간을 만들었다. 사진에 집착하지 않고 색다른 캐릭터 제작과 웹툰 방식의 구성도 맞아 떨어진 것 같다."

조수아 차장은 “빙그레우스에 이어 ‘투게더리고리 경’(아이스크림 ‘투게더’), ‘옹떼 메로나 부르장’(아이스크림 ‘메로나’), ‘비비빅(단호박 비비빅) 등으로 빙그레의 인기 제품들을 의인화(擬人化)한 캐릭터를 연속으로 만들어 빙그레 왕국 스토리를 풍성하고 흥미롭게 전개해가고 있다”고 했다.

빨간 머리에는 바나나맛 우유 왕관을 쓰고 있는 '빙그레우스'. 빙그레우스는 '빙그레 더 맛있어'를 만화에 등장하는 서양 이름처럼 만든 것이다./빙그레 제공

“실무자들의 자유⋅자율성 장려하는 문화가 큰 힘”

-비용은?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SNS 계정 1년 운영 예산이 2억원 정도다. 이 범위 안에서 이벤트, 경품, 제작, 배송까지 모든 것을 해결하고 있다. 예산제약상 유명 스타를 모델로 쓸 수도 없었다. 고심 끝에 캐릭터와 웹툰을 접목한 ‘B급 마케팅’으로 돌파구를 삼았는데 그게 오히려 적중했다."

-40대 후반 이상 회사내 간부들은 어땠는가? 간섭하거나 반대하지 않았나?

“기획안을 검토한 임원이 실무진의 젊은 감각을 믿고 모든 것을 맡기고 추진하도록 해주었다. 그 덕에 빙그레우스 등이 태어날 수 있었다. 식품회사는 위생과 안전 문제가 중요해 원래 보수적인데, 실무자들의 자율성을 인정해주는 빙그레 특유의 기업 문화가 큰 힘이 됐다.”

빙그레의 한 관계자는 “30여년 전부터 신입사원이 1억원 비용이 들어가는 아이디어를 내도 합리적이면 그걸 믿고 1~2주 안에 기안부터 실행까지 마치는 자율과 신뢰의 기업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고 귀띰했다.

‘코로나 사태’ 뚫고 영업이익 37% 증가 한몫

-젊은 실무진이 다 진행한 건가?

“큰 방향은 간부들에게 보고했지만 세부 사항은 우리가 책임지고 진행했다. SNS상의 문구가 현행 법을 위반하지 않도록 사내 식품안전팀 등과 수평적으로 협업하고 조율했다. 자발적으로 하니 일도 잘 되고 훨씬 힘도 덜 들었다."

빙그레 인스타그램 '빙그레우스'에서 파생된 더위 사냥 빙그레우스 모습. 더위 사냥은 빙그레의 빙과 상품이다./빙그레 제공

-긍정적 성과를 꼽는다면?

“우리 회사는 기업 브랜드와 제품 브랜드 간의 연결고리가 약한 편이었다. 최근 SNS 인기로 회사 이름과 제품 이름이 연결되고, 동반상승 효과가 생긴 것 같다. 젊은 세대와의 소통으로 기업 이미지도 젊어지고 있다.”

“‘디지털 문법’ 민감한 젊은 세대에 주도권 줘야”

코로나 19 사태에도 불구하고 올해 2분기 빙그레의 영업이익과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0%, 7.4% 늘었다. 경쟁사들이 한 자릿수 증가률에 그친 것과 대비된다. 회사 관계자는 “때이른 더위와 신제품 출시 덕도 있지만 젊은 실무자들의 SNS 마케팅이 폭발적인 호응을 낳은 것도 한 원인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CEO.

빙그레의 사례는 개별 기업 차원을 넘어 디지털 전환 시대에 시사점을 준다는 지적이다. 디지털 문화심리학자인 이승윤 건국대 교수(경영학)는 “빙그레의 성공은 의사결정과 커뮤니케이션 문법이 빠르게 바뀌는 디지털 환경에서는 역동적인 젊은 세대에게 주도권을 맡기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위계질서와 매뉴얼에 기반한 수직 조직에서 넷플릭스처럼 직원들에게 ‘높은 자유와 높은 책임’을 부여하는 선진 기업 문화로 이행하는 단초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은 “우리 기업들도 빙그레 사례에 착안해 MZ세대에 자율과 책임을 유연하게 허용한다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