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산의 LED(발광다이오드) 전문 기업 서울반도체 직원들은 반쯤 하얗게 센 장발을 휘날리며 회사를 누비는 남자와 종종 마주친다. 회사 사정을 잘 모르고 방문한 외부인은 “멀쩡한 회사에 웬 히피냐”며 눈을 동그랗게 뜨기도 한다.

등 한가운데까지 치렁치렁한 머리를 흩날리며 회사를 누비는 사람은 이정훈(67) 서울반도체 대표다. 2018년 말부터 2년 가까이 머리를 자르지 않았다. 이 회사가 글로벌 기업들과 치르고 있는 20여건의 특허 소송 때문이다. “특허 침해 기업을 뿌리 뽑을 때까지 머리를 자르지 않겠다”는 것이 이 대표의 고집이다.

지난 2009년 일본 니치아와 소송을 마무리짓고 머리를 자르러 가기 전의 이정훈(왼쪽) 대표와 지난 14일 경기도 안산의 사무실에서 ‘두 번째 장발’을 한 이 대표의 모습(오른쪽).

서울반도체는 매출 기준 세계 4위의 LED 전문 제조업체로, 업계 최다인 1만4000여건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매년 매출의 10%를 연구·개발(R&D)에 투자하고, 1만건 넘는 특허 유지에만 연간 수백억원을 쓴다. 서울반도체 관계자는 “힘들게 축적한 기술이 무단 침해당하자 이들을 반드시 이기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이 대표가) 머리를 기르기로 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고려대 물리학과를 나와 삼신전기 부사장으로 일하던 이정훈 대표는 1992년 서울반도체를 인수했다. 미국 반도체 회사 페어차일드 출신 연구원들이 세운 매출 3000만원대 회사를 인수해, 현재 매출 1조원대의 중견기업으로 키워냈다.

이 대표는 세계 LED 업계 1위인 일본 니치아와 소송전이 한창이던 2007년 말 처음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소송 시작 3년 만인 2009년 니치아가 양사의 특허를 상호 공유하는 영구 계약을 맺고 물러났다. 이 대표는 그제야 어깨까지 자란 머리를 잘랐다. 이 회사 1층에는 당시 장발로 특허전을 성공적으로 이끈 이 대표의 사진이 걸려 있다.

지금의 장발은 두 번째다. 그는 “지식재산은 어려운 중소기업과 젊은 창업자들이 생존하고 계층 간 이동을 가능케 하는 사다리”라며 “회사를 책임진 리더로서 직원과 투자자를 지키고, 나아가 대한민국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투혼을 (장발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서울반도체는 15일 미국 전자제품 유통업체 ‘더 팩토리 디포’를 상대로 제기한 필립스의 상업용 대형 모니터, 조명 업체 파이트의 가정용 LED 조명 영구 판매 금지 소송에서 승소했다고 밝혔다. 미 캘리포니아 법원은 두 제품에 쓰인 LED가 서울반도체의 특허를 침해했다고 보고 판매 금지 명령을 내렸다. 서울반도체가 최근 1년 새 거둔 다섯 번째 특허 승리다. 작년에도 소송을 제기해 특허 침해 LED를 사용한 TV, 조명, 살균기 등을 모두 판매 중단시켰다.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유튜브에서 남의 콘텐츠를 사용하면 출처를 밝혀요. 일부 기업이 복잡한 특허법을 악용해 소송을 벌이며 자신도 대등한 기술을 가진 것처럼 선전하는 것은 비윤리적입니다. 불의에 대해서는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끝까지 맞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