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금융감독원과 은행 여신 담당 임원들 간의 화상회의에서 2억원 이상 신용대출을 조이는 방안이 논의됐다. 주택담보대출 규제의 풍선 효과로 신용대출이 급증하자 당국이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16일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강화된 이후 신용대출로 거액의 자금을 빌려 부동산·증시 등에 투자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신용대출 한도 제한 등을 은행에 제안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이날 은행들에 신용대출 관리 계획을 제출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날 회의엔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과 카카오뱅크 여신 담당 임원들이 참석했다.

금융 당국이 부동산 ‘패닉 바잉(공황 구매)’과 주식시장 과열을 부추기는 원인 중 하나로 신용대출을 지목하고 규제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최근 주식 투자를 위해 증권사에서 빌리는 신용거래융자가 급증하자 증권사들이 속속 이 대출 서비스를 중단할 정도로 신용대출은 은행과 증권을 가리지 않고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규제 소식이 전해지자 ‘때를 놓치면 대출을 당길 수 없다’는 불안감에 14~15일 이틀 동안 5대 은행에서 신용대출이 7244억원 급증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금융위원회는 신용대출이 어디로 흘러들어 갔는지 면밀히 분석한 뒤 다음 주쯤 핀셋 규제 방안을 내놓을 방침이다. 일단 저소득층보다는 고신용·고소득층이 규제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은행에 신용대출 한도 축소 요청

금감원은 고소득·고신용자의 거액 신용대출을 생활 안정 자금 용도로 보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연봉 1억5000만원의 고소득 직장인이 2억~3억원씩 신용대출을 받는 걸 생활이 쪼들려서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최고 220%에 이르던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의 연 소득 대비 신용대출 한도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금융권에선 이 한도가 100%대로 인하될 거라는 예측이 나온다. 연봉 2억원인 전문직이 이제까지 담보 없이 신용으로만 4억4000만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었다면 앞으로는 2억원 정도만 빌릴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금감원이 직접 거론하진 않았지만 신용대출 금리 인상 방안도 은행들 사이에서 가능한 대책으로 꼽힌다. 이미 한 시중은행은 지난 1일부터 신용대출 우대금리 할인 폭을 0.2%포인트 줄이는 방식으로 금리를 높였다. 5대 시중은행 신용대출 금리가 1.85~3.75%인 것을 감안하면 1%대 신용대출 금리가 사라질 수 있다.

◇고민하는 정부, 눈치보는 은행

금융 당국은 신용대출 규제의 폭과 강도를 놓고 고민 중이다. 자칫 돈줄을 잘못 조였다가 코로나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소상공인·중소기업 등의 자금줄이 마르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코로나 금융 지원은 지속하되 그 돈이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 주택 구입’이나 ‘주식 빚투(빚내서 투자)’로 흘러들어 가지 않게 막는 효과적인 정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은행들로선 저금리로 가뜩이나 수익성이 떨어진 상황에서 고소득·고신용자 등 ‘검증된’ 우량 고객에 대한 대출을 줄이는 것이 부담스럽다. 그러나 금융 당국의 방침을 거스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차라리 금융 당국이 공식적으로 규제책을 일찍 발표하는 게 속 편했을 것”이라며 “다른 은행들이 어떻게 하는지 눈치를 살펴가며 신용대출을 관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