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석

25세 청년의 첫사랑은 유연석을 타고 왔다. 독일 문호 괴테가 스물다섯 살이던 1774년 발표한 소설 ‘베르테르’는 부서질 듯 가녀린 짝사랑의 노래. 그 애틋한 사랑은 토종 창작뮤지컬로 고스란히 옮겨졌다.

한국 팝 발라드 감성을 가미한 실내악 선율과 감성적인 이야기로 스테디셀러가 됐다. 올해 20주년을 맞아 다시 올랐고, 유연석은 새로운 베르테르로 합류했다.

유연석은 TV드라마에서 '짝사랑 전문배우'다. 영화 '건축학개론' '늑대소년', 드라마 '구가의 서'에서 차가운 역을 맡았지만, 2013년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칠봉이' 역으로 '짝사랑의 아이콘'이 됐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구동매' 역시 절절한 짝사랑을 보여줬다.

지난 2015년 그의 뮤지컬 데뷔작 '벽을 뚫는 남자'의 '듀티율' 역도 '이사벨'을 짝사랑하다 결국 벽에 갇히게 된 캐릭터였다.

칠봉이와 구동매는 성격상 상반된 캐릭터였지만, 하얀 피부(야성미의 구동매는 그의 하얀 피부를 가리기 위해 수염을 붙였다)에 선한 눈매를 지닌 '소년미'는 짝사랑의 무기력함도 성스럽게 만들었다.

뮤지컬 '베르테르'에서 그 부분이 절정에 달한다. 시와 그림을 좋아하는 베르테르는 사랑이라는 예술적 감흥의 봉우리에서 출렁인다. 과부가 된 여주인을 짝사랑하던 정원사 '카인즈'의 비극적 사랑 앞에 자신을 투영해 분노하는 그의 심장은 '다이너마이트'와 같다.

유연석은 황금만능주의를 넘어 사랑마저 계산하기 바쁜 시대에 베르테르의 심장에 한번쯤 빠져 살아보고픈 충동을 느끼게 만든다. 환희와 절망, 설렘과 고통, 그리고 책과 권총 등 모순돼 보이는 것들이 여름 덩굴처럼 엉킬 때, 관객 마음의 실타래도 엉켜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된다.

'베르테르'의 대표 넘버 '발길을 뗄 수 없으면'의 멜로디는 정갈하고 담백해 더 가슴을 후빈다. 유연석의 '베르테르'는 짝사랑의 전형을 반복하는 대신, 감성을 흔드는 부드러운 파괴력으로 공감과 어깨동무하는 묘를 발휘한다.

유연석은 드라마와 영화에서처럼 뮤지컬에서도 빤한 역을 맡지 않아왔다. '헤드윅'의 트랜스젠더 록 가수, '젠틀맨스 가이드 : 사랑과 살인편'의 코믹 연기가 예다. '베르테르'는 그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캐릭터로, 오래된 것도 새롭다는 것을 증명한다.

한편, 이번 ‘베르테르’ 20주년은 유연석을 비롯해 엄기준, 카이, 슈퍼주니어 규현, 나현우 등 다섯명이 번갈아가며 타이틀롤을 연기하는 ‘퀸투플(quintuple) 캐스팅’이다. 객석 간 거리두기, 마스크 착용, 발열 체크 등 코로나19 방역 지침을 지킨다. 조광화 연출, 구소영 협력 연출 겸 음악감독 등이 함께 한다. 오는 11월1일까지 광림아트센터 BBCH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