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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날 보거라. 어깨는 그대로 두고.”

진주 귀걸이처럼 은은하게 빛나는 눈망울의 소녀 그리트(스칼릿 조핸슨)는 화가(콜린 퍼스)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돌려 정면을 응시한다. 물방울 모양의 귀걸이는 푸른 터번을 쓴 소녀의 목덜미에 닿을 듯 커다랗다. 2003년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1632~1675)의 동명(同名) 유화에서 착안했다. 영화에서 하녀 그리트가 집안일을 할 때 잔잔한 현악 반주 위에 플루트가 살포시 포개진다. 작곡과 플루트 연주는 프랑스 출신 영화음악가 알렉상드르 데스플라(59)의 솜씨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왓챠에서 바로보기

최근 개봉한 ‘셰이프 오브 뮤직: 알렉상드르 데스플라’는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색, 계’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등으로 유명한 데스플라의 음악 세계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그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과 ‘셰이프 오브 워터’로 두 차례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았다. 작품에 비해 작곡가의 이름이 낯설다면, 이유가 있다. 데스플라는 1980년대부터 프랑스에서 활동했지만,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로 뒤늦게 세계적 명성을 얻은 대기만성의 작곡가다. 다큐멘터리에서 그는 “미국 제작자들은 이 영화가 제 첫 작품인 줄 아는데, 실은 50번째 작품이어서 자축 샴페인까지 마셨다”며 웃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왓챠에서 바로보기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왓챠에서 바로보기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작곡가 알렉상드르 데스플라.


이 다큐에서 데스플라는 자신의 음악적 성공 비결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얼마 전 타계한 엔니오 모리코네나 ‘스타워즈’의 존 윌리엄스, ‘닥터 지바고’의 모리스 자르 같은 선배 작곡가들의 영화를 반복해 보면서 작법(作法)을 분석했다는 것이다. 그는 음악이 영화의 일부가 되도록 자연스럽게 섞이는 것이야말로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자신의 음악을 설명할 때에도 ‘작곡하다(composer)’ 대신에 ‘발견하다()’라는 프랑스 동사를 사용한다. 전통적 관현악과 미니멀리즘 계열의 현대음악, 재즈와 보사노바까지 영화에 어울리는 다채로운 음악적 색채도 그의 특징이다.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작곡가 알렉상드르 데스플라 부부.


세계적 감독이나 명문 악단과 협업했지만 데뷔작부터 가장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파트너는 바이올리니스트인 아내 도미니크다. 지금도 아내는 바이올린으로 남편의 선율을 연주한 뒤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들려준다. 그래서 아내의 별명도 ‘두 번째 귀’다. 아카데미상을 처음 받았을 당시 데스플라는 객석에 앉은 아내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룬 모든 건 당신 덕분이야. 이 상은 당신에게 바칠게.” 이 부부야말로 ‘음악적 일심동체’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