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는 현재 하락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 후 미국과 관세 협상이 잘 진행되면 하반기에 바닥을 칠 수도 있겠지만, 만약 협상이 잘 되지 않아 25%의 상호관세가 부과되면 향후 1~2년간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정규철 KDI(한국개발연구원) 경제전망실장은 지난 28일 인터뷰에서 “미국과의 관세 협상과 국내 건설업체들의 재무 건전성 악화가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이같이 전망했다. 정 실장은 물리학과 경제학을 전공한 뒤 지난 2011년부터 KDI에서 거시경제와 국제금융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2020년부터 경제전망실장을 맡아 국책연구소인 KDI가 발표하는 분기별 경제전망과 월별 경제동향을 총괄하면서 정책 권고도 하고 있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인터뷰에서 “한국의 성장률 하락을 최대한 늦추기 위해 생산 인력을 더 많이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김기훈 기자

―한국경제는 어떤 상황인가?

“국내외로 매우 어려운 국면에 처해 있다. 미국의 관세 정책, 국내 건설업의 부진, 정국 불안에 따른 내수 심리 위축 등 3대 요인이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특히 미국의 관세 인상 정책 때문에 한국의 주요 먹거리인 수출이 둔화되고 불확실성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상황이다. 내수는 건설업 경기 지표들이 전년 동기 대비 10% 이상 감소하고 있고 소비도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내수 위축에는 정치적 요인도 작용하고 있다. 과거 탄핵 정국에서는 2~3개월 만에 경제 심리가 회복됐는데, 이번에는 정치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내수 회복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한국경제가 미국의 관세 협상 파고를 잘 넘어갈까?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낙 특이한 정책을 많이 하고 있어서, 아마도 어려운 협상이 될 것이다. 다른 국가와 같은 10% 기본관세를 적용받고 있지만, 우리 주력 수출품인 자동차에는 25%의 품목관세가 부과되고 있어 대미 수출이 감소하고 있다. 앞으로 관건은 자동차 관세를 인하할 수 있느냐, 반도체 관세 인상을 막을 수 있느냐, 7월까지 유예된 상호관세 적용을 막을 수 있느냐이다. 상호관세 유예가 끝나는 7월에는 관세 협상의 윤곽이 드러나고 불확실성도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도하는 미국의 관세 협상은 향후 1~2년간 한국경제 회복 여부를 가르는 중요한 요인이 될 전망이다. 사진은 지난 5월 25일 미국 대통령 전용기에 오르고 있는 모습./로이터 연합뉴스

―관세율 인상 여파로 미국에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이 생기면 한국은?

“한국경제는 미국에 많이 의존하고 있어서 미국 경제가 나빠지면 한국경제도 부정적 영향을 받는다. 예컨대 미국에서 인플레이션이 높아지면서 금리 인하가 지연되면 전세계 유동성 축소와 무역 위축, 한국의 수출 둔화로 이어질 것이다.”

―건설업 부진의 원인은?

“2022년부터 고금리 기조가 유지되면서 부동산 경기가 하락했고 건설회사들의 재무 건전성이 악화됐다. 그 이후 건설업체들이 수주를 많이 받지 못했다. 게다가 건설회사들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이 신속히 정리되지 못하면서 새로운 투자도 어려운 상황이다.”

서울 일부 지역의 아파트 가격은 오르고 있지만 구조개혁 부진에 따른 건설업 경기 부진은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월 25일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단지./뉴스1

―그래도 서울 강남 집값은 계속 오르지 않나?

“부동산 경기가 특정 지역에서만 좋지, 전국적으로 보면 부진하다. 새로운 건설 공급이 가능한 곳은 주로 비수도권 지역인데, 최근에 미분양이 늘면서 건설업체들이 신규 투자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가계부채는 위험하지 않나?

“개인적으로는 가계부채를 그렇게 위험하다고 보지 않는다. 가계부채 규모는 크지만 대부분 담보대출이고, 상환 여력이 있는 고소득층이 빌린 상황이어서 조금 잘못 되더라도 금융시장에 큰 충격을 주지는 않을 것 같다.”

서울 고가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면서 주택담보대출도 늘고 있다. 다만 주택담보대출은 담보물이 있기 때문에 한국경제에 큰 위협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월 21일 서울 한 은행 지점 앞에 게시된 담보대출 광고./연합뉴스

―자산격차,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빈부격차가 과거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한국경제의 성장 동력이 약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면 저소득층 소득도 같이 증가해서 불만이 많지 않겠지만, 저성장으로 접어들수록 저소득층의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빈부격차가 더 부각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제 활력의 저하라고 볼 수 있다.”

―저성장 상황이 어느 정도 심각한가?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경제성장률 3% 달성이 이슈였는데, 지금은 2% 달성이 쉽지 않다. 10년 후에는 1% 성장, 20년 뒤인 2040년대에는 마이너스 성장을 걱정하게 될 것이다. 물가상승 없이 최대한 성장할 수 있는 한계치인 잠재성장률을 최근에 전망해 보니 올해 1.8%인데, 2047년 전후해 마이너스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민경

―저성장 원인은?

“경제구조 개혁이 지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 규제가 많아서 새로운 산업에 혁신기업이 진출하기 어려워졌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타다’와 같은 새로운 유망기업은 시장에 진출하려고 해도 진입 장벽이 높아서 생존하기 어려운 반면, 오히려 활력이 떨어지는 부실기업이 규제 뒤에서 보호를 받고 정부 지원도 받으면서 연명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경제 활력이 살아나기 어렵다.”

―성장이 안되면 어떤 문제가 생기나?

“일차적으로는 소득이 줄면서 민생이 어려워진다.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는 기업도 새로운 사업에 과감하게 도전하기 어렵다. 특히 걱정되는 것은 정부 재정이다. 성장을 하지 못하면 가만히 있어도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늘어난다. 정부가 갚아야 하는 이자 부담이 계속 불어나면서 국민을 위해 쓸 수 있는 재정 여력은 줄어든다. 이런 상황에서 세금을 더 걷게 되면 내수가 위축될 수 있다.”

―일본처럼 디플레이션(물가하락)이 올 가능성은?

“일본도 1990년대에 저성장 속에 디플레이션을 겪었다. 한국도 지금은 고물가를 걱정하지만 조만간 저물가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다. 그래서 저성장 시대에는 한국은행이 디플레이션에 빠지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물가를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경제 내부의 조정 기능이 떨어지면서 큰 충격을 받는다. 예를 들어 1990년대 주택 가격 거품이 심했던 일본과, 주택 200만호 건설에 나섰던 한국은 모두 부동산 가격이 조정되어야 했다. 당시 일본은 인플레이션이 없었기 때문에 집값이 크게 하락했지만, 한국은 물가상승률이 높아서 집값을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도 충격을 흡수할 수 있었다.”

―경제 활력을 되살리기 위해 재정을 푸는 방법은?

“현재 GDP(국내총생산) 대비 40% 후반인 국가 채무가 2050년에는 100%를 넘어설 전망이다. 재정 건전성이 나빠지면 국제신용평가사의 등급도 하락하면서 국채 이자 부담이 높아질 수 있다. 그만큼 재정 여력이 부족해지는 상황이다. 따라서 재정 효율성을 최대한 높이는 방안이 필요하다. 예컨대 줄어드는 학령 인구에 맞추어 지방교육재정교부금도 조정해야 하는데 잘 안되고 있다. 지출구조조정을 하지 못한다면 정작 필요한 시점에 재정을 풀지 못할 수도 있다.”

한국의 저성장 추세가 이어지면 국가채무가 증가하면서 국제신용평가사들의 한국신용등급 평가에도 악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사진은 미국 신용평가사 무디스의 뉴욕 맨해튼 본사 건물/로이터 연합뉴스

―대안은?

“단기적으로는 미국과의 통상협상이 매우 중요하지만, 중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노동시장 유연화와 경제구조 개혁이 시급하다. 2019년까지는 생산연령인구(15~64세)가 확대됐지만, 2020년 이후에는 줄어들고 있다. 고령화 시대에는 고령층이 더 오래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정년 연장이 필요한데, 연공서열형 임금 체계 때문에 지금은 어렵다. 성과에 맞게 임금을 받아가도록 임금 체계를 우선 개편해야 한다. 이와 함께 출산육아기인 30대 여성의 경제활동을 촉진할 수 있도록 일·가정 양립을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하게는 정부의 과감한 규제 혁파를 통해 저성장 추세를 늦추는 노력이 필요하다. 성장세 약화에 대응해서 다양한 분야에 정부 지출을 늘리는 방안이 제시되고 있지만, 이보다는 제도 개혁을 통해 경제 활력을 회복해야 한다.”

한국경제가 활력을 회복하려면 고령인구와 30대 여성 등 생산인력을 많이 활용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사진은 2024년 10월 4일 노동 현안을 협의하기 위해 열린 노사정대표자회의./연합뉴스

―투자자들이 주목해야할 국내와 해외 경제 변수는?

“세계무역 질서의 개편, 중국과의 경쟁, 국내의 규제 개혁 등 3가지이다. 관세가 인상되면 가격 경쟁 위주의 기업은 영업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제품 차별성을 확보한 기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 경제 상황에 불확실성이 매우 높다는 점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으며, 위험 요소를 충분히 고려해 균형 잡힌 시각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장기적으로는 중국과의 경쟁을 이겨낼 수 있는 핵심 기술을 가진 기업이 결국 시장에서 생존하고 발전해 나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