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학로 후암스테이지에서 연극 '없시요' 배우들이 북한 병사 세호가 총을 겨누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고운호 기자

“일 없시요.”(북한 병사 은철)

“없긴 뭐가 없어? 일이 생겼잖아.”(한국 여고생 효민)

“이런 믹재기 같은(미덥지 못한) 애미나이. 일 없으니까 없다는 거 아냐!”(은철)

지난 13일 오후 서울 대학로 후암스테이지 1관. 조명이 켜진 무대에서 배우들이 막바지 연습에 한창이다. 창작 집단 곰이 펼치는 연극 ‘없시요’. 객석에 앉아 있던 오진하 예술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은철이, 지금 잘했어. 평안북도 말씨도 자연스럽고.”

전국 사투리로 연기를 펼치는 ‘말모이 연극제’의 이북 부문 참가작이다. 줄거리는 판타지에 가깝다. 가족과 함께 중국 단둥에 여행 온 한국 여고생 효민, 아버지 유골을 들고 혼자 여행 온 재일 교포 영욱, 북한 쪽 접경을 경비하는 병사 은철이 주인공. 회오리바람에 세 사람이 한꺼번에 북한 땅에 떨어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서로를 경계하던 세 사람이 티격태격 대화하다가 점점 서로를 이해하게 돼요. 알고 보니 오래전 헤어진 가족이었다는 설정입니다." 대본과 연출을 맡은 강제권 감독은 “특히 평북 천마군 출신인 은철의 대사를 쓰기가 어려웠다”며 “일단 써놓고 오 감독님 감수를 받았는데, 마치 전라도·경상도·충청도 사투리를 섞어놓은 것처럼 엉터리라고 하더라”며 웃었다.

극의 절반이 이북 사투리로 전개되는 만큼 탈북자 출신인 오진하 감독의 역할이 컸다. 대본을 북한 말과 정서에 맞게 수정하고, 배우들에게 평안도·함경도 사투리를 지도했다. “은철이는 평안도 사람인데, 석 줄만 넘어가면 어느새 함경도 억양으로 바뀌어 있어요. 그만큼 이북 사투리가 우리한테 생소하다는 뜻이겠죠." 은철 역을 맡은 배우 정욱권씨는 “고향이 대구인데 평안도 사투리로 연기하기가 쉽지 않더라”며 “감독님 발음을 깡그리 녹음해서 반복해 들었다”고 했다.

북한 병사 은철(오른쪽)과 세호가 서로 총을 겨누는 장면. 탈북자 출신인 오진하(가운데) 예술감독이 두 배우의 이북 사투리 억양을 지도하고 있다. /고운호 기자

평양 출신인 오 감독은 당의 입맛에 맞춰 북한 선전물을 만들다 탈북을 결심했다. “남한의 여러 작품을 보면서 나도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며 “북한의 창작자라면 누구나 하는 생각”이라고 했다. 탈북 후 생명과 인권에 대한 시나리오를 써왔고, 북한 주민들의 실상을 담은 창작 뮤지컬 ‘언틸더데이(Until The Day)’ 등을 연출했다.

그는 “한국 영화·드라마에 나오는 북한 사투리는 대부분 평안도·함경도·황해도 등이 뒤섞인 엉터리”라고 했다. 예를 들어 “내래 밥 먹었지비”라는 문장은 틀렸다. ‘내래(내가)'는 평북 사투리, ‘~지비’라는 어미는 양강도와 함경도 사투리라는 것. “평북 사람이라면 ‘내래 밥 먹었소’, 함경도라면 ‘나 밥 먹었다’고 해야죠. 경상도 말 하다가 갑자기 전라도 사투리 쓰는 것과 같아요.” 또 “~했습네까?”라는 어미는 북한에서 쓰지 않는다고 했다. “주로 코미디 프로에서 웃기려고 ‘~네까’를 자주 사용하던데 탈북자들은 어리둥절해하지요. TV에 하도 많이 나오니 이젠 탈북자들도 쓰더군요." 오 감독은 “지금 한국에선 옌볜 말이 북한 말로 둔갑돼 있는 것도 문제”라며 “이번 ‘말모이 연극제’가 북한 사투리를 바로잡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말모이 연극제’는 올해 2회를 맞았다. 주시경 선생의 뜻을 이어 편찬한 사전 ‘말모이’처럼 순수 우리말인 각 지역의 사투리를 살려 무대 예술인 연극 양식으로 극화해보자는 취지다. 전라·이북·충청·경기·경상·강원·제주 등 일곱 지역의 특색을 살려 여덟 극단이 다음 달 25일까지 무대에 오른다. ‘없시요’는 15일부터 20일까지.

◇연극 ‘없시요’에 나오는 북한말

“일 없시요” (문제없다, 괜찮다)

“이런 믹재기 같은 애미나이” (이런 미덥지 못한 계집아이)

“내래 애육원 시절부터 미남이라는 소릴 많이 듣긴 했지”(내가 고아원 시절부터~)

“후라이 까지 말라”(거짓말 하지 마라)

“기카믄 하나 두리 서이 세고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자우”(그러면 하나 둘 셋 세고~)