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의 한국평가데이터 사옥. photo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11년 전 민영화된 공기업으로 공공기관 지분이 40%가 넘고 정부가 사장 임명을 주도하는 한국평가데이터(KoDATA·전 한국기업데이터)가 연이은 매출 부진에도 불구하고 올해 노조에 근로시간 단축 및 성과급 잔치를 약속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주간조선 취재에 따르면 한국노총 소속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을 상급단체로 하는 KoDATA지부 노조는 올해 초 사측과 최종적으로 맺은 단체협약에서 연중 주 35시간 근무, 실질임금 인상률 10% 이상에 특별성과급 120% 지급 등 파격적인 조건을 얻어냈다.

특히 주 35시간제는 업무가 몰리는 시기인 성수기에도 일괄적으로 적용된다. 이는 윤석열 정부가 최근 내건 근로시간 개편 방안과는 완전히 방향이 다르다. 일이 몰리는 시기에 주52시간 이상 일할 수 있게끔 하면서 근로시간 유연화를 목적으로 하는 고용노동부 방안과 전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가 상당 부분 지분을 갖고 경영에도 관여하는 ‘실질적 공기업’에서 이처럼 정부의 노동개혁과는 전혀 다른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며 일종의 ‘반란’을 시도한 셈이다. KoDATA 이호동 대표이사는 기획재정부 재정관리국장 출신으로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 임명됐다.

이 같은 단협 결과에 대해 금융노조 소속 KoDATA지부 노조는 “지난 1년간 직원들의 노고에 대한 보상의 필요성”이라며 결과를 자축했지만, 사내 일부 직원들 사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회사가 전에 없이 어려운 상황인데도 경영진이 노조에 지나치게 많이 양보하며 회사의 손실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현 이호동 대표이사가 취임한 2021년 이후 KoDATA는 2년 내내 성장이 멈췄다. 이 때문에 민영화되면서 소유권이 분산돼 소위 ‘주인 없는 기업’이 된 KoDATA 내 방만 경영 및 도덕적 해이까지도 회사 안팎으로 언급되는 상황이다.

평균 연봉 9700만원의 ‘주인 없는 기업’

KoDATA는 기업을 대상으로 한 신용조회 평가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신용조사 및 평가 업체다. 직원 수가 500여명밖에 되지 않아 외부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기업이다. 그러나 국내 최다 기업 정보를 소유하고 있으며 한 해 약 339조원(2022년 5월 기술금융 잔액 기준)에 달하는 기업 대출에 영향을 주는 강소 기업이다. 구인·구직 플랫폼의 연봉 정보에 따르면 이 회사 직원들의 평균 연봉은 6800만~9700만원에 달한다. 2005년 노무현 정부는 기업데이터가 공공재적 성격을 가졌다고 보고 정부에서 평가 및 조사를 담당하기 위해 공기업을 설립했고, MB 정부 당시 민영화 정책의 일환으로 정부 지분이 줄어들며 민영화돼 지금의 KoDATA가 됐다.

법적으로는 사기업이지만, 지분율을 보면 민영화가 완전히 이뤄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2021년 기준 KoDATA의 최대주주는 신용보증기금(15.00%)이다. 여기에 국책기관인 기술보증기금·IBK기업은행·KDB산업은행(각 8.96%) 지분을 모두 합하면 공공기관 지분은 총 41.88%이다. 여기에 은행연합회,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등이 포함된 기타 주주 지분은 13.32%다. 이 때문에 이 회사는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 국정감사 과정에서 함께 감사 대상에 포함되는 ‘준공기업’으로 여겨진다. 사장과 감사의 임면권(任免權)은 사실상 정부가 쥐고 있다. 현 이호동 대표이사도 지난 문재인 정부 당시 취임했다.

2022년 한국평가데이터 노사 간 임금 및 단체협약 부속 합의서 주요 내용

대표는 文 정부 임명 기재부 출신

이 대표는 기획재정부 출신으로 재정관리국 국장까지 지내고 2021년 3월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기재부 간부 출신으로 회사 경영에 있어 비효율성을 줄일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이 대표의 재임 기간 내내 회사 영업이익 증가세가 멈추자 내부에서는 기업 내실 약화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다. 그런 중에 지난 1월 16일 노사 단체협약 내용이 최종적으로 확정되면서 임원진이 노조가 원하는 바를 사실상 모두 들어주는 꼴이 됐다. 이에 따라 현 경영진의 임기 내 회사에 손실이 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지난 3월 15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노사 간담회를 진행하는 중 민주노총 회원들이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주 35시간제로 실질임금 상승률 10%

주간조선이 확인한 KoDATA 2022년 임금 및 단체협약 합의서에 따르면, 노조는 실질임금 인상률 4.1%에 1일 근로시간 1시간 단축으로 연중 주 35시간제를 얻어냈다. 금융노조의 평균 실질임금 인상률은 3%인데다 지난해 고물가로 인해 평균 실질임금이 사상 처음으로 감소한 것을 감안하면 4.1%는 상당한 수준의 인상률로 볼 수 있다. 특히 근로시간 합의안은 윤석열 정부가 최근 의지를 보이며 내세운 주69시간제 노동 유연화와는 정반대로 가는 파격적인 조건이다. 임금인상률 역시 표면적으로는 4.1%지만 근무시간 단축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는 10%가 넘는다는 것이 노조 측 주장이다.

현재 주35시간제 정도의 파격적인 근로조건은 스타트업 혹은 IT기업 몇 군데에서나 시범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금융노조 KoDATA지부 노조는 임직원들에게 보낸 메일에서 “국내 어느 회사보다 훌륭한 복지제도를 이뤄냈다”며 “자주적으로 일하고, 효율적으로 적게 일해서, 성과를 통해 많이 가져가는 업무-보상체계의 완성”이라고 평가했다.

KoDATA는 이미 지난해에도 기업 평가 건수가 몰리는 성수기(보통 3~7월)를 제외하고 6개월은 실제 근로시간 주35시간제를 시행해왔다. 출퇴근을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5시30분 사이에 유연하게 하면서 하루 7시간씩 근무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번 노사 합의로 성수기를 포함해서 연중 상시로 주 35시간제를 시행하게 됐다. 한국평가데이터 측은 지난 3월 15일 주간조선 질의에 “그동안 연중 6개월 실근로시간을 1주 35시간으로 단축한 결과 직원 복지 및 업무 효율성 향상, 우수인재 확보 등에 긍정적이라 판단해 금년부터 연중 상시 적용하기로 했다”고 답했다.

언뜻 보기에는 과도한 근무 시간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인다는 측면이 있지만, 일이 몰리는 성수기에까지 주35시간제를 적용하기로 한 이면에는 결국 간접적인 임금 인상이 제1목표였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기업 한 관계자의 말이다.

“3~7월에는 일이 계속 밀려들어 온다. 퇴근이 9시건 10시건 아무튼 해야 하는 거다. 기업 평가를 해야 대출도 나가고 기업 간 거래도 할 수 있지 않나. 업무량을 갑자기 줄일 수는 없다. 1시간 걸리던 일을 40분 걸리게 단축하는 새로운 비법이 생긴 것도 아니다. 업무 총량은 정해져 있는데 근로시간이 줄어든다는 건 결국 야근 수당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국제적 기준에 따라 근로시간을 줄인 거라고는 하지만 우리가 보기엔 그냥 돈 더 준다는 말로 들린다.”

실제로 노조 측도 이러한 임금 인상을 염두에 둔 채 근로시간 조정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KoDATA지부 노조는 임직원들에게 보낸 메일에서 “근무시간이 단축되는 효과로 인한 실질임금 상승률은 약 6% 정도”라며 “위에서 합의한 임금상승률과 더하면 올해 우리 직원들이 누리는 실질임금 상승률은 약 10.1% 정도로 평가되는 쾌거”라고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올해 상반기 중 ‘성과급 파티’도 예정돼 있다. 노조는 단체협약에서 올해 상반기에 있을 특별성과급 최대지급률을 120%로 올리고, 목표 영업이익 중 22억원은 노사 간 별도 합의하는 방식으로 전 직원에게 지급한다고 공지했다. 목표 영업이익을 초과했을 때는 초과분의 50%를 역시 직원들에게 배분한다. 이외에도 △사내근로복지기금 3억원 출연 △전문직 복지포인트 30만원 상향 △대학생 자녀 장학금 지원한도 50% 확대 △해외 봉사활동 실시 등 다른 기업에서는 찾기 어려운 수준의 처우 개선도 대거 포함됐다.

회사 “업황 어려워 회사 매출 감소”

KoDATA는 2021년 이호동 대표 취임 이후 영업이익 부진을 겪어왔다. 2018년부터 3년 연속 전년 대비 꾸준히 10% 이상 영업이익 성장률을 기록한 것과는 달리 2021년에는 전년도와 거의 비슷한 수준의 영업이익을 내는 데 그쳤다. 2021년 실적조차도 전임사장의 경영 기반에서 이뤄졌다는 평가다. 2022년 상황은 전년도 대비 더 좋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KoDATA는 지난 3월 15일 주간조선에 “주주총회 개최 전이라 재무제표가 미확정돼 구체적 재무지표는 제공하기 어렵다”면서도 “2022년은 전반적인 경기 침체로 CB(Credit Bureau·개인신용평가회사) 업계 모두 어려움을 겪어 그에 따라 경영 성과가 다소 부진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답했다. ‘회사실적을 예측하고도 이 같은 노사 합의를 했다’는 답변인데, 경쟁기업인 나이스신용이나 이크레더블의 경우 지난해 1~9월 누적 영업이익이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 최소 4억원 이상 많았다.

회사 상황이 좋지 않은데도 허리띠를 졸라매기보다 임금을 인상하고 복지를 확대하는 것은 오너가 있는 사기업은 물론이고 공공기관에서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 때문에 윤석열 정부는 공공기업 지분이 남아있는 이른바 ‘민영 공기업’에 대해 적극적인 감사를 진행해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의지를 보인 바 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 30일 “공기업이었다가 민영화되면서 소유가 분산된 기업들은, 단기 재무적 투자자들과 중장기 전략적 기관 투자자들이 섞여 있다”며 “소위 스튜어드십 코드가 작동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배구조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일어날 수 있어 적어도 그 절차와 방식에 있어서는 공정하고 투명하게 해줘야 한다는 점에서 함께 고민을 해야 한다”고 했다.

KT나 포스코, KoDATA처럼 민영화된 ‘주인 없는 기업’은 구조적으로 내부 감사 등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민간 기업 운영 경험이 있는 전직 정부 고위직 관리자는 이를 “기업을 이끌 책임이 있는 대표이사나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라고 말했다. “사실 민영화된 기업들은 주주가 많아서 누가 주인인지 딱 파악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지분 소유 기관이 6개, 9개가 넘는데 워낙 큰 기관들이다 보니 일일이 자신들이 지분을 소유한 기업을 잘 들여다보질 않는다. 관심이 없는 거다. 이렇게 관심이 없는 상태라 자칫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가 일어나기 쉽다고 볼 수도 있다.”

상임감사는 민주연구원 부원장 출신

지난해 11월 강민국 국민의힘(경남 진주 을) 의원은 KoDATA가 매출을 확대하기 위한 수단으로 신용평가를 조작하고 기술자격증을 무단 도용하는 한편 기업 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해주는 대가로 고가의 금융서비스 상품을 강매하는 ‘신용등급 사기 범죄’를 벌이고 있다는 자료를 공개했다. 강 의원실에 따르면, KoDATA는 부서장을 통해 평가 신청 기업과 사전 약정을 맺고 암호로 된 부가 상품 강매 이메일을 보내는 식으로 모종의 거래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11월 말부터 12월 초 이 회사에 대한 검사를 실시했으며, 3월 20일 기준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KoDATA는 부당한 방법으로 매출을 확대 조작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기도 했는데, 이 과정에서 감사는 물론 대표이사와 부사장, 임원이 이를 모두 묵인했다는 의혹도 받았다. 최근 검찰은 이 사건 관련 내사를 진행하고 첩보 생성 후 재경지검으로 내려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KoDATA 상임감사는 고한석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이다. 그는 이호동 대표이사 취임 3개월 후인 2021년 6월 상임감사로 임명됐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망 전 마지막으로 접촉했을 정도로 막역한 사이로 알려진 그는 1992년 ‘남조선 노동당 중부지역당 간첩단 사건(중부지역당 사건)’의 주역 중 한 명으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이 회사 현 노조는 노조위원장과 가까운 회사 인사부 채용 관리자가 신입직원을 성추행했다는 혐의로 전임 사장에 의해 해고된 것을 문제삼아 사장실을 점거한 바 있다.(주간조선 2612호 ‘성폭력 가해자 비호한 한국기업데이터 노조의 갑질’ 참조) 이 관리자의 무고를 주장한 노조의 입장과 달리 이 관리자는 성추행 혐의가 인정돼 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회사 내에서는 복수 노조가 생기는 등 노노갈등이 격화되어 왔으나, 현 사장은 취임 후 사실상 현 노조의 지지를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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