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DB

금융 당국이 급증하는 신용대출에 대한 ‘핀셋 규제’를 예고하자 ‘패닉 대출’이 벌어졌다. 불과 이틀 사이에 주요 시중은행에서만 신용대출이 7000억원 넘게 불어난 것이다. 굳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도 ‘일단 받아두자’면서 대출을 신청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16일 신한·KB국민·하나·우리·NH농협은행에 따르면 14~15일 이들 은행의 신용대출은 7244억원 급증했다. 하루에 3000억원 넘는 돈을 빌려갔다는 것이다. 특히 대출 신청이 간편한 비대면 대출 위주로 증가세가 가팔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신용대출이 사상 최대 증가세를 보인 지난 8월과 비교해도 이례적인 속도다. 8월에는 하루 평균 2035억원씩 증가했다. .

이처럼 신용대출이 급증한 건 신용대출 한도·금리가 지금보다 나빠진다는 게 기정 사실화됐기 때문이다. 금융 당국은 최근 주요 은행 여신 담당자들과 만나 “고신용·고소득자에 대한 신용대출 한도가 과다한 수준”이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한 금융 당국 관계자는 “연봉 1억5000만원인 고소득자가 2억~3억원씩 빌리는 건 생활안정자금 용도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예대율 규제 완화 등 은행이 자금을 공급할 여력을 늘려줬더니, 고소득자의 ‘영끌’ 주택 구입이나 ‘빚투’ 주식 투자를 도왔다고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대부분 시중은행은 내부적으로 대출 한도 축소를 검토 중이다. 금융 당국이 “코로나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 등에게 피해가 가면 안 된다”고 당부했기 때문에,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는 고소득자, 고신용자 위주로 한도 축소가 이뤄질 전망이다.

금리 역시 지금보다 오를 가능성이 높다. 대출 수요가 여전한 가운데, 대출 한도를 축소해 자금 공급을 줄이면, 대출 가격(금리)은 오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일부 시중은행은 우대금리부터 손 볼 것으로 알려졌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금리의 기준이 되는 금리는 시장 상황에 따라 정해지고, 은행이 정할 수 있는 건 가산금리·우대금리”라면서 “가산금리를 고치려면 공시 의무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우대금리를 낮추는 방향으로 금리를 조정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대출 심사 절차 역시 까다로워질 가능성이 높다. 금융 당국은 은행권에 “비대면 대출 시 대출용도 확인 절차 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보통 가계대출 관리 필요성이 나오면, 한도 축소·금리 상향·대출 심사 강화 등 세 가지는 한 몸으로 움직인다”고 했다.

은행권에서는 볼멘 소리가 나온다. 은행권 관계자는 “주택담보대출을 막아 은행이 수익 방어를 하려면 신용대출을 늘릴 수밖에 없는데, 이마저 조인다는 건 과도한 듯 하다”고 했다.

코로나 같은 극도의 침체 시기에, 호황 때나 쓸 법한 경기 진정책을 꺼내드는 게 합리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대출 억제는 대표적인 경기 진정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